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GV80 블랙 에디션. 김수지 기자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일대 도로는 좀처럼 조용할 틈이 없다. 곳곳이 거칠게 이어진 노면 위로 타이어 소음과 경적, 진동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도로에서 바깥의 소음을 잠시 잊게 해주는 차는 과연 몇이나 될까. 제네시스 GV80은 그 질문에 꽤 분명한 답을 내놨다. 문을 닫는 순간 외부 소음은 한층 멀어졌고, 실내에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다운 묵직한 안락함이 자리했다.
지난달 17일부터 18일까지 서울 금천구와 강북구, 경기 용인시 기흥구 일대를 약 400㎞ 주행하며 GV80의 주행 성능을 살펴봤다. 혼잡한 도심과 좁은 골목, 정체가 잦은 간선도로부터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고속화도로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차량의 완성도를 점검했다.
GV70 블랙 에디션에 들어간 제네시스 로고. 김수지 기자
소란스러운 도심을 조용하게…묵직한 승차감
첫인상은 예상대로 묵직했다. 차체 전면을 가득 채운 크레스트 그릴과 양옆으로 길게 뻗은 두 줄 램프는 멀리서도 제네시스라는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차체 크기 자체가 주는 위압감은 상당했지만, 과도한 장식 대신 절제된 디자인으로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화려하게 시선을 끄는 스타일이라기보다 가까이에서 볼수록 품격이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
운전석에 앉으면 외관에서 느꼈던 위압감은 다소 누그러진다. 넓게 펼쳐진 화면과 수평형 대시보드는 큰 차의 실내를 한층 더 넓어 보이게 했다. 각종 조작부도 비교적 직관적으로 배치돼 처음 차를 몰 때부터 크게 헤맬 부분은 없었다. 손이 자주 닿는 부분의 소재와 버튼을 누르거나 돌릴 때의 감각에서도 고급차다운 공을 들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산디지털단지를 빠져나오는 동안 가장 먼저 체감된 것은 정숙성이었다. 창문을 닫고 음악을 틀면 외부의 소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거친 노면을 지날 때도 차분한 성격이 이어졌다. 도로 이음매나 작은 요철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한 차례 부드럽게 걸러냈다. 큰 차체가 위아래로 출렁이는 느낌도 과하지 않았다.
시승 차량에는 선택 사양인 ‘후석 스마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적용돼 2열 좌우에 각각 14.6인치 디스플레이가 탑재됐다. 김수지 기자
다만 도심에서는 큰 차체가 장점과 부담을 동시에 안겨줬다. 높은 시야 덕분에 전방 교통 흐름을 파악하기는 쉬웠지만, 좁은 골목이나 양쪽에 차량이 주차된 도로에서는 차폭을 계속 의식해야 했다. 차선 폭이 좁은 구간에서 버스나 대형 차량과 나란히 달릴 때는 자연스럽게 운전대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실제 운전석에서는 외관만큼 거대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정 시간 주행한 뒤에는 차체의 앞뒤와 좌우 끝을 가늠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주변을 살펴볼 수 있도록 돕는 각종 주행·주차 보조 기능도 큰 차를 모는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GV80 블랙 에디션 후면. 김수지 기자
도심에선 큰 덩치, 속도 높이자 드러난 안정감
GV80의 진가는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도로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강북구에서 용인시 기흥구로 이동하는 구간에서는 저속보다 고속 영역에서 차체의 안정감이 더욱 돋보였다. 속도가 올라가도 차체가 가볍게 뜨거나 흔들리는 느낌이 적었고, 차선을 따라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인상이 강했다.
장거리에서 피로를 줄이는 데에는 시트의 역할도 컸다. 운전석은 몸을 강하게 조이기보다 넓게 감싸주는 형태로, 엉덩이와 허리, 허벅지를 고르게 지지해 특정 부위에 피로가 집중되지 않았다. 한 시간 이상 주행하자 ‘허리디스크 보호 기능’이 작동해 자세를 자연스럽게 바꿔주며 피로를 덜어줬다. 약 400㎞를 달린 뒤에도 허리나 어깨가 크게 뻐근하다는 느낌은 적었다.
운전석에서 바라본 2~3열의 모습. 김수지 기자
2열과 3열 공간 역시 대형 SUV에 기대하는 수준의 여유를 갖췄다. 성인이 탑승해도 무릎과 머리 공간이 넉넉했고, 차체가 높아 승하차도 비교적 편했다. 넓은 좌석과 조용한 실내, 부드러운 승차감이 어우러지면서 오히려 운전자보다 뒷좌석 승객이 이 차의 장점을 더 크게 체감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GV80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앞세우기보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로 위에서도 탑승자에게 조용하고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 SUV였다. 대형 SUV 특유의 안정감과 높은 정숙성, 편안한 승차감을 고루 갖춘 럭셔리 SUV라는 인상이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