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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와 함께 한낮의 꿈을 꾸다
모터트렌드안진욱 기자 2026.09.03

1박 5일이라는 일정이다. 닷새 동안 잠이야 여러 번 잤다. 다만 침대에 정식으로 몸을 뉜 밤은 단 하루였고, 나머지는 비행기 좌석과 라운지 소파에서 토막으로 이어 붙인 잠이었다. 그런데도 돌아보면 이보다 즐겁고 기억에 남는 출장은 없다. 비즈니스 트립에서 비즈니스를 떼야 한다. 행선지는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 섬.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테이데 화산이 솟아 있고, 유럽인들이 휴가를 보내는 곳이다. 우리에게 낯설지만 유럽인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다. 그 낯선 섬으로 떠나던 날 엄마가 그랬다. 이렇게 불러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부름을 받는다는 것은 이 사회에 작게나마 필요한 존재라는 뜻이라고. 덕분에 이번 여정은 수많은 출장 중 하나가 아니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화려한 호텔을 배경 속에 849 테스타로사 스파이더를 놓고 페라리 담당자들과 담소를 나눈다. 이보다 좋은 근무 환경이 있을까? 그들과 스스럼없이 사담을 나누고, 궁금한 것은 여과 없이 묻고, 페라리를 마음껏 타는 내 직업. 자랑처럼 들릴 수 있다. 자랑 맞다.

그 수다 타임에서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했다. 페라리 직원들에게 최고의 페라리를 물으면 하나같이 다르면서도 같은 답이 돌아온다. 최고의 페라리를 정할 때 기준이 스펙도 희소성도 아닌 자신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입사했을 때 한창이던 프로젝트, 혹은 애지중지하며 참여한 프로젝트의 모델을 꼽는 식이다. 오픈톱 모델의 루프를 책임지는 알레산드로의 답은 최신형 아말피 스파이더도, 우리 테이블 옆의 은빛 테스타로사 스파이더도 아니었다. 그의 세상에서 최고는 레트로의 정수를 보여 준 로마 스파이더였다. 페라리 코리아 최 차장, 아니 제이드 매니저의 답은 포르토피노였다. 페라리로 이직해 그 차의 런칭과 함께 커리어를 시작했으니 애틋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듣다 보니 뭔가 멋있다. 페라리 한 대를 소유하지 않아도 페라리 팀의 일원으로서 페라리의 한 모델과의 연결고리가 이토록 끈끈할 수 있으니까. 회사와 사원이 아닌 작품과 작가의 관계였고, 이들의 눈빛은 연봉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음 날이면 나도 그들이 빚은 최신작과 나만의 이야기가 생길 테다.

그 차례는 햇살과 함께 왔다. 아침 볕이 쏟아지는 집결지에서 어제의 그 은빛 테스타로사 스파이더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컬러로 무채색을 내세우는 경우는 흔치 않기에 외장 디자이너 제이슨에게 이유부터 물었다. 은색이야말로 차체의 실루엣과 디테일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색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듣고 다시 보니 면과 면이 꺾이는 각이 빛을 따라 살아 움직인다. 감상하면서 내 차를 찾는다. 이 출장을 함께한 유튜버 둘(89BROS, 자동차 읽어주는 남자)이 차 안에 카메라를 다느라 분주한 사이, 난 코스를 안내할 페라리가 제공한 아이폰으로 애플 카플레이를 연결하고 작동법을 익혔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이 아이폰 때문에 내 아이폰을 연결해 차 안에서 음악을 들을 수 없다. 나에게는 긴급 상황이라 곧장 담당자를 불러 호소했다. 다른 브랜드였다면 시승하면서 음악을 왜 듣냐는 눈총이 돌아왔을 게 뻔하다. 페라리는 달랐다. 내 의도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서, 그것도 페라리를 타면서 바람과 음악은 함께해야만 한다.

스파이더는 여유의 영역이다. 트랙에서의 랩타임이 아니라 조수석의 콧노래로 평가받아야 하는 차. 그래서 오늘의 관심사는 뚜껑을 열었을 때의 배기 사운드, 그리고 그 소리가 음악과 버무려졌을 때 빚어지는 분위기다. 진심이 통했는지 담당자는 페라리 아이폰에 기어이 유튜브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음악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이 과정이 정말 고마웠다. 계정과 비밀번호를 무전을 통해 전달받는 등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의 표현을 덩치 큰 페라리 형에게 전하겠다. 이제 됐다. AC/DC로 선곡했고 리프트 버튼 위치까지 확인을 마치고, 루프를 열고, 선글라스를 걸친다. 여기 온다고 랄프로렌에서 장만한 리조트룩 피케 셔츠는 괜히 뿌듯하다. 차림새가 완성됐으니 무대로 나설 시간이다. 등장은 전기모드로 얌전히 할 테다. 이후에는 얌전히 다닐 계획이 없으니 이때라도 전기모터만의 움직임을 봐야지. 페라리의 승차감이 좋다는 것은 이 전기모드에서 알 수 있다. 배기 사운드로 인해 운전자가 늘 흥분해 있으니 이러한 승차감에 집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테네리페의 어느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 유럽에서 페라리를 탈 때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시작된다. 화려한 디자인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메달리스트의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러닝셔츠 바람으로 꽃에 물을 주던 할아버지가 주머니를 뒤져 폰을 꺼낸다. 그의 작은 렌즈가 향하는 곳은 테스타로사 스파이더다. 동작이 느긋하시니 프레임에 담길 때까지 기다려 드리는 것도 페라리 오너(오늘만)의 의무다. 이 품격은 하루짜리라도 지켜야 하는 법이니까. 제 몸만 한 가방을 멘 아이들은 페라리를 발견하자마자 환호성을 지르고, 마주 오는 차들은 경적으로 인사를 건넨다. 우리나라에서는 페라리에게 이러한 반응을 하면 촌스럽다고 한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만큼 세련된 게 없는데 말이다. 달리는 와중에는 스쿠터 한 대가 폰을 든 채 꽁무니를 쫓아온다. 세로로 찍는 것으로 보아 SNS 릴스로 조회수를 올리려나 보다. 다운시프트 한 번과 스로틀을 약간만 열어 거리를 쭉 벌려 약을 올려줄까 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오늘의 나는 페라리 오너니까 만인에게 친절하고 싶다.

마을이 끝나자 시승 코스의 하이라이트, 본론이 시작된다. 구불구불한 오르막을 따라가니, 시야 끝으로 대서양인지 지중해인지 모르겠지만(대서양이라 한다)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하루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테스타로사 스파이더 계약서에 사인한 고객이 아직 받지 못한 신상 페라리로 이 절경을 가르고 있다. 페라리가 테스타로사 스파이더 이벤트를 위해 유럽 지도를 샅샅이 뒤져 골랐다는 오늘의 코스는 와인딩과 해안도로, 고속도로로 구성되었다. 오픈에어링의 여유와 직진성능, 그리고 코너링까지 모두 느껴 볼 수 있게끔 한 의도가 보인다. 본격적으로 쏘기에 앞서 내가 오픈톱 모델을 평가할 때 따지는 기준은 세 가지다. 앞뒤 서브프레임이 코어를 중심으로 단단하게 연결되었는지, 실내로 바람이 얼마나 들이닥치는지, 뚜껑을 열고 달릴 때 음악이 운전자 귀에 온전히 꽂히는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테스타로사 스파이더는 세 부문 모두 깔끔하게 통과했다. 채점 과정은 하나씩 풀어보겠다. 순서는 내 마음대로다.

첫 항목은 바람이다. 오픈톱의 낭만은 바람을 얼마나 우아하게 다루느냐에서 갈리는데, 이 차는 실내로 들이는 양부터 놀랄 만큼 적다. 시승 전날 엔지니어와 잠시 말을 섞었는데 테스타로사 스파이더에는 특허까지 등록한 윈드캐처가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사이드 윈도 쪽으로 넘어가는 기류를 시트 뒤쪽에 위치한 작은 터널로 의도적으로 흘려보내는 기술이다. 처음 봤을 때는 숙녀가 우아하게 차에 탑승하기 위한 손잡이로 생각했지만 이 작은 구멍으로 인해 오픈에어링의 퀄리티는 엄청나게 상승했다. 실제로 시속 130km 정도까지는 포마드로 만진 헤어스타일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선풍기 약풍보다 순한 산들바람 정도다. 그 이상부터 스타일이 살짝 구겨지기는 하나 시속 200km 중반까지는 품위를 지킬 수 있었다. 그 너머는 장담할 수 없지만, 애초에 시속 200km 이상은 아우토반이 아닌 이상 불법이니, 합법의 영역에서는 바람 걱정을 접어도 좋다는 뜻이다. 퇴근 후 나 홀로 내부순환 한 바퀴를 도는 것만으로도 테스타로사 스파이더는 돈값을 할 것이다.

이제 소리 체크를 해야 한다. 세상의 소음과 배기음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와중에도 브라이언 존슨의 보컬과 앵거스 영의 기타 리프가 귀에 정확히 박힌다. 음향장비가 소리를 대기에 빼앗기지 않도록 조율되었다는 증거다. 오픈에어링에서의 오디오 승부는 출력이 아니라 배치, 그러니까 스피커가 어디를 향해 소리를 쏘느냐에서 결정된다. 페라리는 워낙 배기사운드가 좋은 것으로 유명해 오디오 시스템에 대한 호평은 없다. 오디오가 별로인 게 아니라 이에 대해 관심을 주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페라리 오디오가 좋다는 소문을 들어본 이는 드물겠지만, 락과 힙합을 이토록 잘 살리는 이 시스템은 귀하다. 소리 이야기를 한 김에 루프 작동 소음에 대해 알려주자면 아주 잘 억제되어 있다. 참고로 루프는 시속 45km 이하에서 14초 만에 여닫혀 도로에서 변신 모습을 으스댈 수도 있다.

마지막 과목은 강성인데, 사실 채점 전부터 합격을 예감했다. 페라리 오픈톱의 강성이 완벽해지던 순간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T 시절만 해도 앞뒤 서브프레임의 박자가 어긋나 살짝 무서웠다. 프런트 조향에 따른 리어 트랙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으니, 프로 드라이버가 아니고서야 한계 근처에서 놀기 어려워 보였다. 그 불안은 488 스파이더와 포르토피노를 거치며 사라졌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오픈톱의 몸놀림은 쿠페에 바짝 다가섰다. 테스타로사 스파이더도 그 계보를 잇는다. 무게는 쿠페 대비 약 90kg 늘었다. 루프에서 40kg, 나머지는 보강 파츠의 몫으로, 건장한 성인 남성 하나를 태운 셈이다. 이 정도면 무게에 집착하는 이라도 충분히 납득 가능한 증량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숫자보다 루프가 사라진 뒤의 강성을 걱정하겠지만 수없이 페라리의 뚜껑을 열고 달린 난 강성에 아쉬움을 느낀 적 없었고, 이번에도 앞뒤가 따로 노는 순간은 지웠다. 섀시 강성 보강에 공을 들였다는 페라리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몸이 먼저 수긍했다.

강성이 받쳐주니 코너가 즐거워진다. 하드코어한 테크니컬 코너(여기서 마을 버스 타면 멀미 유발)가 줄줄이 이어지는데, 하중 이동을 고의로 만들 필요가 없다. 알아서 파고들고 알아서 빠져나온다. 코너링 성향은 완벽한 뉴트럴스티어이며 운전자가 머릿속에 그린 밑그림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그 쫄깃한 감각으로 선명한 색까지 입혀준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로 넘기는 리듬이 자연스러우며, 스티어링 피드백은 빠르면서 솔직하며, 불쾌한 정보만 골라 걸러내는 영리함까지 갖췄다. 마음 놓고 코너를 공략할 수 있다. 이런 감각은 좋은 하드웨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페라리가 자랑하는 전자식 디퍼렌셜, 이에 주입되는 로직에는 모터스포츠에서, 과거의 페라리들에서 적어 내려온 메모장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번 세대에는 FIVE(Ferrari Integrated Vehicle Estimator)라 부르는 디지털 시스템까지 더해졌다. 차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복제한 디지털 트윈이 다음 상황을 미리 계산하고, 제어 장치들은 한 박자 먼저 손을 쓴다. 운전자는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데 이게 실력이다.

이쯤에서 숫자를 정리하고 넘어가자. 스파이더가 분위기로 타는 차라고 해서 스펙이 물러선 것은 아니니까. V8 4.0ℓ 파워 유닛은 터빈 두 발을 달고 최고출력 830마력, 최대토크 85.9kg·m를 뿜어낸다. 여기에 전기모터 3개가 220마력을 보태 시스템 출력은 1050마력에 이른다. 모터 둘은 프런트 액슬에 얹혀 앞바퀴를 굴리면서 토크 벡터링 역할까지 수행하며 나머지 하나는 8단 듀얼클러치 변속기와 짝을 이룬다. 배터리만으로 조용히 25km를 달릴 수도 있으니, 새벽에 이웃과 척질 일이 없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2.3초, 최고시속은 330km에 달한다. 피오라노 랩타임은 1분 18초 100으로 쿠페와의 격차는 겨우 0.6초. 이 정도면 웬만한 슈퍼카 쿠페도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무게 배분은 앞 45 뒤 55라 다운힐에서 한결 여유롭다(아마추어 드라이버의 경우). 흥미로운 것은 이 제원표를 대하는 페라리의 태도다. 플랫플레인 크랭크샤프트나 드라이섬프처럼 스포츠카 메이커라면 입이 근질근질할 자랑거리를 보도자료에서 강조한 적이 없다. 하이엔드는 생색내지 않는다.

타이어에도 같은 태도가 배어 있다. 뒤는 325, 앞도 무려 265로 앞뒤 폭이 60mm나 차이 난다. 무게 배분을 고려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본질은 따로 있다. 섀시의 근본 성향을 오버스티어로 빚어놓고, 타이어 폭과 얼라인먼트로 언더스티어를 고의로 심는 방식이다. 페라리는 줄곧 이렇게 접근해 왔다. 본능은 날카롭게 벼려두고 겉옷만 점잖게 입히는 셈인데, 레이스카다운 움직임을 원한다면 이쪽이 정답이다. 타고난 언더스티어를 지우는 일은 시간과 돈이 몇 배로 들고 때로는 아예 불가능하니까. 다른 양산차 브랜드가 흉내 내기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애초에 앞이 무거운 차가 대부분이고, 미드십을 만들더라도 주행안정화장치로 그 위험함을 숨기기 힘들다. 정확히 하자면 숨길 수는 있다. 다만 숨기는 순간 파워트레인으로 열심히 만들어 놓은 1050마력이 물거품이 된다.

이 1050마력을 온전히 시험할 잘 포장된 고속도로에 테스타로사 스파이더를 올렸다. 페라리 온다고 도로 통제를 했는지 차가 거의 없었다. 좋다. 왼쪽 패들 시프트를 몇 번이고 튕긴 후 마음먹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는다. 정말이지 튀어나가는 게 아니라 휘몰아친다. 이 감각만으로는 바퀴 달린 것 중 가장 빠르다는 확신이 든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 출력을 공도에서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램프에서 본선에 합류하기 전, 사이드미러 저 멀리 차가 달려와도 조급하지 않다. 오른발에 힘을 조금만 보태면 저 간격이 절대 좁혀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서기 때문이다. 고속 안정감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다. 속도가 오를수록 차체가 노면에 밀착되는 감각이 짙어져 크루징이 오히려 여유로워진다. 시속 250km에서 415kg의 다운포스가 차체를 지그시 눌러주니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압도적인 가속에 확실한 감속을 보장한다. 브레이크는 앞 410mm, 뒤 372mm 카본 세라믹 디스크가 각각 6개, 4개 피스톤을 머금은 모노블럭 캘리퍼와 맞물린다.

속도를 즐기는 내내 귀도 즐겁다. 때문에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승 내내 톱을 단 한 번도 닫지 않았다. 배기 사운드는 당연히 12칠린드리에 못 미치지만 터보 엔진의 영역에서는 최고의 음색이다. 볼륨은 크고 부밍음은 적다. 인코넬 배기 시스템 특유의 까랑까랑하고 고회전 영역에서의 하이 피치음이 지붕 없는 캐빈으로 그대로 쏟아진다. 이 소리를 들으며 오래 품어온 궁금증 하나를 꺼냈다. 페라리를 해외에서 탈 때와 국내에서 탈 때 배기음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의심이다. 페라리 엔지니어의 답은 단호했다. 배기 사운드는 어디서나 똑같단다. 세계에서 규정이 가장 엄격한 한 나라(장난스레 욕을 섞으며 한 나라를 가리켰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나라니 궁금해하지 말 것)에 맞춰 튜닝을 마치기 때문이다. 더 자극적인 음색도 더 큰 볼륨도 가능하지만, 전 세계 어디서든 똑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 목표라 했다. 그냥 규정에 맞춰 일관된 제품이라는 말인데 페라리가 하면 괜히 멋있어 보인다.

달리기만 하고 돌아가기에는 아쉬운 것이 페라리다. 유럽에 오면 꼭 환타를 마신다는 사소한 의식이 나에게 있다. 한국 것과는 맛이 확연히 다른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현지의 맛 좋은 오렌지로 만들어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환타를 테스타로사 스파이더와 함께 마시고 싶어 제이드를 졸라 한국 유튜버들과 주유소 편의점으로 향했다. 실버 페라리 세 대가 주유소를 점령하자 옆 세차장까지 술렁였다. 건장한 스페인 청년들이 구경하러 몰려드는 사이 할아버지 한 분도 다가와 우리 차를 찬찬히 둘러본다. 그가 자신의 차로 돌아가는 순간, 이게 웬걸. 그의 차는 현대 투스카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투스카니라니, 심지어 수동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나보다 더 흥분한 89 브로스가 외쳤다. "This Is First Korea Sports Looking Car!" 이어 기념으로 테스타로사 스파이더 옆에 세워 함께 사진을 찍자고도 했다. 그 말에 스페인 할아버지의 표정은 굳었고, 이내 자리를 떴다. 아마도 Sports Looking에서 긁히셨는데 페라리와 나란히 놓고 찍자는 것에 결정타를 맞으신 것 같다. 페라리는 명품 시계처럼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참 좋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에피소드 하나 만들고 차를 주차장에 넣을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가장 싫은 시간이다. 어쩔 수 없이 루프를 닫고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다. 헤어지려니까 더 예뻐 보인다. 스파이더지만 쿠페의 실루엣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게 참 마음에 든다. 게다가 루프를 블랙으로 칠해 놓으니 은빛 차체가 더욱 우주선 같아 보인다. 디자이너 제이슨이 시승 후 테스타로사 스파이더에서 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어디냐는 질문에 방금 적은 문장을 그대로 이야기해줬다. 그의 함박웃음에 나도 녹아버렸다. 그래서 페라리 849 테스타로사 스파이더는 어떤 차냐고? 1050마력을 하늘 아래 풀어놓고도 여유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차. 바람을 다스리고, 음악을 지키고, 강성으로 불안을 지운 차. 페라리는 지붕을 열면서 성능을 덜어낸 것이 아니라 감수성을 더했다. 쿠페가 기록을 위한 차라면 스파이더는 기억을 위한 차다. 내 기억 속의 테네리페는 발음하기 어려웠던 환상의 섬이 아니라 은빛 테스타로사 스파이더의 배경으로 남았다.

 

글 | 안진욱 편집장     사진 |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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