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형 차량처럼 생겼는데"... 페라리 루체 전기차, 디자인 혹평에도 중국서 500대 판매 목표 조기 달성
||2026.07.30
||2026.07.30
페라리가 올해 5월 처음 공개한 순수 전기차 '루체'가 공개 직후 소셜미디어에서 집중포화를 맞았다. 날렵한 곡선 대신 둥글고 단단한 차체를 택하면서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저가 양산형 차량과 비슷하다는 조롱까지 나왔다.
루카 디 몬테제몰로 전 페라리 회장이 직접 나서 "우리의 전설이 무너질 위험에 처해 있다"며 엠블럼 제거를 요구했을 정도다.
그런데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한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페라리가 올해 목표로 잡은 루체 판매량 500대가 이달 초 이미 채워졌다는 것이다. 공개 이후 불과 두 달 만의 성과이며, 특히 중국에서 수요가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디자인 논란과 판매 실적 사이의 이 같은 괴리는 우연이 아니다. 루체가 겨냥한 고객층과 중국 내 규제·세제 환경 변화를 함께 들여다보면 조기 완판의 배경이 드러난다.
페라리 최초 4도어 5인승, 기술적으로는 무엇이 다른가
루체는 페라리 116년 역사상 최초의 4도어 5인승 모델이다.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출신 조니 아이브와 마크 뉴슨이 이끄는 러브프롬(LoveFrom), 그리고 페라리 마라넬로 디자인 센터가 공동으로 디자인을 맡았다.
파워트레인의 핵심은 SK온과 공동 개발한 800볼트(V) 고전압 배터리팩이다. 니켈망간코발트(NMC) 파우치형 셀 210개를 직렬로 구성했으며 총용량은 122킬로와트시(kWh)다.
최대 350kW급 급속 충전을 지원해 20분 만에 70kWh를 충전할 수 있다. SK온은 2019년부터 페라리 하이브리드 모델 SF90에 배터리를 독점 공급해 온 파트너사로, 이번 프로젝트에는 60개 이상의 신규 특허가 걸려 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2.5초, 최고 속도는 시속 310km다. 주행 가능 거리는 530km를 넘는다. 재활용 알루미늄 합금으로 공차중량을 2260kg까지 낮추고 무게 중심도 낮춰 가벼운 핸들링을 구현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차이나 7 규제와 하이난 금지 조치가 만든 분위기
루체의 흥행을 이해하려면 중국의 자동차 규제 흐름을 먼저 봐야 한다. 중국은 2028년 시행 예정인 '차이나 7(China 7)' 배출가스 규제를 통해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에너지·배출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하이난성은 2030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확정한 상태다. 여기에 배기음과 굉음으로 대표되는 과시적 소비 문화 자체가 현지에서 위축되는 분위기다.
이런 환경에서 루체의 '자세히 봐야 페라리인 줄 아는' 절제된 외형은 오히려 부담을 덜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럭셔리카 애널리스트 스콧 셔우드는 경쟁사 대비 페라리의 마케팅과 고객 통찰력이 한 수 위라고 평가했다.
실제 판매 전략을 들여다보면 이례적인 지점이 하나 더 있다. 페라리는 딜러들에게 기존 내연기관 애호 고객에게 전기차 전환을 강요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루체를 중국과 미국 실리콘밸리 등 이미 전기차에 익숙한 신흥 부유층 전용 모델로 명확히 분리해 마케팅한 셈이다.
9억원대 차량엔 무의미한 취득세 혜택, 그런데도 팔리는 이유
중국은 신에너지차(NEV)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취득세 감면 제도를 운영해 왔다. 다만 2026년부터 2027년까지는 전액 면제가 아닌 50% 감면으로 축소되며, 공제 한도도 승용차 기준 1만5000위안(약 300만원) 수준으로 제한된다.
55만유로, 한화 9억2000만원짜리 루체 입장에서 이 정도 세제 혜택은 사실상 구매 결정에 영향을 주기 어려운 금액이다. 즉 중국 부유층 고객들이 루체를 산 이유는 세금 절감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은 따로 있다. 내연기관 규제가 조여드는 흐름 속에서 브랜드 가치는 유지하면서도 과시적이지 않은 전기차를 원하는 수요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결국 루체가 보여준 것은 초고가 전기차 시장에서 세제 혜택보다 규제 대응력과 브랜드 상징성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루체를 둘러싼 변수, 무엇을 더 지켜봐야 하나
디자인 혹평이 판매 목표 조기 달성으로 이어졌다고 해서 루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밀라노증시에 상장된 페라리 주가는 루체 공개 다음 거래일 8% 넘게 급락했고, 이 여파 속에 엔리코 갈리에라 최고마케팅책임자(CMO)가 물러나고 BMW 출신 인사로 교체됐다.
페라리 측은 인사 교체가 루체 출시 이전부터 예정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시장의 불안 심리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이르다.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30일 예정된 페라리의 2분기 실적 발표다. 루체를 둘러싼 이번 반전이 실제 매출과 이익률 지표에 어떻게 반영될지가 향후 전기차 확대 전략의 속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럭셔리 전기차를 사전 계약하거나 구매를 검토하는 소비자라면 디자인 논란 이면의 실적 흐름과 세제·규제 변수까지 함께 확인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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