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는 한때 통화와 문자 기능만 있으면 충분한 기기였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전화기는 손안의 PC로 진화했고, 애플리케이션과 초고속 통신망을 기반으로 생활 전반을 바꾸는 플랫폼이 됐다. 오늘날 스마트폰은 단순한 통신기기를 넘어 일과 소비, 금융, 콘텐츠를 아우르는 필수 디지털 기기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동수단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 초고속 통신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움직이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개념이 바뀌고 있다. 특히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이하 OTA)를 통해 새로운 기능과 서비스가 추가된다. 스마트폰이 정기적인 업데이트로 성능과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듯 자동차 역시 출고 이후에도 스스로 진화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선보인 차세대 SDV 플랫폼 ‘플레오스 커넥트’는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이다. 자동차를 하드웨어 중심 제품이 아닌 소프트웨어 서비스 플랫폼으로 전환해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차량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21일 경기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 플레오스 개발 철학과 방향성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 세미나가 열렸다.
김재형 현대자동차 국내커뮤니케이션팀장은 “플레오스를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기능만으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플레오스는 하나의 완성된 기능이 아니라 OTA를 통해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SDV 생태계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자동차 소프트웨어는 엔진 제어나 안전장치, 기본 인포테인먼트를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차량이 출고되는 순간 기능이 사실상 완성됐고, 이후 소프트웨어 개선은 서비스센터 방문 없이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SDV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차량을 출고 시점에 완성되는 제품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플랫폼으로 바라보는 것이 SDV의 핵심이다. 오늘 구매한 자동차가 1년 뒤 더 좋아질 수 있는 시대를 만드는 게 현대자동차그룹 플레오스 연구진들의 목표다.
플레오스 커넥트 중심에는 OTA가 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하듯 자동차 역시 무선으로 새로운 기능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추가할 수 있다. 새로운 서비스와 사용자 경험까지 차량에 계속 제공하는 구조다. 현대차는 이를 통해 차량 판매 이후에도 고객과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은 플레오스 커넥트를 차량·클라우드·사용자·서비스를 하나로 연결하는 디지털 플랫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차량은 실시간 데이터를 생성하는 디지털 노드가 되고, 클라우드는 OTA와 AI 서비스를 운영한다. 여기에 사용자의 스마트폰과 차량, 음성 인터페이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다양한 서비스가 작동하는 구조다.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자동차를 스마트폰처럼 개방형 생태계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플레오스 커넥트에는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운영체제(AAOS) 기반 앱 마켓이 적용된다. 음악과 영상은 물론 예약, 커머스, 콘텐츠 등 다양한 서드파티 앱이 차량 안에서 실행된다. 다만 스마트폰 앱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운전 중 안전성을 고려해 차량 환경에 최적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플레오스 연구진은 “완성차 회사가 모든 서비스를 직접 만드는 시대는 끝났다”며 “외부 생태계와 함께 성장하는 개방형 플랫폼이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플레오스 커넥트 인터페이스는 포디투닷 작품인 생성형 AI 기반 음성 비서 글레오 AI다. 기존 음성인식이 정해진 명령어를 수행하는 수준이었다면 글레오 AI는 운전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AI 에이전트 역할을 수행한다.
“에어컨 켜줘”는 물론, “오늘 너무 덥네”, ”좀 시원하게 해줘”처럼 자연스럽게 말해도 차량이 의도를 파악한다. 운전자의 위치와 목적지, 배터리 잔량, 이동 경로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해 “충전기가 있는 카페를 추천해줘” 같은 요청에도 상황에 맞는 답을 제공한다. 향후에는 예약과 결제, 내비게이션 연동까지 하나의 대화 안에서 이뤄지는 서비스도 구현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AI 경쟁력이 단순히 자연어 처리 능력이 아니라 차량이 가진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SDV 기술의 대중화를 강조한다. 플래그십 모델이 아닌 ‘디 올 뉴 아반떼’부터 플레오스 커넥트를 기본 적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용진 인포테인먼트플랫폼개발팀 책임은 “기술은 더 많은 고객이 사용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며 “SDV 경험이 특정 고급차 고객만의 것이 아니라 현대차를 선택하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 경험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대차가 제시한 미래는 현재진행형이다. 글레오 AI의 자연스러운 대화 기능은 구현됐지만, 사용자 상황을 판단해 예약이나 커머스, 콘텐츠까지 자동으로 연결하는 기능은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이다.
앱 마켓 역시 음악과 콘텐츠 중심의 초기 단계다. 생활 서비스와 커머스, 차량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는 앞으로 외부 파트너 확대와 함께 순차적으로 추가될 예정이다.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