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역사 지우기 안 된다”… 美서 철거 동상들이 돌아오는 이유
||2026.06.05
||2026.06.05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 속 사라졌던 동상들이 미국 곳곳에서 다시 세워지고 있다. 한때 인종차별과 식민주의의 상징으로 낙인찍혔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남군 장군 로버트 E. 리의 동상까지 복귀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 독립 250주년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까지 가세하면서 역사와 정체성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문화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전통주의 단체와 보수 성향 시민들은 지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정치권을 압박하며 철거된 기념물 복원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과거를 지운다고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하이오주 주도 콜럼버스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도시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확산하자 시청 앞에 있던 높이 6.7m짜리 콜럼버스 동상을 철거했다. 당시 시 당국은 “동상이 가부장제와 억압, 분열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동상은 보관시설에 보관된 상태다. 그러나 지난 4월 이탈리아계 미국인 단체들은 “동상 철거는 위법했다”며 연방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주도한 잭 콘테는 WSJ에 “침묵하던 다수가 이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며 “사람들에게 특정 역사관을 강요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남부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남부 연합의 영웅이자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지목돼 곳곳에서 철거됐던 로버트 E. 리 장군의 기념비는 최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중심지인 마리온 광장에 다시 등장했다. 시 당국을 상대로 법정 공방을 벌이던 ‘남부 연합의 딸들’이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기념비를 돌려받아 재설치한 것이다.
텍사스주에서는 프로야구단 텍사스 레인저스가 과거 공항에서 철거됐던 ‘원 라이엇, 원 레인저(One Riot, One Ranger)’ 청동상을 구장 광장에 다시 세웠다. 2020년 철거 당시에는 동상의 모델이 된 텍사스 레인저 경관이 1950년대 공립학교 흑백 학생 통합에 반대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구단 측은 “200년 넘는 레인저스의 유산은 텍사스 역사 그 자체”라며 복원을 강행했다.
루이지애나주 의회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지방정부가 철거한 동상을 주 정부가 인수해 주립공원 등에 이전·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뉴올리언스 등 진보 성향 도시들은 “지방자치단체 재산을 사실상 강탈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보수 진영이 장악한 주 의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동상 부활 프로젝트’의 정점에는 백악관이 있다고 WSJ은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동상 복원 논의는 지방 차원을 넘어 국가적 의제로 떠올랐다. 내달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는 역사 복원 조치를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백악관 인근 아이젠하워 행정청사 앞에 새로운 콜럼버스 동상이 들어섰다. 2020년 시위대가 밧줄로 묶어 볼티모어 항구에 던져버린 동상을 본떠 제작한 복제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증 단체에 보낸 감사 서한에서 콜럼버스를 “미국 최초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최근에는 노예를 소유했던 독립선언서 서명자 시저 로드니의 동상도 워싱턴 D.C.에 재설치됐다.
백악관은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건국 세대의 업적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빈스 헤일리 백악관 고문은 “미국 혁명 세대가 내린 역사적 선택과 인물을 기릴 것인지, 아니면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에게 맡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반발도 만만치 않다. 사학계와 진보 진영은 시대착오적인 역사 퇴행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국 공공역사협회 회장 니콜 무어는 “인간은 복잡한 존재일 수 있지만 인종차별과 집단학살은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역사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면 우리가 과연 공공의 공간에서 이들을 기려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상 복원을 반대하는 이들은 “역사 보존이라는 명분 아래 인종차별과 식민주의를 미화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한다. 반면 찬성 측은 과거 인물의 공과를 함께 평가해야지 현재의 가치관으로 역사를 재단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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