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https://www.motortrend.kr/news/articleView.html?idxno=2765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편집장님은 무슨 차 타세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동차 매거진을 만드는 사람이 정작 무엇을 모는지, 그 간극이 궁금한 모양이다. 그들의 눈빛을 보면 포르쉐 997 카레라 수동에 올린즈와 BBS 조합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어쩌나? 난 미니를 탄다. 3세대 F56 3도어 SD. 그러면 으레 다음 물음이 따라온다. “왜 하필 미니예요?” 답은 미니를 타본 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것이다. 보기엔 한없이 사랑스럽지만, 그 귀여운 얼굴 뒤에 의외로 단단한 다리가 숨어 있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스티어링의 묵직함, 코너를 파고들 때 차체가 돌려주는 또렷한 응답. 반전이야말로 이 차가 건네는 가장 은밀한 즐거움이다. 미니에 빠진 대부분의 이유에 나도 동감하고 있다.
벌써 10년째다. 주행거리는 6만km 남짓. 그럼에도 여전히 새것처럼 설레고, 마주칠 때마다 마음이 동한다. 한 대의 차를 십 년 곁에 두면, 어느 순간 그것은 차가 아니라 동행이 된다. 출근길의 기분도, 무심히 바뀌어 가던 계절의 빛깔도 이 작은 차와 함께 켜켜이 쌓여왔다. 며칠 전부터, 미니와 함께하는 순간이 한층 더 각별해졌다. ‘미니런’을 다녀온 뒤의 일이다. 미니런이 무엇이냐? 간결하게 ‘미니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일’이라 답하겠다. 서울 언저리를 슬쩍 도는 산책이 아니다. 다 함께, 멀리, 떠나는 여정이다. 미니 공식 동호회 ‘미니 코리아(BMW 한국 법인이 아니라 동호회의 이름이다)’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스무 번째를 맞았다. 한 모임이 20년을 버텨왔다는 것은, 이들 사이에 끝내 식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 발자취 역시 가볍지 않다. 해남과 거제, 태백을 지나 제주에 이르기까지 이 땅 곳곳을 누벼왔고, 한때는 차를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 일본까지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동호회가 자비를 들여 본인의 차를 선박에 올리고 국경 너머로 함께 달린다는 발상 그 자체가,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단숨에 설명한다. 하여 난 미니 오너로서, 또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들과 동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같은 주에 잡혀 있던 라스베이거스 출장과 일정이 겹쳤으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화려한 도시를 미루고 택한 곳은 제주. 그것도 미니를 배에 싣고 가는, 가장 더디고 가장 번거로운 길이었다. 미리 일러두자면 이 글은 취재를 통한 기사가 아니다. 단정한 리드도, 정돈된 정보의 나열도 없다. 그저 이들과의 시간을 기록해 우리끼리의 감정만을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여러 사정이 겹쳐, 이번 런은 내 미니 대신 에이스맨 JCW 일렉트릭를 타고 간다. 아직 타보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상에 JCW 배지까지 박혀있지만, 솔직히 떠나기 전부터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장거리를, 그것도 전기차로 가다니. 고백하건대 나는 전기차와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이다. 충전이 번거롭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디서 충전할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를 셈하다 보면 떠난다는 들뜸마저 한 김 식어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가 전기차로 전국을 누비는 걸 보면 나만 유난인가 싶어, 이참에 한번 부딪쳐 보기로 했다. 편견이란 본디 직접 겪기 전에 가장 견고한 법이니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빈도수가 현저히 적어진다. 이번에 미니와 들이박아 보려 한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미니와 런을 하자.
첫 목적지는 1차 집결지인 행담도휴게소. 미니동호인들과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기로 한 자리였다. 성수동 집을 나서 고속도로에 오르며 받은 첫인상부터 옮기자면, 에이스맨은 생각보다 넉넉한 미니였다. 홍보팀원과 동승했는데, 건장한 사내 둘에 짐도 제법 실었음에도 공간엔 여유가 남았다. 승차감은 3도어 JCW보다 한결 보드랍게 다듬어졌으되, 미니 특유의 단단함과 JCW의 향취는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JCW 전용 모터는 최고출력 258마력에 최대토크 35.7kg·m를 자랑하는데, 내연기관처럼 회전수가 차오르길 기다릴 필요 없이 페달을 밟는 즉시 힘을 뿜어낸다. 스티어링 휠의 패들을 당겨 ‘부스트 모드’를 깨우면 10초간 27마력이 더해져 총합 285마력에 이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6.4초. 작고 가벼운 차체인지라 체감은 스펙 시트의 수치를 가뿐히 넘어선다.
수다를 떨면서 가다 보니 어느새 행담도휴게소였고,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운영진이 웰컴 키트를 건넨다. 브랜드의 공식 행사도 아닌데 선물이라니. 미니 로고를 새긴 의자와 간식, 마그넷으로 제작한 미니런 데칼까지 손에 쥐여준다. 차 도어에 붙이고 나서야 비로소 미니런의 일원이 된 듯한 실감이 차올랐다. 더욱이 ‘PRESS’와 내 이름을 함께 새긴 마그넷까지 따로 마련해 줬다. 손님 하나를 위해 이만한 정성을 들이는 곳. 여느 동호회가 아님을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쑥스럽게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다음 만남은 군산휴게소로 정해졌다. 오케이! 주행가능거리가 309km(54.2kWh 배터리)인 에이스맨은 충전 없이 다음 스팟까지 갈 수 있다. 거기에서 충전하면 된다.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 거침없이 페달을 밟았다. 어차피 채울 거라면 아껴 무엇 하랴. 그런데 묘하게도, 마음을 비우면 배터리는 좀처럼 빨리 줄지 않는다. 아끼려 애쓸 때 더 빨리 닳고, 내려놓으면 외려 넉넉해지는 것. 세상의 많은 일이 그러하듯이. 고속에서도 지치는 법을 모르는 에이스맨 덕에 군산까지는 눈 깜짝할 사이였다. 급속 충전 속도 역시 시원시원했다. 간식 하나 입에 물고 잠깐 다녀오는 사이, 2%까지 곤두박질쳤던 배터리는 어느새 80%를 훌쩍 넘겨 있었다. 그토록 미뤄온 전기차와의 첫 장거리는, 예상과 달리 마음에 큰 짐을 남기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전기차를 멀리해온 건 차의 문제가 아니라, 게으른 편견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나와 미니가 나란히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재촉하니, 머지않아 목포항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차를 배에 싣는 일은 난생처음이었다. 거대한 선체에 미니를 조심스레 몰아넣는데, 어쩐지 먼 이국으로 떠나는 듯한 설렘이 일렁였다. 에이스맨을 세워두고 예약해 둔 객실로 향한다. 기숙사처럼 2층 침대가 늘어선 방에서 5시간 남짓을 보내면 되었다. 좁아도 아늑하니 제법 정겹다. 배가 비행기보다 나은 점은 분명하다. 출발 전 자리에 매여 있을 필요도, 벨트를 맬 필요도 없으니까. 발밑으로 묵직하게 울리는 진동과 점점 멀어지는 항구의 불빛이, 비행기에는 없는 낭만을 건넨다. 동행들과 한강라면 한 그릇을 비우고 밀려드는 졸음에 몸을 맡기니, 눈을 떴을 땐 이미 제주였다. 미니를 몰고 배에서 내려서던 그 기분은 뭔가 거창하고 웅장했다. 제주도다! 배에서 내린 우리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어느 목장 카페였다.
참가자는 조별로 나뉘었고 조마다 동선이 조금씩 달랐는데, 나는 B조에 속했다. 귀여운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초원이 내다보이는 카페에 둘러앉아 본격적으로 서먹함을 녹였다. 그중 단연 눈길을 끈 이는 한 여성 오너였다. 빨간 JCW 컨버터블을 몰고 온 그녀에게는 미니가 한 대 더 있다고 했다. 클럽맨도, 컨트리맨도 아닌 JCW 3도어. 페라리로 치면 아말피와 아말피 스파이더를 나란히 거느린 셈이다. 신기해 굳이 닮은 두 대를 함께 두는 연유를 물으니, 두 차의 운전 감각이 사뭇 다르단다. 지붕을 열고 바람을 맞을 때와, 단단히 닫고 코너를 파고들 때의 맛이 전혀 다르다는 것. 미세한 결의 차이를 음미하는, 그야말로 ‘진짜’의 영역이었다.
또 다른 조원은 전문가용 대형 카메라를 품에 안고 있었다. 이번 행사의 사진을 맡았다고 하며 대가 없는 순전한 재능 기부란다. 같은 회비를 내고도 일은 일대로 하면서 정작 제 몫의 즐거움은 덜어내는 처지인데, 그는 그 과정마저 진심으로 누리고 있었다. 셔터를 누르는 옆얼굴엔 의무가 아니라 애정이 어려 있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를 보며 적잖이 부끄러웠다. 언제부턴가 나는 일을 그저 ‘치러내고’ 있는 듯하다. 서먹함이 어지간히 풀릴 즈음, 우리는 3박 4일을 머물 칼 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 어느 쪽으로 시선을 두어도 보이는 건 온통 미니, 또 미니였다. 도로를 가득 메운 작은 차들의 행렬은 마치 한 무리가 떼 지어 섬을 산책하는 듯, 비현실적이면서도 더없이 사랑스러운 풍경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동호회 회장 박재형 님의 진행으로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다. 연회장에 모여 일정을 안내받는 자리였는데, 정작 놀란 것은 발표 자료의 완성도였다. 어지간한 기업의 프로젝트 보고서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수준. 알고 보니 회원 가운데 현역 디자이너들이 거기에 손을 보탰단다. 일정 안내가 끝나자, 이번엔 회원들이 운영진에게 감사패를 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느 종교 단체의 의식인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것은 스무 해를 한결같이 이 모임을 지켜온 이들에게 건네는 마음의 헌사였다. 한 회원은 미니 엔진의 피스톤을 깎아 손수 만든 트로피를 회장에게 건넸다. 차의 심장이던 부품이 누군가의 헌신을 기리는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타인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 이 모임은 동호회라기보다 하나의 가족에 가까웠다. 가족 단위로 온 이들은 서로의 아이를 살뜰히 보살폈다. 물론 혼자서 혹은 둘이서 온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그 풍경이 어찌나 보기 좋던지. 이 모임엔 분명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들과 웃고 떠들며 흑돼지 오겹살로 첫날의 노곤함을 다독이고 나니, 길고 긴 하루가 비로소 저물었다. 이튿날, 비 예보가 무색하게 하늘은 다행히도 비를 머금기만 했다. 이날 일정은 오로지 도로 위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름이 ‘미니런’이라 해서 마냥 달리기만 하지는 않는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서귀포 안덕면의 포도뮤지엄을 찾았다. 차를 사랑하는 무리가 정작 차에서 내려 미술관 문턱을 넘는다는 게 처음엔 다소 의아했으나,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열리고 있던 기획전은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모나 하툼, 제니 홀저, 사라 제 같은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공존, 기억과 시간을 사색하게 하는 전시였다.
미니와 상관없는 공간에서 이들이 작품 앞에 가만히 멈춰 저마다의 감성에 젖은 모습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다. 미니라는 차가, 그리고 미니런이라는 여정이 한낱 달리는 쾌감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토록 교양 있는 경험으로까지 사람을 이끌고 있었다. 아름다운 길은 결국 근사한 목적지가 있어야 완성되는 법이니까. 미술관을 나선 뒤로도 일정은 알차게 이어졌다. 휴양림을 거닐며 숲의 축축한 공기를 몸 깊숙이 들이켰다. 일정은 40분쯤 도로를 달리고 카페에 머물렀다가 다시 50분을 달려 해변에 닿는 식이었다. 달리고, 멈추고, 누리고, 다시 달리는 리듬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느 한적한 해변 주차장에서다. 수십 대의 미니가 형형색색으로 늘어선 앞에서 다 함께 단체 사진을 찍던 때. 난 셔터 소리보다 사람들의 웃음이 먼저 들렸다. 며칠 전만 해도 이름조차 몰랐던 이들과 한 프레임 안에 담긴다는 게 신기하고도 고마웠다.
이 모든 즐거움이 누구의 손끝에서 빚어졌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직업상 브랜드가 주관하는 크고 작은 행사를 숱하게 겪었으나, 미니 코리아 동호회의 진행 솜씨는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다. 이동할 때마다 기착지에는 늘 운영진이 먼저 닿아 주차를 안내했다. 한여름 땡볕 아래 한 시간 넘게 서 있어야 하는 자리인데도, 그들의 입가에선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거듭 말하건대, 이들은 대가를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같은 회원을 위해 기꺼이 몸을 움직일 뿐이다. 그 마음이 가장 또렷하게 빛난 건 별을 보러 가던 밤이었다. 별을 보려면 가로등 하나 없는 언덕을 한참 걸어 올라야 했다. 그날따라 하늘은 잔뜩 흐려, 정상에 올라봤자 별 한 점 보지 못하리란 게 누가 봐도 분명했다.
이때 회장이 말한다. “이번엔 결과 말고, 과정을 즐겨봅시다.” 칠흑 같은 언덕길이 막막하게 다가올 무렵, 운영진과 몇몇 회원이 손전등을 들고 대열의 앞과 옆에 서기 시작했다. 정작 자신은 빛 한 줄기 없이 어둠을 디디면서도, 그 불빛만은 오롯이 다른 이들의 발밑을 향한다. 누가 청한 일도 아니었다. 가파른 오르막에 숨이 차고 다리가 뻐근했지만,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그 작은 빛들을 좇아 한 걸음씩 내딛는 동안 마음만은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그렇게 힘겹게 정상에 닿았을 때, 거짓말처럼 두껍던 구름이 슬며시 갈라졌다. 그 틈으로 별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탄성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르는 길도 내려오는 길도 분명 고됐으나, 머리 위로 펼쳐진 그 별빛과 마주한 찰나만큼은 모든 피로가 씻겨 내렸다.
그저, 행복했다. 비효율을 무릅쓰고 이 먼 길을 택한 이유를 나는 그 별 아래에서 비로소 온전히 헤아렸다. 그들에게 길은 목적지에 이르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누리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닿을 곳을 굳이 차를 배에 싣고 밤바다를 건너온 마음도, 일찍이 일본까지 원정을 떠난 마음도, 따지고 보면 모두 같은 결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사흘이 쏜살같이 흘러 다시 목포항에 내렸을 때, 헤어짐은 유독 시렸다. 사흘 동안 함께 지냈을 뿐인데, 이제는 창문 너머로 손 흔드는 뒷모습 하나하나가 눈에 밟혔다. 각자의 미니에 올라 저마다의 도시로 흩어지는 행렬을 바라보니 곧장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이 감정은 내 비루한 글 실력으로 옮길 수 없다. 결국, 직접 겪어봐야 안다. 이 경험만으로도 미니를 들이는 일이 아깝지 않다.
돌이켜보면, 미니런에 모인 이들 가운데 흔히 말하는 ‘차쟁이’는 드물었다. 아니, 행사 내내 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미니가 좋아서 모였다가 서로가 좋아서 남은 관계다. 미니라는 브랜드의 성격상 예산에 빠듯하게 맞춰 차를 사는 경우가 드문 까닭에, 마음에 여유를 품은 이가 대다수다. 나는 인정이 어느 정도는 경제적 여유와 비례한다 믿는 편인데, 이날의 풍경이 그 믿음을 한 번 더 다져주었다.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는 너그러움, 먼저 손해 보기를 마다치 않는 넉넉함이 모임 곳곳에 배어 있었다. 이들은 내년에 또 미니런을 기획하고 있다. 어디로 갈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또 함께하는 자체를 즐길 테니. 2026 미니런! 우리는 목적지보다 길 위에서 자주 웃었다. ■
글 안진욱 편집장 사진 미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