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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의 보법은 다르다.
모터트렌드조현규 기자 2026.08.25

벤틀리는 빠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빠름을 어떻게 해석하고 전달하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같은 '빠름'을 다투면서도 아예 종목이 다르다. 요즘의 스포츠카가 MMA처럼 격렬한 난투극이라면, 벤틀리는 귀족들이 수백 년 전부터 즐겨온 종목에 가깝다.

이를테면 폴로. 멀리서 보면 정적이고 우아하지만, 그 동작 하나를 흐트러짐 없이 완성하는 일은 악명 높을 만큼 어렵다고 한다. 보통의 운동신경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어 어릴 때부터 안장 위에서 단련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사회적, 문화적, 금전적 배경까지 필요하다. 우아함이란 사실 가장 비싼 형태의 단련이다.

벤틀리를 트랙에서 몰아치며 그 생각을 떠올린 이유는 분명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동작 위에는 럭셔리 브랜드 특유의 우아함이 입혀져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모터스포츠 출신이라는 근본이 깔려 있다. 1920년대 르망 24시를 다섯 차례 제패한 '벤틀리 보이즈'의 시대부터, 2003년 스피드 8로 73년 만에 라 사르트에 복귀해 다시 정상에 선 순간도 벤틀리의 소중한 역사다. 그리고 이 브랜드에게 내구 레이스의 기억은 박물관의 전시물이 아니라 여전히 작동하는 유전자다.

창립자 W.O. 벤틀리가 남긴 강령은 지금도 곧잘 인용된다. "빠른 차, 좋은 차, 동급 최고의 차를 만들겠다." 순서가 흥미롭다. '빠른'이 맨 앞에 있다. 럭셔리는 그 위에 쌓아 올린 것이지, 빠름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 유전자는 코너에서 드러난다. 2.5톤에 가까운 차체가 이 정도로 자세를 유지한다는 건 물리법칙에 대한 시위에 가깝다. 하중이 실리는 순간 48V 전동 액티브 안티롤 바가 바깥쪽 롤을 억누르고, 네 바퀴가 힘을 나눠 받으며 육중한 노즈를 코너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물론 트랙 위에서 이런 기술 목록을 떠올릴 겨를은 없다. 남는 건 감각이다. 거대한 질량을 숨기는 게 아니라 다스리고 있다는 감각. 폴로 선수의 말이 그렇듯, 힘은 넘치되 동작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물론 600마력이 넘는 출력, 시속 100km까지 초침이 4번 움직이기 전에 도달하는 가속 같은 숫자놀음은 이 차를 사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을 트랙으로 부른 선택은 영리하다. 이 계층의 고객에게 필요한 건 설득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걸 벤틀리는 안다. 벤틀리를 살 수 있는 이들은 차고에 무엇이든 둘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빠르다'는 말은 이미 새삼스럽지 않다. 대신 벤틀리는 그 숫자를 글자가 아니라 몸의 기억으로 바꿔놓는 쪽을 택했다. 육중한 무게가 무색하게 코너를 가뿐히 빠져나가던 순간의 감각은 어떤 광고 문구보다, 어떤 스펙 시트보다 오래 남는다.

그러니 이번 트랙 시승은 성능을 증명하는 자리라기보다 확신을 완성하는 자리에 가깝다. 평소 도심에서는 끝까지 쓸 일 없는 잠재력. 그러나 그것을 한 번이라도 직접 깨워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거리는 분명하다. '내 차가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를 해낸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게 됐으니까. 확신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글 | 조현규 에디터    사진 | 벤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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