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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결정이 바꾼 현대자동차의 운명
모터트렌드유일한 기자 2025.04.07

“당신네들은 좀팽이야! 당신들하고 일 안 해!” 그날 정주영 회장은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결심도 모른 채 싱글싱글 웃으며 들어온 포드의 실무 책임자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주영 회장은 통역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버렸고, 그의 말을 통역하던 동생은 인상적인 한 마디로 끝을 맺었다. “We will go it alone.”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겠다는 그 말은 현재 세계 3위의 자동차 그룹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래전부터 자동차에 대한 꿈을 꾸다

포드는 1967년 초에 조사단을 구성, 한국 자동차공업의 발전 가능성과 여건, 그리고 한국 시장 진출 타당성 등을 조사하고 있었다. 이 소식이 정주영 회장의 귀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이미 미국으로 돌아간 뒤였다. 그해 7월, 그는 시멘트공장용 기계 구매를 위해 미국 워싱턴에 머물고 있었던 동생에게 ‘포드의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현대가 관심이 있다고 말하라’는 내용의 전보를 보냈다. 이후 포드와의 제휴 계획이 구체화됐고, 현대는 1967년 12월 27일에 정부로부터 자동차 제조 허가를 받았다.

단 1968년 5월까지 포드와의 제휴 아래 자동차 공장까지 갖추는 것이 조건이었다. 그 뒤 포드와 현대자동차 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졌고, 1968년 2월 23일에 현대 사옥에서 포드와 조립 계약을 체결했다. 그 뒤 이른 시일 내에 울산 공장을 만들었고, 모든 자료를 취합하고 포드와 의견을 나눈 끝에 영국 포드의 코티나(Cortina)와 독일 포드의 20M을 주력 차종으로 결정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모든 것이 굉장히 빠르게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정주영 회장은 왜 이렇게 자동차에 집착했을까?

그 자신이 자동차에 많은 것을 걸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운영하던 쌀가게를 접은 후, 1940년에 현대차그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정비소 아도 서비스(Art Service)를 설립했다(아트 서비스가 맞지만, 일본 사람들은 이 발음을 하지 못했고 아도 서비스가 됐다). 이후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강제로 뺏기는 비운도 있었지만, 해방 후 1946년에 미군정과 협상해 서울 중구의 대지를 구매하고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다. 사명에 현대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게 합작 회사?

정부에서 지정한 국산화율 21%를 달성하며 자동차 생산은 시작됐지만, 현대차는 단순한 조립 단계를 벗어나 제조 단계로 진입하기를 원했다. 때마침 정부에서도 자동차 완전 국산화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었고, 그때 포드가 한국 진출 의사를 본격적으로 내비치기 시작했다. 당시 포드는 엔진 공장만 합작할 것이 아니라 50:50으로 새 자동차 회사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자금과 기술이 부족한 현대차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동시에 현대차가 사라져 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당시 현대차의 간부들은 포드의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정부 역시 합작을 적극 권장했다. 그런데 협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업무 분담부터 운영 결정까지 매듭은 지었지만, 1970년 4월에 중국 주은래(周恩來) 총리가 ‘주사원칙’을 내세워 무역 대상을 제한하자 비상이 걸렸다. 이 시기에 토요타가 먼저 중국 시장을 노리고 한국에서 발을 뺐고, 포드 역시 시간을 끄는 행보를 보였다. 여러 핑계를 댔지만, 결국 현대자동차에 엔진을 비롯한 자동차 개발 기술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동차 생산 기술과 개발 기술은 그 결이 다르다. 엔진을 만드는 것은 물론 자동차 전체를 만들어 수출까지 하고 싶었던 현대차는 포드의 태도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포드는 터무니없는 자본금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은행의 융자 확약서를 단순한 종이쪽지로 치부하며 못 믿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기에 더해 포드 직원들이 한국에 몰래 들어와 현대차의 신용도를 조사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인내심이 높다고 해도 폭발할 수밖에.

이 시기의 결정에 대해서는 증언들이 조금 엇갈린다. 정주영 회장이 직접 결단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동생이 제안한 합작 철회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 철회를 정주영 회장이 자신의 입으로 포드의 임원들에게 강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전에 체결한 계약 자체는 남아 있어서 이후 포드의 모델을 몇 개 더 받아서 생산은 했지만, 이때부터 현대차는 기술 독립을 꿈꿔왔던 것이 분명하다. 다른 회사와 합작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니 말이다.

포니를 만든 힘

포드와의 협상이 결렬되고 시간이 흐른 뒤, 한국 시장에서 발을 뺀 토요타 대신 신진자동차가 GM과 새 계약을 맺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GM은 포드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고, 1972년 6월에 합작 회사를 설립했다(훗날 이 회사가 GM 한국사업장이 된다). 현대차는 다른 회사를 물색하는 대신 고유 모델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누가 결정했는지는 그 증언이 엇갈리지만, 분명한 것은 정주영 회장이 고유 모델 개발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다. 우리의 자동차가 수출되고 있는 나라라면 어느 곳에서나 자동차를 자력으로 생산, 수출할 수 있는 수준의 나라라는 이미지 덕택에 다른 상품도 덩달아 높이 평가된다. 자동차를 완벽하게 생산하면 그 나라의 기계공업은 항공기이든지 뭐든지 다 완벽하게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자동차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훗날 정부에서 선택을 강요했을 때 발전설비 대신 자동차 사업을 선택할 정도였다. 그에 대해서는 훗날 다시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

 

글 유일한 수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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