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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알만사(Samuel Almansa)는 스페인 마요르카에 머물며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한다. 쿠엥카(Cuenca)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에어브러시를 주요 도구로 사용해 화면을 천천히 구축해 왔다. 그가 그려온 대상은 동물부터 작은 사물, 짧은 장면까지 다양하지만, 관통하는 특징은 색이 얇게 쌓이며 만들어내는 부피감과 반사감이다. 작업을 가까이서 보면 도자기처럼 뿌옇고 투명한 광택이 도는 표면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에어브러시를 통해 만들어낸 특유의 톤과 밝기 덕분이다.
최근 사무엘 알만사는 행운을 상징하는 작은 사물들에 관심을 두었다. 복주머니, 노리개, 다루마, 마네키네코 같은 아시아권의 오브제들이다. 문화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붙은 사물이지만, 그는 그 의미를 설명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화면에서 색과 광택, 곡선과 부피를 차분히 다루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사물은 상징이나 캐릭터보다는 손바닥에 올려둘 수 있는 작은 아이콘처럼 보인다. 이 작업을 모아 알만사는 지난해 12월 19일부터 1월 11일까지 갤러리 스탠에서 개인전 〈Lucky Charm〉을 열었다. 작업에 심오한 메시지를 담기보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기분과 작은 웃음을 관객들에게 선물하려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겼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입니다.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진짜 꿈만 같았죠.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영상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터라 ‘회화를 그만둬야 할까?’ 고민했거든요. 그때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상상도 못 했어요. 저는 스페인 마요르카에 거주하고 있는데요. 지구 반대편 한국, 서울에서 제 이름이 걸린 솔로 전시라니(웃음). ‘내가 지금 어떤 제안을 받은 거지?’ 싶을 정도였어요.
전시 타이틀이 <Lucky Charm>이라니, 신년에 참 잘 어울려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어떻게 결정됐나요?
갤러리 스탠 송인지 디렉터와 처음 전시 얘기를 시작했던 게 2024년 말, 2025년 초였어요. 당시 한국은 정치, 경제 등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힘을 북돋아 줄 밝은 무언가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들었고, 그 순간 제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어요. 저는 아시아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그럼에도 아시아권의 행운 상징물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었어요. 그렇기에 오히려 더 흥미로웠습니다. 오랜 시간 리서치를 시작했죠. ‘행운의 물건, 부적은 무엇인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사실 사물 자체엔 의미가 없잖아요. 그럼에도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면서 행운의 오브젝트가 되는 거죠. 이번 전시의 작업들도 관객 개개인이 의미, 행운을 부여하길 바랐어요.
작업의 소스가 된 복주머니, 노리개, 해태 등 행운 오브제 대부분의 실물을 보지 않고 구현해야 했을 텐데요.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복주머니나 노리개, 마네키네코 같은 것들을 실물로 본 적이 없었어요. 사진 자료에 의지해 작업해야 했죠. 더욱이 석재처럼 단단한 재질의 기물을 제 방식의 도자 형태로 해석하는 게 특히 까다로웠어요. 먼저 쉬운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루마는 계란을 떠올리며 형태를 만들고, 얼굴을 그린 뒤 볼륨을 계산하면서 진행했어요. 반대로 묘사가 까다로운 용과 같은 소재는 리스트에 적어놓고도 ‘하지 말자’라고 몇 번이나 지웠습니다. 묘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나라마다 생김새도 다르더라고요. 또한 사진으로 용의 뒷면, 아랫면을 확인할 수가 없잖아요. ‘포기하자’ 거듭 생각했는데 결국은 그릴 수밖에 없었죠.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었지만 만족스러워요. 전 항상 어려운 것을 해야 동기가 생기는 타입이니까요.
디지털 이미지에 의존해야 하니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혹시 그렸으나 포기한 오브제도 있었나요?
그럼요. 정말 많았어요. 거북이가 대표적이죠. 거북이는 전 세계에 있는 동물이지만, 한국과 스페인의 거북이는 생김새가 완전히 달라요. 각각의 차이를 모른 채 단순히 그리려고 한다면 작가로서 저만의 기준, 의도가 사라지는 거니까요. 이 밖에도 어떤 건 세계 공통 행운의 상징인 반면, 또 어느 건 한 지역에 국한된 상징이기도 했어요. 전시는 결국 선택의 과정이잖아요. 리스트에서 버려진 것들도 이번 리서치 여정의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이번 작업에서 크기와 기법도 변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저는 보통 2m 이상의 벽화나 큰 페인팅을 그립니다. 하지만 한국은 스페인과 갤러리 공간도 다르고, 컬렉터들 역시 층고가 높지 않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데다가 미술 시장의 소비 방식도 다르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생애 처음으로 작은 작업을 했습니다. 작은 작업일수록 높은 집중도가 요구된다는 장점을 깨닫게 되었죠. 기법도 달라졌습니다. 평소엔 스프레이로 배경을 처리하는 편인데요. 한국 관객들은 페인팅의 터치를 살피는 편이라는 송인지 디렉터의 조언에 따라 가는 연필과 붓을 활용했습니다. 당연히 더 긴 과정이 필요했으나 그만큼 진한 회화가 되었어요.
작가님의 초기 작업도 궁금해집니다.
저는 페인팅을 두 번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한 번은 학교에서, 한 번은 성인이 된 이후예요. 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회화를 ‘개념을 다루는 도구’라고 생각했고, 주로 추상 작업을 했습니다. 감각이나 표면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죠. 졸업한 뒤 저는 회화를 멈추고 영상 촬영 작업에 몰두했어요. 붓 대신 카메라를 쥐었죠. 한번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인도에 갔다가 같이 있던 화가가 쉬는 시간마다 그림을 그리는 걸 보았는데 그게 눈에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나는 왜 이걸 안 하고 있지?’라는 질문이 생겼어요. 다시 그림을 그려보자 마음먹었죠. 이후에 붓에서 에어브러시로 작업 방식을 바꾼 게 작가로서는 또 다른 결정적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10살 무렵 형이 에어브러시를 선물해 줬거든요. 한참을 서랍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는데 작업을 다시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뒤 느지막이 에어브러시를 다시 발견했어요. 저만의 무언가를 할 용기가 문득 생겼달까요? 제게 에어브러시는 단순한 도구나 기술, 장르가 아니라 정체성이자 소중한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작업은 예전보다 훨씬 감각적이고 개인적이고 서술적이에요. 단순히 추상에서 형상이라는 변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관심사나 개념을 다른 감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순간의 개인적인 경험이 생각이나 선택, 주위 상황을 바꾸기도 하죠. 작가님에게도 행운의 오브제들이 있나요?
작업실에 작은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요. 저는 거기를 ‘참 테이블’이라고 불러요. 친구 작가들이 선물한 작은 조각이나 전시장에서 가져온 기념품, 제가 수집한 장난감, 조카가 그린 그림 같은 것들이 모여 있어요. 서로 전혀 관련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묘하게 연결이 생기더라고요. 행운이 깃든 참(Charm)도 처음엔 그저 개인에게 특별한 물건들 아니었을까요? 그중 가장 좋아하는 건 포켓몬스터 꼬부기 피규어예요(웃음). ‘왜 가장 좋아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긴 어려워요. 어쩌면 참이란 설명하기 어려울 때 행운의 효능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걸 수도 있겠어요. ‘왜 이것인가?’보다 ‘어쩌다가 내 손에 놓였는가?’가 중요하달까요? 결국 참은 행운보다 지속가능한 행복에 가까운 개념 같아요.
작품 하나하나 행운과 행복을 담는 마음으로 완성했겠어요. 이러한 작품을 한데 모은 이번 전시가 한국 관객들에게 어떤 감정이 남았으면 하나요?
이번 전시는 큰 감정보다는 작은 감정들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참이라는 건 원래 거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짧고 사적인 감정으로 작동하잖아요. 사람들이 작품 앞에서 아주 짧게라도 미소를 짓거나, 귀엽다고 느끼거나, 편해지거나, 이유 없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의미는 그다음에 붙어도 되고, 안 붙어도 돼요. 참은 원래 그런 거죠.
그렇다면 이번 <Lucky Charm> 전시는 작가님 인생에서 어떤 장면으로 기억될까요?
이 전시가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저에게 정말 먼 나라였고, 제가 좋아하던 작가들이 작업을 보여주던 곳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제가 그곳에서 전시를 열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거리는 물론, 작업 방식이나 리서치 과정 전반에서 작가로서 가장 멀리 온 전시예요. 이 전시는 제 작업이 세계와 연결되는 첫 장면일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이번 전시가 제 인생에 남길 의미를 규정하긴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 의미가 더 명확해질 때까지 열심히 작업하려고요. ■
글 유승현 피처 에디터 사진 주보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