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엔 PBV, 유럽엔 소형 전기차"… 기아, 시장 맞춤형 전략 속도

IT조선|허인학 기자|2026.06.02

기아가 시장 맞춤형 글로벌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일본에서는 목적기반차(PBV)를, 유럽에서는 소형 전기차를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일본에서는 전동화 상용차 시장을, 유럽에서는 중국산 전기차 공세가 거센 보급형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전략이다. 기아가 단순한 판매 확대를 넘어 시장별 수요와 규제 환경에 맞춘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업계 소식을 종합하면 글로벌 완성차 시장은 전기차 성장세 둔화와 중국 업체들의 급부상,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등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에 완성차 업체들은 지역별 수요와 규제 환경에 맞춘 전략을 강화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기아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시장별 특성을 반영한 차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일본에서는 PBV를 통해 새로운 상용차 수요를 발굴하고, 유럽에서는 소형 전기차를 앞세워 중국산 전기차 공세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기아가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서는 것은 2013년 사업 철수 이후 12년 만이다. 기아는 지난 5월 13일 일본에서 PBV ‘PV5’ 출시 행사를 열고 현지 계약에 돌입했다. 기아가 일본 시장 공략 카드로 PBV를 선택한 배경에는 일본 정부의 전동화 정책과 상용 전기차 수요 확대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 비중을 30% 수준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 정책과 물류·배송 시장의 전동화 흐름이 맞물리면서 중소형 전기 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아가 승용 전기차가 아닌 PBV를 앞세운 것도 이러한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기아는 일본 현지 특성에 맞춰 PV5를 구성했다. PV5는 일본의 좁은 도로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회전반경을 줄였고, 현지 충전 인프라에 맞춰 차데모(CHAdeMO) 충전 방식을 적용했다. 전력 공급 기능인 V2L과 V2H 기능도 지원해 지진 등 재난 상황에서 비상 전력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아는 우선 PV5 패신저와 카고 모델을 선보이고, 향후 휠체어 접근성을 강화한 PV5 WAV로 라인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2028년에는 중형 PBV인 PV7도 투입할 예정이다.

시장 공략을 위한 기반도 마련했다. 기아는 2025년 일본 종합상사 소지츠와 협력해 기아 PBV 재팬을 설립했다. 최근에는 도쿄 니시도쿄시에 서비스센터를 포함한 대형 전시장을 구축했다.

기아는 이러한 전략을 기반으로 일본 시장에서 연간 1000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수입차 판매 비중이 낮은 일본 시장 특성을 고려하면 공격적인 수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현대자동차는 지난 2022년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를 앞세워 일본 시장에 재진출했지만 2025년 판매량은 1169대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수입차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이지만 전동화 상용차 부문은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며 “기아가 일반 승용차 대신 PBV를 앞세운 것도 향후 수요 확대 가능성을 고려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대 기아 PBV비즈니스사업부장 부사장(왼쪽), 타지마 야스나리 기아 PBV 재팬 대표이사. / 기아 
김상대 기아 PBV비즈니스사업부장 부사장(왼쪽), 타지마 야스나리 기아 PBV 재팬 대표이사. / 기아 

유럽 전기차 시장은 중국 업체들의 공세와 EU의 보호무역 강화가 맞물리며 경쟁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내수 시장 포화로 유럽 진출을 확대하며 보급형 전기차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EU 역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강화하며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서고 있다.

기아는 현지 생산 체제를 통해 이러한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소형 전기차 EV2를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생산하며 가격 경쟁력 확보에 나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유럽 주요국의 전기차 구매 지원 정책과도 맞물리고 있다. 독일이 2년 만에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재도입하면서 EV2는 지원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차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정부 기준을 충족해 보조금 대상에 선정됐다. 현지 생산에 따른 혜택을 바탕으로 중국산 전기차 대비 실질적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의 집계 자료 등을 살펴보면 EV2는 올해 1~4월 유럽 시장에서 총 9916대가 판매되며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하나의 글로벌 전략 차종을 여러 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국가별 규제와 수요 구조가 크게 달라지면서 시장 맞춤형 전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기아의 일본 PBV 전략과 유럽 EV2 전략은 각 시장의 특성에 맞춰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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