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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Cruiser, 메르세데스-AMG GLS 63
모터트렌드조현규 기자 2026.05.20

살아가다 보면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여 묘하게 훌륭한 결과물을 내는, 이해하기 힘든 조합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내겐 메르세데스-AMG GLS 63이 그렇다. 여유로운 드라이빙을 상징하는 플래그십 대형 SUV와 모터스포츠 무대를 호령하는 고성능 브랜드 배지의 결합이라니, 솔직히 어떤 감각일지 쉽사리 가늠되지 않는다.

비슷한 장르를 꼽자면 흔히 G바겐이라 부르는 G63이 떠오르긴 한다. 하지만 결이 다르다. 그 녀석은 다분히 오프로드 감성에 무게를 두고 고유의 디자인과 헤리티지를 앞세우는 차니까. 돌이켜보면 덩치 큰 고성능 자체가 낯선 문법은 아니다. 미국만 해도 집채만 한 차체에 고배기량 8기통 엔진을 얹고 고성능 배지를 단 채 괴력을 뽐내는 녀석들이 흔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실내는 제법 익숙하다. 지난해 경험했던 마이바흐 GLS의 광활한 공간감이 그대로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마이바흐의 사치스러운 우아함과는 묘하게 다른 문법을 구사한다. 실내 패널 곳곳을 넓게 덮은 카본 트림이 ‘나 고성능 모델이요’라며 은밀하게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다. 레이스카에 어울릴 법한 꽉 조이는 버킷 시트나 거친 스웨이드 같은 소재는 굳이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오히려 최고급 나파 가죽으로 시트와 실내를 빈틈없이 감싸며 플래그십 SUV 본연의 극대화된 고급스러움에 온전히 집중한 태도가 꽤나 인상 깊게 다가온다.

가장 황홀한 순간은 역시 시야가 탁 트인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내달릴 때다. 개인적으로 뇌리에 깊게 박히는 차는 항상 머릿속에 특정한 장면을 그리게 만드는데, 이 녀석을 몰다 보면 어느새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을 시속 200km 언저리로 여유롭게 크루징 한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에 빠져들곤 한다. 그만큼 이 차가 뿜어내는 고속 안정감은 최근 경험한 여느 대형 SUV들을 단연 압도한다.

속도계 바늘이 치솟을수록 육중한 차체를 바닥으로 짓누르며 네 바퀴가 아스팔트를 끈끈하게 움켜쥐는 감각이 스티어링 휠을 타고 생생하게 전해진다. 앞차를 추월해야 하는 순간에는 612마력이라는 두둑한 출력의 잔고에서 필요한 만큼 여유롭게 힘을 꺼내 쓰면 그만이다. 넘치는 속도감에 심취해 급제동이 필요한 순간이 오더라도 불안감은 없다. 듬직한 브레이크 시스템은 2.8t에 달하는 거구를 거짓말처럼 꽉 부여잡고 맹렬했던 기세를 단숨에 제압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거구의 핸들링을 두고는 여러 갈래의 평이 나올 수 있다. 제아무리 첨단 전자 장비로 무장했더라도 2.8t에 육박하는 대형 SUV라는 태생적 한계를 물리 법칙 너머로 지워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스티어링 휠을 쥐고 2도어 퓨어 스포츠카나 고성능 해치백에서나 느낄 법한 신경질적인 날카로움을 바란다면, 그건 차에 대한 꽤나 멋쩍은 실례다. 그럼에도 굽이치는 고갯길에서 아드레날린을 분출할 때면, 지능적인 서스펜션 시스템이 부지런히 차체의 롤링을 다잡으며 제법 기분 좋은 박자를 척척 맞춰낸다.

다시 곱씹어 보면, 아팔터바흐의 엔지니어들이 이 거대한 쇳덩어리에 612마력을 쏟아부어 완성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지향점은 기민한 코너링 머신보다 대륙을 횡단하는 그랜드 투어러(GT), 즉 압도적인 고속 크루징에 맞닿아 있다. 이것이 과연 아쉬운 단점일까? 자신이 지향하는 바가 이토록 명확하고, 그 목적지 안에서 대체 불가능한 짙은 만족감을 선사한다면, 플래그십 고성능 SUV로서의 존재 이유는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

글 조현규 에디터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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