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간택’ 벗어나 ‘수퍼 을’ 실익 챙겨야 [줌인IT]
||2026.06.05
||2026.06.05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소식에 우리나라 산업계가 또다시 들썩인다. 총수들과 만남 예정이라는 소식만으로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하는 현상이 재연되고 있다.
다만 IT 업계에서는 이번 방한이 과거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망을 쥐고 흔들던 ‘수퍼 갑’ 젠슨 황의 행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엔비디아는 피지컬 AI 분야에서 중국의 거센 추격에 직면해 있다. 제조업 기반이 약한 미국이 엔비디아를 등에 업고 중국과 경쟁에서 최종 승리하려면 실제 제조 현장에서 축적된 현실 세계 데이터가 필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인프라를 갖춘 한국 기업의 제조 현장 데이터야말로 엔비디아가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가장 목말라하는 핵심 자산인 셈이다.
여기에 AI 인프라의 핵심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 역시 이미 철저한 공급자 우위 구조로 재편됐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의 만성적인 공급 부족 속에서 엔비디아 역시 한국 메모리 동맹의 처우와 공급량 확대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불과 2025년 10월 방한 당시의 풍경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는 서울 강남의 한 치킨집에서 황 CEO와 이른바 ‘깐부 회동’을 연출했다.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최신 GPU 한 장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눈치를 보며 설설 기던 때와는 우리 기업의 위상이 180도 달라졌다.
이제 한국 기업은 단순한 하청 기지나 ‘간택’을 기다리는 약자가 아니다. 시장 판도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강력한 ‘수퍼 을’의 위치에 섰다. 우리가 가진 제조 데이터와 독점적인 공급망 권력은 엔비디아가 세계 AI 플랫폼 표준을 장악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 절대적 무기다.
따라서 이번 황 CEO의 방한이 단기 주가 부양용 이벤트나 일회성 홍보의 장으로 소모돼서는 안 된다. 거인의 덩치에 압도당해 저자세로 일관한다면, 우리 기업의 데이터와 기술은 엔비디아 생태계를 공고히 해주는 소모품으로 전락할 뿐이다. 철저히 계산된 경영적 판단과 정교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당당하게 얻어낼 건 얻어내는 냉철한 비즈니스 감각이 필요하다.
이 같은 전략적 접근은 단순히 엔비디아에 메모리 공급을 노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만 국한된 과제가 아니다. 휴머노이드와 로봇 등 피지컬 AI 플랫폼 협업을 타진 중인 LG, 두산, 네이버 등 제조 노하우와 인프라 데이터를 쥔 국내 모든 기업이 마주한 핵심 과제다.
일방적인 종속이 아닌 대등한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우리 손에 쥐어졌다. 수퍼 을의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해 장기적인 투자 확약이나 안정적인 칩 배정, 대등한 기술 공유 등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이익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할 시점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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