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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ic to Peace, 홍현준(N5BRA)
모터트렌드모터트렌드 기자 2025.04.21

그라피티로 시작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회화 스타일을 구축한 작가 N5BRA 홍현준. 그의 작품은 급변하는 세상 속 흔들리는 청년의 불안과 자존을 담고 있어 국내외 영 컬렉터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26일부터 10월 20일까지 서울 강남의 갤러리 스탠에서 열린 개인전 <XANAX(자낙스)>의 작가 N5BRA 홍현준을 작업실에서 만났다. 실존과 불안처럼 관념적 단어가 담긴 질문이 건넸고 그는 느릿하지만 분명한 다짐과 생각이 담긴 답을 주었다.

인터뷰를 앞두고 N5BRA(엔오브라), 노브라, 홍현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막막했다.

셋 다 맞다. 엔오브라는 그라피티 활동 당시 활동명인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브라는 작업 초기부터 알던 지인들이 장난삼아 부르던 닉네임이다. 최근에는 그라피티라는 틀에서 벗어나 작업을 하고 있어 본명을 병행해 쓰고 있다.

이름이 곧 누군가의 정체성이기도 하니까, 첫 질문으로 이름에 관해 묻고 싶었다. 그라피티에서 회화로 방향을 틀게 된 계기가 있을까?

어려서부터 그림으로 먹고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전업 작가가 되는 구체적인 등용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라피티, 일러스트 닥치는 대로 그렸다. 일어나서 그림 그리고, 밥 먹고 그림 그리고, 자기 직전까지 그림만 그렸다.

그렇게 많이 그린 그림에는 여성이 있다. 이번 전시 <XANAX(자낙스)> 역시 마찬가지고.

정확히 말하자면 인체를 그리는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끝없는 관심을 가져야만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 수 있지 않나. 인체는 내게 그런 대상이다. 인체를 그림으로써 무얼 이야기하고 싶냐고? ‘육체 안에 담긴 의식은 무엇인가?’, ‘의식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실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덧없는 물음이다.

물리적으로 보이는 인체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의식에 대한 고민이 길고 깊었던 셈이겠다. 젊은 구도자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긴 시간 실존, 의식에 대해 고민한 이유는 무엇일까?

불안 때문이다. 막연하게 느껴지는 불안. ‘이 불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불안은 왜 느껴지는 것일까?’ 궁금했다. 개인적 감정의 경험을 넘어서 사람들도 이 보편적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 탐구했다. 동시에 인간의 의식에 관해서 공부하게 됐다. 이번 전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ques Lacan)의 욕망 이론에서 근간했다. 라캉은 자신과 외부 환경을 구분하며 자아를 형성하는, 그러나 모든 것을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상상계’, 무수히 많은 기호, 상징으로 이뤄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상징계’, 그리고 무수한 욕망이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하지만 닿지도 언어로 규정할 수도 없는 ‘실재계’로 세계를 나누어 바라보았다. 나는 ‘상징계’에 머물며 상상이라는 구멍을 통해 닿지 않을 ‘실재계’에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욕망하고 그림을 그리며 불안을 느껴왔던 거다.

보이지 않는 감정, 의식의 세계를 유형의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 결국 작가의 숙명이다. 이러한 개념과 상황을 그림으로 어떻게 그려내고자 했나.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공간을 제대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도시의 거리, 건물들을 배경으로 그렸는데 점과 선, 면을 넘어 방향을 통해 회화 속 공간이 만들어지는 시각적 원리를 찾아 더 정확하게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실제 뇌가 눈을 통해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도 회화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입체의 현실을 한 번에 인식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가 보았다고 느끼는 것들은 사실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이 시신경을 타고 뇌 속 평면 모니터에 띄운 동영상과 같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입체를 느껴본 적 없는 셈이다. 이렇게 세상을 인식하는 시각부터 불완전한데 나는 계속해 완벽한 그림을 그리고자 발버둥 쳐왔다. 이 덧없는 노력 자체가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넘어가고자 하는 내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의 시각적 원리를 더 완벽하게 구현하고자 노력하며 불안과 끝없는 노력 자체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따금 삶이라는 게 언덕 위에 무겁고 큰 돌을 영원히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예술가로서 느끼는 불안, 허기도 이와 유사하리라 본다.

더 숭고하고 순수한 반열의 예술적 경지에 이르고 싶었다. 수면, 식사 시간을 빼고는 그림만 그렸는데 ‘아, 이게 궁극적인 예술의 목표가 될 수 없구나’ 깨닫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닿기 위해 느끼는 불안함 그 자체가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비로소 시작점에 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무언가가 조금 느껴지기 시작한 기분도 든다. 존재와 소멸을 주제로 한국적 회화를 그리는 유근택 작가님을 참 좋아하는데 ‘삶을 그림에 갈아 넣으면 저런 작업들이 나오는구나’ 싶다. 작가님께 경외감을 참 많이 느낀다.

불안한 감정과 작업, 즉 삶과 예술이 합치된 느낌을 이제는 받나?

그렇다. 지난 3년간 한 스승님 밑에서 그림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시각적 구성 원리를 다시 제대로 배웠다.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회화 지식으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물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붓을 쥐고 불안을 자유롭게 만져보자’는 다짐이 선다.

그래서 시작점에 선 느낌이 들었나 보다. 이번 전시를 중심으로 최근 작업에서는 무엇에 집중하고 있나?

방향이다. 인간이 공간을 느끼는 근원적 요인은 방향 때문이다. 평면에서 쏟아지는 선이 아니라, 소실점에서 흐르는 방향을 통해 거리감을 느낀다. 그걸 회화에 담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작품 속 신체를 관통하는 막대 역시 몸을 찌르는 무기가 아니라 온전히 내가 자리 잡고 방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추와 같은 존재다. 동시에 색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는데, 이전 작품보다 낮은 채도의 물감을 쓰고 있다. 초기에는 화려한 색들을 많이 썼다. 젊은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다. 이제는 내 주위를 채우는 현실 속 색에 관심이 깊다. 온전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색은 채도가 낮다. 또 해가 쨍쨍한 날보다 구름 낀 날 유독 색이 진하게 느껴지곤 하는데, 단일 방향이 아닌 모든 방향에서 빛이 산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실과 더 가까운 채도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들을 근간으로 색을 사용하는데 신중을 기하게 된다.

이전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구성의, 새로운 그림이다. 기존 작품 팬들에 대한 불안은 없나.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태도다. 작가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연구하며 성장해야 한다. 기존의 것을 답습한다면 예술도 인생도 너무 짧게 보는 게 아닐까?

십분 공감한다. 끝없는 변화 속에서 성장하는 법이니까. 전시 타이틀 <XANAX(자낙스)>는 무엇을 상징하나.

자낙스는 공황장애, 불안, 우울증 약이다. 내 그림이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누구나 불안을 느끼기 마련인데 그걸 다룰 방법이 약물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불안이 찾아올 때 그림 그리는 것 외 하는 일이 또 있나?

드라이브를 한다. 군대에서 운전병 출신이기도 했고(웃음). 그림에 그려진 도시 전경 모두 실제 운전해 돌아다니며 사진으로 찍어두었던 곳들이다. 그라피티하는 친구들과 있으면 서울 곳곳의 히든 스폿을 많이 알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래서 위를 바라보는데, 그라피티를 하는 친구들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림 그릴 곳을 찾아야 하니까(웃음).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속 도시 전경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인 이유도 여기 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삶과 작품이 합치된 작가라는 느낌을 받는다. 작가로서, 혹은 인간 홍현준으로서 계획하고 있는 다음 스텝이 있나?

나를 둘러싼 작은 세계를 깨고 더 큰 세상에 나를 노출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미국에 가려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비자 문제로 언제 떠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결국 한국, 미국 그 어디든 이렇게 한평생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듯하다. 거대한 계획보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바람뿐이다. ■

 글 유승현 피처 에디터 사진 주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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