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차 만들기 전 가상 검증… 현대차·기아 개발 방식 바뀐다

IT조선|허인학 기자|2026.07.02

현대자동차·기아가 남양기술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개발(R&D) 방식의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행 성능 개발부터 품질 검증, 부품 제작, 전장 시스템 검증까지 차량 개발 전 과정을 하나의 디지털 체계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개발 기간은 줄이고 품질은 높여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시대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외관. / 현대자동차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외관. / 현대자동차 

현대차·기아는 1일 경기 화성 남양기술연구소에서 ‘랩 투어(Lab Tour)’를 열고 디지털 R&D 혁신 현장을 공개했다. 연구소에서는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와 디지털 측정센터(DMC), 적층제조솔루션센터(AMSC), 노바랩(NOVA Lab) 등 차량 개발 전 과정에 적용되는 디지털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 시설은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개발 기간 단축과 품질 향상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운영되고 있었다.

전동화와 자율주행, SDV 확산으로 차량 개발 과정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차량에 탑재되는 기능이 늘어나면서 검증해야 할 항목도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차량을 개발할 때마다 수많은 시작차(試作車·프로토타입)를 제작해 시험하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개발 기간과 비용 부담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현대차·기아가 연구개발 전 과정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차량 개발 방식을 바꾸는 배경이다.

내부에서 바라본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모습. / 현대자동차 
내부에서 바라본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모습. / 현대자동차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드라이빙 시뮬레이터가 있다. 현대차·기아는 실제 차량을 제작하기 전 가상환경에서 주행 성능과 승차감을 동시에 검증하고 있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남양기술연구소 시험로를 1밀리미터(㎜) 단위로 스캔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제 도로와 유사한 환경을 구현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지형 서버(Terrain Server)’ 방식도 적용했다. 차량 주변의 도로 데이터만 실시간으로 불러오는 방식으로, 초고용량 데이터를 활용하면서도 지연 없는 주행 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여기에 6자유도(6DOF) 모션 시스템과 270도 곡면 스크린, 최대 40㎐의 노면 진동 재현 기술을 적용해 실제 차량과 유사한 주행 감각을 구현했다.

정필영 주행성능컨셉개발팀 책임연구원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성능을 평가하는 장비를 넘어 차량 성능을 개발하는 플랫폼”이라며 “실차 평가와 병행해 반복 검증하면서 차량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 효율도 높아졌다. 정 책임연구원은 “기존에는 한두 달이 걸리던 프로젝트도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활용하면 3일 정도면 검증이 가능하다”며 “개발 초기부터 다양한 조건을 빠르게 비교·평가할 수 있어 의사결정 속도도 크게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0년 이후 출시된 차량은 모두 한 번 이상 해당 시스템으로 검증을 거쳤다”며 “전 차종은 물론 실제 서킷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고성능 모델인 현대차 N과 제네시스 마그마 개발에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접촉식 측정 장비로 수치 측정을 하는 모습. / 현대자동차 
접촉식 측정 장비로 수치 측정을 하는 모습. / 현대자동차 

품질 검증은 디지털 측정센터가 맡는다. 이곳에서는 차체와 도어 등 주요 부품을 3차원 측정 장비와 광학식 3D 스캐너로 분석해 차량 한 대당 약 1000개의 측정 포인트를 확보한다. 이를 바탕으로 약 600개 평가 항목을 관리하며 조립 전후 품질을 검증한다. 완성차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어느 공정에서 오차가 발생했는지 추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진수 파이롯트품질검증팀장은 “측정 체계는 양산 공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차량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데이터로 관리하는 것이 DMC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산 전 품질을 높이는 과정”이라며 “단차로 인한 외관 품질 저하는 물론 소음과 누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완성차 복합 측정실에서는 이러한 검증 과정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었다. 의장 부품과 완성차를 함께 측정해 조립 상태를 확인하고, 포인트별 데이터를 분석해 문제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찾아내는 방식이다. 연구원들은 차종별로 많게는 70여 개 부품을 종합적으로 검증한다고 설명했다.

WAAM 장비가 금속을 적층하는 모습. / 현대자동차 
WAAM 장비가 금속을 적층하는 모습. / 현대자동차 

금형 없이 설계 데이터만으로 부품을 제작하는 적층제조솔루션센터도 운영되고 있다.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시제품은 물론 단종 차량 부품과 모터스포츠용 경량 부품까지 제작한다. 제작 이후에는 강도와 내구성 등을 자체적으로 검증해 실제 적용 가능 여부도 확인한다. 개발 과정에서 시제품 제작 기간을 줄이고 다양한 설계를 빠르게 검증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출력 공정도 실시간으로 관리된다. 적층제조솔루션센터에서 운영 중인 설비들은 관제실에서 작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제작에 필요한 원자재 수량을 파악해 보충하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와이어카를 활용해 차량 기능과 제어기 검증을 하는 연구원의 모습. / 현대자동차 
와이어카를 활용해 차량 기능과 제어기 검증을 하는 연구원의 모습. / 현대자동차 

노바랩에서는 SDV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전장 시스템 검증이 이뤄진다. 최근 차량에는 수백 개의 제어기와 배선이 적용된다. 실제 차량에 이를 모두 탑재한 뒤 검증을 진행하면 문제 발생 시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현대차·기아는 이를 줄이기 위해 제어기와 배선을 연결한 자동차 형태의 ‘와이어 카(Wire Car)’에서 기능과 통신, 진단을 자동으로 검증한다. 특히 자체 개발한 차량 구동부하장치와 소형 다이나모미터를 결합한 이동식 장비인 ‘토크 휠 다이나모미터(Torque Wheel Dynamometer)’를 활용해 실제 도로를 주행하는 것과 같은 부하를 구현한다. 이를 통해 정차와 주행 상태는 물론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작동 환경까지 재현하며 실차 제작 이전 단계에서 기능과 통신 이상 여부를 검증한다.

김상연 파이롯트전장제어개발팀 파트장은 “실차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제어기 간 통신이나 기능 오류를 미리 검증할 수 있다”며 “신차 개발 과정에서 와이어 카 단계에서만 평균 150~200건의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한다”고 말했다.

남양기술연구소에서 확인한 디지털 R&D 혁신의 핵심은 단순히 새로운 설비를 도입한 데 있지 않았다. 실차를 만든 뒤 검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가상환경과 데이터 기반으로 개발 초기부터 성능과 품질을 검증하는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었다. 미래차 경쟁력이 차량 자체의 완성도뿐 아니라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게 개발하느냐로 확대되는 가운데 현대차·기아도 연구개발 방식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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