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https://www.motortrend.kr/news/articleView.html?idxno=79
날씨가 많이 더워졌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요즘은 드라이빙 인스트럭터 활동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어요. 또 모터스포츠 해설위원을 하고 있는데요. 레이스는 그만뒀지만 레이스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더 쉽고 재미있게 알려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드라이빙 인스트럭터가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간단하게 자동차로 빠르고 안전하게 달리는 방법을 가르쳐드리는 거예요. 사람과 사람이 인연을 맺을 때도 상대를 알아야 대화를 나눌 수 있잖아요? 자동차가 움직이는 기본적인 원리와 물리적인 법칙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핵심이고, 저는 그걸 알려드리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사람들을 가르치다 보면 실력이 한눈에 보이기도 하나요? 그럼요. 시선 처리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 시선 처리를 하는 방법만 바꿔도 금방 빨라져요.
교육을 하면 보람을 느낀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제게 교육을 받으신 분이 혼자서 멋지게 서킷을 타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원래 운전을 무척 어려워하시던 분이었거든요. 그분이 레벨업된 모습을 본 순간이 가장 짜릿했어요. 나중에 제게 감사하다고 인사하시면서 이제 운전을 자신 있게 한다고 하셨는데, 안전하고 빠르게 가는 방법을 잘 가르쳐드렸구나 하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요즘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예약하는 게 무척 어렵던데요. 맞아요. 유명한 가수 콘서트 예매보다 더 어렵게 성공했다고 하신 분도 계세요. 사실 너무 좋은 신호 아닌가요? 운전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것 같아요. 자동차 문화가 활성화되고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놀랍기도 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레이스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인 그때와 비교하면 어때요? 너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제 직업을 밝혀도 별다른 질문이 없었다면 이제는 디테일한 질문이 돌아와요. 부모님도 위험한 직업이라며 많이 걱정하셨는데 이제는 무척 자랑스러워하세요.
오래 몸담고 계시잖아요.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나요? 제가 레이스를 시작한 2011년은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였어요. 제 노력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미래가 바뀌던 때였거든요. 그런데 레이스는 단순했어요.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가 우승하니까요. 내가 노력하는 만큼 돌아오는 정직한 분야라서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깊게 빠져들었고, 아직도 이곳에 몸담고 있죠. 또 나만의 허들을 뛰어넘는 재미가 있어요. 여전히 나만의 허들도 정해 놨어요.
제가 모터스포츠를 시작한다면 겁이 났을 것 같아요. 특히 금전적으로요. 대출을 많이 받았어요. 겁도 없었죠. 20대 초반에 큰돈을 빌리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잖아요. 그때는 이자가 뭔지도 몰랐어요. 일단 대출받고 어떻게든 해보자는 식으로 무모하게 뛰어들었죠. 이후로는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여자 드라이버가 얼마 없다 보니 주목을 받기 쉬웠고, 좋은 스폰서를 만나서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어요. 물론 고생도 엄청 했어요. 성적을 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이 컸거든요. 다행히 레이스를 그만두는 2018년까지 후원을 끊이지 않고 잘 받을 수 있었어요.
여성 드라이버에 대한 선입견이 따라다녔을 것 같은데요. 엄청났죠. 비웃음과 비난 섞인 말도 많이 들었고요. 저한테 지면 아주 큰일이 나는 것처럼 나쁜 말을 하시거나 음담패설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선을 긋고 친해지지 않으려는 분들도 많았고요. 제가 여자라서 받은 주목이 있었기 때문에 드라이버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에도 쉽게 손가락질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시기가 무척 길었어요. 사실 되게 많이 울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생각했던 건 스포츠 선수는 말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성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더 열심히 했어요. 독기를 품었죠. 손등이 부서지고 목이 부러져도, 재활이 우선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리던 시기에도 꿋꿋하게 차를 탔어요. 손가락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훈련을 계속해야 하거든요. 그때 재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인지 지금도 온몸이 되게 아파요.
은퇴 후의 삶이 달라졌나요? 크게 달라진 건 없었어요. 근데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 무대를 떠나고 나서도 레이스하는 꿈을 엄청 많이 꿔요. 너무 그리워하나 봐요. 그래도 인스트럭터, 해설위원을 하면서 그 무대 주변을 맴돌고 있네요. 첫사랑 근처에 머물면서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자동차를 좋아하세요? 운전을 좋아하세요? 음… 확실히 저는 운전을 좋아해요. 새로운 자동차가 나오면 ‘저거 타고 한계까지 몰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거든요. 서킷에서 몇 초가 나올지, 어떤 느낌일지, 바뀐 스펙을 보고 성능을 유추해 보기도 하고요. 에디터님도 제 차 상태를 보셔서 아시잖아요? 제가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저렇게 꼬질꼬질하게 다니진 않았을걸요?
그럼 좋아하는 자동차 스타일은 뭐예요? 예전에는 콤팩트하고 내가 이끄는 대로 재빨리 따라와 주는 차가 좋았어요. 나이가 들어가니까 점점 편한 차가 좋아지네요. 안전해야 하고, 고속 안정성과 편의 기능도 좋아야 해요. 일 때문에 고속도로를 워낙 많이 달리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또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고 있어요. 취미가 다양해지면서 짐이 많아졌거든요. 메인터넌스도 점점 귀찮아져서 차에 손이 덜 갔으면 좋겠어요. 곧 차를 바꿀 예정인데요. 테슬라 모델 Y 롱레인지로 정했어요. 의외인가요?
정말 의외예요. 솔직히 사람들이 왜 그렇게 테슬라를 좋아하는지 궁금했어요. 전혀 제 취향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테슬라를 타셨던 분들은 오래 타봐야 매력을 안다고 하세요. 자동차 업계에 있다 보니 다양한 걸 타보고 직접 경험해 봐야 해요. 테슬라를 진지하게 경험해 보려 합니다.
일할 때의 권봄이와 일상에서의 권봄이는 다른가요? 완벽히 다른 사람이죠. 일할 때는 차갑고 날카로워 보이고 정석대로 하는데요. 모터스포츠 특성상 해이해지면 사고로 연결될 수 있어서 저 스스로 채찍질을 엄청 했어요. 그런데 일상에서는 완전히 허당이에요. 고양이들과 놀고, 잠자고, 야구를 보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가식적이라고 놀려요.
야구도 좋아하신다고요? 롯데 팬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트를 던지는 강민호 선수가 너무 멋있어 보여서 입문했어요.
자기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드는 순간은 언제예요? 바쁜 일정을 마치고, 집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야구를 보는 제 모습이 너무 좋아요. 그런 제 모습을 바라보면 ‘너 너무 멋져, 정말 잘 살고 있어’라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 레이서로 다시 만나긴 어려울까요? 돌아가고 싶어요.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절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싶어서 항상 준비는 하고 있어요. 문은 항상 열려 있죠.
많이 다치셨잖아요. 그래서 부상의 위험 때문에 그만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절대 아니에요. 죽을 뻔도 했는데 더 이상 무서울 건 없죠.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죽어도 서킷 안에서 죽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성적이 나쁜 건 두려워요. 그리고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요. 언젠가는 꼭 한번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상을 찍어보지 못한 아쉬움이라… 찍어보면 후련할 것 같아요? 글쎄요. 예상이 안 되네요. 조금만 더 가면 올라갈 수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내려와서 더 미련이 남은 거죠. 만약 다시 복귀해서 정상에 선다고 하면 후련할지 허무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상에 올라보고 싶어요.
끝으로 프로 레이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건넬 조언이 있으세요? 프로 레이서는 무조건 빨리 가야 하는 직업이에요. 하지만 빠르되 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빨리 가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신중하고 정확하게, 또 안전하게 가셔야 해요. 레이스는 브레이크 싸움이거든요. 저는 늘 빨리 가는 것에만 집중해서 너무 급하게 달렸어요. 그래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후회되는 게 많아요. 카레이서를 꿈꾸시는 분들이 계시면 빨리 가는 걸 목표로 두되 브레이크를 밟아가면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조현규 에디터 사진 주보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