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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은 오래 끓어야 표면을 뚫고 분출한다." 제네시스 마그마, 세계 최고 무대에서 가능성을 증명하다 [원선웅의 인사이트]

글로벌오토뉴스|global_auto_news|2026.06.15

내구레이스의 정점이라 불리는 르망 24시에서 '첫 출전 완주'라는 타이틀의 의미는 남다르다. 레이싱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조차 르망의 첫 벽을 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기 일쑤였다. 실제로 토요타는 1985년 첫 도전 당시 가혹한 서킷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리타이어의 쓴잔을 마셨으며, 아우디 역시 1999년 첫 출전에서 머신 트러블을 겪으며 완주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최근 하이퍼카 클래스에 화려하게 복귀한 푸조 역시 복귀 첫해 부품 신뢰성 문제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처럼 내노라하는 베테랑 완성차 제조사들에게도 첫 경기 완주는 꿈의 영역에 가깝다.

그러나 2026년 6월 14일 오후, 프랑스 르망 서킷 드 라 사르트(Circuit de la Sarthe)에서 마침내 체커기가 내려졌을 때,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 팀의 GMR-001 하이퍼카 19번 차량은 당당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국 자동차 브랜드가 세계 최고 권위의 르망 24시 하이퍼카 클래스에서 '첫 도전 만에 완주'를 이루어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종합 13위라는 숫자는 첫 출전임을 감안하면 결코 초라하지 않다. 팀 창단 발표로부터 500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일궈낸 이 값진 완주는, 수십 년의 역사를 품은 베테랑 팀들 사이에서 신생팀 제네시스가 거둔 성과이기에 모터스포츠 무대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출전까지 500일, 그리고 레이스 현장에서 다진 기초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의 여정은 짧지만 밀도가 높았다. 2024년 12월 팀 창단 발표 이후, 2025년 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현대모터스포트 본부에서 G8MR 엔진의 첫 점화가 이뤄졌다. 같은 해 8월 섀시와 파워트레인을 결합해 첫 트랙 테스트를 시작한 이래, 르망 출전 전까지 누적 테스트 거리만 25,000km를 넘겼다.

제네시스는 본 무대에 서기 전 실전 감각을 조율하는 영리함도 보였다. 2025년 유럽 르망 시리즈(ELMS) LMP2 클래스에 참가해 통산 3승을 거두었고, 베테랑 앙드레 로터러를 영입해 경험을 축적했다. 이어진 2026시즌 FIA 세계내구선수권(WEC) 개막전 이몰라에서 두 대 모두 완주 시킨 데 이어, 2라운드 스파-프랑코샹에서는 8위로 첫 포인트까지 따냈다. 신생팀으로서는 이례적인 신뢰성과 속도였다. 팀 수석 엔지니어 저스틴 테일러는 "첫 르망 24시에서 거둔 첫 완주는 제네시스와 한국 모터스포츠 역사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첫 번째 기록"이라며 감격을 전했다.

랠리의 혈통과 하이퍼카의 기술적 신뢰성

GMR-001 하이퍼카는 프랑스 섀시 전문업체 ORECA와 공동 개발한 LMDh 규정의 레이스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파워트레인의 내력이다. 심장인 '제네시스 G8MR' 3.2L 트윈터보 V8 엔진은 현대모터스포트가 WRC(세계랠리선수권)에서 사용하는 i20 N Rally1의 1.6L 직렬 4기통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 배기량과 실린더를 확장해 V8으로 재설계했으며, 부품 공유율이 60%에 달한다. 험난한 랠리 무대에서 검증된 혈통을 내구레이스로 이식한 것이다. 여기에 보쉬의 MGU, 윌리암스의 배터리 팩, Xtrac 7단 시퀀셜 변속기가 결합되어 최고출력 680마력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제네시스는 내구레이스의 본질이 '속도'보다 '신뢰성'에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시즌 개막 전 이미 단일 엔진 유닛으로 9,000km의 혹독한 테스트를 마쳤고, Dynisma의 최첨단 시뮬레이터를 통해 가상 데이터를 쌓았다. 디자인 역시 정체성을 놓치지 않았다. 전면에 새겨진 'Designed by Genesis' 문구와 브랜드 고유의 '두 줄(Two-Line)' 헤드램프는 서킷 위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한반도의 화산 기원과 에너지를 상징하는 '마그마' 오렌지 리버리를 바탕으로, 17번 차량은 '리퀴드 메탈' 실버, 19번 차량은 '스텔스 블랙' 베이스로 꾸며져 시각적 깊이를 더했다.

[GMR-001 하이퍼카 제원]

• 규정/섀시: LMDh 규정 / ORECA 공동 개발 카본 모노코크

• 파워트레인: 제네시스 G8MR 3.2L 트윈터보 V8 + Bosch 50kW MGU 하이브리드

• 성능/중량: 최고출력 680hp, 최대토크 637N·m / 차량 중량 1,030kg

자정을 넘긴 드라마, 그리고 새벽 4시의 시련

팀 프린시플 시릴 아비테불과 스포팅 디렉터 가브리엘레 타르퀴니가 이끄는 드라이버 라인업은 베테랑과 신예의 조화였다. 르망 3회 우승자 앙드레 로터러, IMSA GTP 챔피언 피포 데라니와 마티외 자미네 등이 포진했다. 이들의 시너지는 예선부터 빛났다. 탑10 예선인 하이폴(Hyperpole) 세션에서 19번 차량이 6위, 17번 차량이 9위를 기록하며 패독을 깜짝 놀라게 했다.

6월 13일 오후 4시(현지시간), 본 경기의 막이 올랐다. 제네시스 팀은 철저히 전략적 페이스를 유지했다. 첫 세이프티카 상황에서 피트스톱을 건너뛰며 리드랩 복귀에 성공했고, 자정을 넘긴 야간 구간에서는 19번의 자미네가 뛰어난 질주를 선보이며 한때 종합 4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러나 르망의 새벽은 가혹했다. 새벽 4시경, 19번 차량이 전기계통 문제로 트랙 위에 멈춰 섰다. 재가동에는 성공했으나 포인트권에서 멀어졌다. 더 큰 아쉬움은 17번 차량에 닥쳤다. 포인트 다툼을 벌이던 마티 조베르가 커브 진입 중 서스펜션 파손으로 경기를 중단해야 했다. 레이스 시작 16시간 만의 일이었다. 17번의 이탈 이후 팀의 목표는 오직 '19번의 완주'로 모였다. 추가 피트스톱으로 4랩을 잃었지만, 기계적 결함을 끝내 극복해내며 최종 372랩을 완주, 종합 13위로 체커기를 받았다. 팀 매니저 아눅 아바디는 "피트스톱 실수가 전혀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팀 전체가 자랑스럽다"며 소회를 전했다.

레이싱을 통해 습득한 기술,양산모델까지 확장된다

"마그마 GT 콘셉트는 도로 위의 럭셔리와 운동성을 담고, 마그마 GT3 콘셉트는 그 철학을 레이스 환경으로 이전합니다. 두 차는 제네시스가 고성능의 전 스펙트럼을 어떻게 탐구하는지 보여줍니다."

— 루크 동커볼케 (제네시스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제네시스는 서킷 밖에서도 미래를 제시했다. 경기 전날 공개된 '마그마 GT 콘셉트'는 모터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은 정밀한 아날로그 인테리어를 선보였고, '마그마 GT3 콘셉트'는 GT3 기술 규정에서 출발해 공력과 냉각 효율을 극대화한 독립 레이스 스터디 모델로 주목받았다. 하이퍼카 레이스를 치르는 와중에도 고객 레이싱 프로그램과 로드카로의 기술 이전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또한 드라이버 퍼레이드에는 레이싱 앰버서더 자키 익스와 제이미 채드윅이 'X 그란 컨버터블 콘셉트'를 타고 등장해 서킷 안팎의 디자인 언어를 하나로 연결했다.

완주, 그 이후의 364일

이번 르망 완주는 끝이 아닌 거대한 서사의 시작이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7월 브라질 인테를라고스를 시작으로 미국 COTA, 일본 후지, 카타르, 바레인으로 이어지는 WEC 잔여 5개 라운드를 소화해야 한다. 나아가 2027년에는 GMR-001을 미국 IMSA 스포츠카 챔피언십 GTP 클래스에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대자동차 사장 호세 무뇨스는 "트랙에서 배운 것은 마그마 퍼포먼스 차량과 경영 방식 모두에 적용된다"며 모터스포츠가 갖는 의미를 짚었다. 용암은 오랜 시간 지하에서 끓어올라야 비로소 단단한 지표면을 뚫고 분출한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지난 500일 동안 묵묵히 열기를 쌓았고, 마침내 르망의 대지 위에 그 뜨거운 에너지를 뿜어냈다. 첫 완주의 감동을 뒤로한 채, 2027년의 우승 경쟁을 향한 제네시스의 새로운 364일은 이미 뜨겁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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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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