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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 서킷 위의 진검승부
모터트렌드조현규 기자 2026.08.15

하이퍼카 — 전략, 인내, 그리고 한 줌의 행운

우승의 복선은 스타트 30분 만에 깔렸다. 14, 15그리드에서 출발한 두 토요타는 9랩 만의 조기 피트인, 즉 언더컷 전략으로 클린 에어를 확보하며 단숨에 선두권에 복귀했다. 14그리드 출발 우승은 지난해 페라리 83번 차의 13그리드 기록을 경신한 WEC 역대 최후방 그리드 우승이며, 르망 전체로는 1969년 이키스의 포드 GT40 이후 두 번째다. 승자는 고바야시 가무이, 마이크 콘웨이, 닉 더 브리스가 몰았던 토요타 7번 레이스카 TR010 하이브리드. 토요타는 2022년 이후 4년 만의 정상 탈환이자 통산 6승으로 벤틀리와 함께 제조사 통산 승수 공동 5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7번 차는 토크 센서 오작동으로 수차례 '세이프 모드'에 빠졌고 슬로 펑크까지 겪으며 371랩 중 리드 랩은 44랩에 불과했다. 8번 차 역시 히라카와 료의 FCY 위반 드라이브 스루에 이어 좌측 프런트 브레이크 냉각 드럼 고정 나사 풀림으로 두 차례 수리를 받았다. 승부는 종료 6시간을 남기고 나온 두 번째 세이프티카에서 결정됐다. 만타이 DK 엔지니어링 포르쉐(아이한잔 귀벤)의 대형 사고로 발동된 이 세이프티카는 로빈 프라인스의 30초 리드를 지워버렸고, 토요타에게는 브레이크 드럼을 완전히 수리할 시간까지 선물했다. 기술감독 다비드 플뢰리 스스로 "운이 따랐다"고 인정한 대목이다.

닉 더 브리스는 뮬산 코너에서 노르망 나토를 제압하는 과감한 추월로 선두를 꿰찼고, 마지막 47분 프라인스가 트리플 스틴트 타이어의 세바스티앙 부에미를 포르쉐 커브 바깥쪽으로 감아 도는 명추월로 토요타의 1-2를 저지했다. 더 브리스는 세 번째 네덜란드인 종합 우승자가 됐고, 통산 51승째로 승률 50%를 회복한 토요타는 제조사·드라이버 챔피언십 선두까지 함께 꿰찼다.

2위 BMW M 팀 WRT는 1999년 우승 이후 27년 만의 르망 종합 포디엄을 수확했다. 스파 우승에 이은 상승세로 프라인스-르네 라스트 조는 드라이버 랭킹 2위까지 올라섰다. 반면 최다 리드 랩(두 차량 합산 184랩, 레이스의 50%)을 기록한 캐딜락 허츠 팀 조타는 빈손이었다. 38번 차는 파워 스티어링 트러블로 리타이어했고, 12번 차는 슬로 존 위반 페널티와 막판 FCY 타이밍에 발목 잡혀 4위에 그쳤다. 팀 공동 대표 히그넷의 표현대로 "르망에 당한(We got Le Mans'd)" 결과였다. 4연패에 도전한 디펜딩 챔피언 페라리 AF 코르세는 5위가 최고 성적으로, 499P가 라 사르트에서 처음 무릎을 꿇었다. 알핀 엔듀런스 팀은 워크스 고별전을 6위로 마감했고, 애스턴 마틴 토르 팀의 발키리는 섹터 2에서만 1초 이상을 잃는 직선 스피드 열세 속에 8위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 팬들의 시선이 쏠린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의 르망 데뷔전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톱10 언저리를 달리던 17번 차는 종료 7시간 30분을 남기고 오른쪽 프런트 서스펜션 파손으로 코스에 멈춰서며 리타이어했다. 반면 19번 차는 초반 진동과 시스템 리셋을 요구하는 수차례의 정차를 이겨내고 13위로 완주, 제조사 포인트권에 단 한 계단 차이까지 다가섰다. GMR-001의 첫 24시간은 가능성과 숙제를 동시에 남긴 셈이다.

LMGT3 — 키팅의 도박, 콜벳의 열 번째 영광

LMGT3에서는 TF 스포츠 콜벳 33번 차가 17그리드에서 출발해 우승하는 WEC 신기록을 썼다. 팔꿈치 부상 복귀전이던 브론즈 드라이버 벤 키팅을 초반에 길게 태워 의무 주행 시간을 소화한 뒤, 니키 캐츠버그와 조니 에드가의 페이스로 승부하는 역발상 전략이 적중했다. 특히 마지막 5스틴트를 홀로 소화한 에드가의 주행은 이번 레이스 최고의 드라이빙 중 하나였다. 통산 세 번째 르망 제패에 성공한 키팅은 WEC 클래스 9승으로 미국인 최다승 드라이버가 됐고, 콜벳은 Z06 GT3.R의 첫 르망 클래스 우승이자 브랜드 통산 10번째 르망 승리를 자축했다.

 

LMP2 — 인터 유로폴의 왕조 구축

LMP2는 인터 유로폴 컴페티션의 완승이었다. 톰 딜만-니콜라스 옐롤리-야쿠브 스미에호프스키의 43번 차가 343번 차와 1-2 피니시를 완성하며 팀은 최근 4년간 세 번째이자 2년 연속 클래스 우승을 달성했다. 스미에호프스키는 오레카 07 시대 유일한 르망 3승 드라이버가 됐다. 중반까지 선두를 지키던 듀케인 팀은 리하르트 베르스호르의 뮬산 직선 브레이크 파손으로 탈락했고, 에스테반 마송의 포레스티에 레이싱 바이 파니스는 연료 전략 열세로 3위에 만족해야 했다. 프로암은 라우린 하인리히가 데뷔전 우승을 장식한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레이싱 바이 APR 4번 차의 몫이었다.

 

제이미 채드윅(Jamie Chadwick)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 리저브 드라이버

국적: 영국 | 생년월일: 1998년 5월 20일

주요 경력

2025년: 유럽 르망 시리즈 LMP2 클래스 2위

2019·2021·2022년: W 시리즈 챔피언

2019년: 뉘르부르크링 24시 SP8T 클래스 우승

Q. 오픈 휠에서 내구 레이스로 넘어오며 새롭게 배운 점이 있다면요?

모터스포츠는 본래 팀 스포츠지만, 내구 레이스에서는 그 사실이 훨씬 강하게 피부로 와닿습니다. 모두가 제 역할을 완벽히 해내야 팀의 잠재력이 온전히 발휘되죠. 힘든 순간도 많지만, 거대한 집단적 노력이 결실을 볼 때의 보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Q. 르망 3회 우승자인 안드레 로테러 같은 베테랑에게 어떤 영감을 받나요?

그만한 업적을 이룬 선수와 차를 공유하는 것 자체가 큰 배움의 기회입니다. 드라이빙도 인상적이지만, 정작 더 큰 영감은 차 밖에 있습니다. 레이스 주말을 대하는 태도, 팀과 소통하는 방식 등 그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가장 많이 배웁니다.

Q. 이제는 반대로 젊은 드라이버들의 멘토가 되기도 하는데요.

선배들을 지켜보던 처지에서 후배들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위치로 옮겨가는 과정이 참 흥미롭습니다. 모터스포츠에서 경험은 강력한 힘이니까요. 여러 단계를 거치며 쌓아온 지식을 자연스럽게 물려줄 수 있어 기쁩니다.

Q. 시작부터 응원해 준 한국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팀이 밑바닥부터 성장하는 여정을 첫날부터 함께 지켜봐 주셨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죠. 르망 우승은 이 여정에 함께한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일 겁니다. 묵묵히 지지해 주신 팬 여러분도 그 영광을 함께 온전히 누리셨으면 합니다.

 

글   조현규 에디터 (SPOTV 모터스포츠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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