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인류의 구원자’에서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빌 게이츠 명성은 왜 무너졌나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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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매년 5월 미국 워싱턴주 자택에서 열던 마이크로소프트 CEO 서밋 연계 만찬을 취소했다. 같은 달 매년 참가했던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 게이츠 측근들을 인용해 “게이츠가 올해는 만찬을 열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통보를 5월 행사 몇 주 전에 했다”고 전했다.
게이츠가 빠진 자리는 만찬과 주총만이 아니다. 인도 AI 정상회의 기조연설, 게이츠 재단 남아공 단체 방문, 에너지 업계 최대 행사 세라위크(CERAWeek)까지 올해 2월 이후 그가 오르기로 했던 주요 무대들에서 잇따라 게이츠 이름이 사라지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YouGov)는 미국 내 게이츠 비호감도가 40%에 달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57%, 일론 머스크 52%보다는 비호감도가 덜 하지만, 게이츠가 오랫동안 백신·빈곤 퇴치·글로벌 보건을 상징하는 초당파적 자선가 이미지로 소비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결과다.
게이츠는 올해 2월 중순 인도 뉴델리에서 각국 정상과 기술계 인사가 참석하는 정상회의 ‘AI 임팩트 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었다. 인도 핵심 경제 중심지 뭄바이를 거쳐 수도 뉴델리에 도착하기까지 일정을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기조연설 며칠 전부터 회의 웹사이트 ‘주요 참석자’ 명단에서 게이츠 이름이 사라졌다. 인도 현지 언론은 인도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엡스타인 파일에 게이츠가 등장한 정황을 들어 초청을 재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엡스타인 파일은 미성년자 성 착취범이자 억만장자 금융 사업가 제프리 엡스타인이 전 세계 유력 인사들과 어울렸다는 ‘엡스타인 스캔들’ 관련 수사 자료다. 엡스타인은 수감 중이던 2019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이후 스캔들에 불이 붙으면서 게이츠와 트럼프 등 여러 유명 인사들이 연루 의혹에 휘말리고 있다. 게이츠 재단은 예정된 기조 연설 몇 시간 전 “신중한 검토 끝에 AI 정상회의의 핵심 우선순위에 초점을 유지하기 위해 게이츠는 기조연설을 하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인도 정부는 변경 사실을 게이츠 측이 직접 알리도록 했다. 이는 게이츠가 더 이상 행사 권위를 높이는 초청 인사가 아니라, 행사 의제를 흔들 수 있는 평판 리스크로 취급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마크 수즈먼 재단 최고경영자 등 지도부는 추진 중이던 게이츠재단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식 방문 일정에서도 재단 이사장인 게이츠를 뺐다. 에너지 업계 최대 행사로 꼽히는 세라위크(CERAWeek) 주최 측은 지난 3월 게이츠를 연설자로 세우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엡스타인 의혹이 부각된 점을 들어 초대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게이츠는 메인 행사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다른 호텔에서 열린 벤처 투자자 행사에 참여해 에너지 업계 파트너와 투자자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관계자를 인용해 “이날 게이츠가 수억 달러 규모 신규 펀드를 모금하려 했지만, 일부 투자자가 게이츠의 엡스타인 연관성과 기후 사업 축소를 들어 난색을 표했다”며 “모금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투자업계와 자선업계 큰 손인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도 최근 게이츠와 부쩍 거리를 두고 있다. 버핏은 올해 2월 엡스타인 파일이 추가로 공개된 뒤 게이츠와 대화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20여 년간 버핏이 게이츠 재단에 수십억 달러를 기부하며 미국에서 ‘베푸는 억만장자’ 상징으로 각별한 관계를 여러 차례 과시했다.
게이츠 재단은 게이츠에 대한 호감도·신뢰도·영감 지수를 자체 추적한 결과, 부정적 의견 다수가 엡스타인 의혹과 맞물린다는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미 법무부가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에 따라 공개한 350만쪽 분량 문건에는 ‘게이츠가 러시아 여성들과 성관계한 뒤 성병에 걸린 사실을 당시 배우자 멀린다에게 숨겼다’는 엡스타인 이메일이 포함됐다. 게이츠는 2월 재단 타운홀에서 러시아 여성 2명과의 불륜을 인정했다. 전 부인 멀린다 게이츠는 인터뷰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프다”며 전 남편을 비판했다.
함께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게이츠는 2011부터 2014년 사이 엡스타인을 뉴욕 타운하우스와 플로리다, 시애틀, 유럽에서 여러 차례 만났다. 게이츠는 엡스타인을 만난 사실에 대해 “재단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반대(the opposite of the values of the foundation) 일을 저질렀다”고 사과했다. 이어 “엡스타인과 사업·교우 관계는 없었고 자선 기금 조성 가능성을 논의하려 만났을 뿐”이라고 했다.
게이츠 대변인은 30일 WSJ에 “게이츠가 6월 초 하원 감독위원회 조사에 자발적으로 응했다”며 “게이츠는 피해자들이 마땅한 정의를 얻길 바라며 엡스타인 파일 전면 공개를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게이츠는 다음달 10일 공화당 출신 전직 법무부 인사 존 모런 변호사와 하원 감독위원회 비공개 조사에 출석할 예정이다. 게이츠 측은 화상 출석을 배제하고 진술을 녹화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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