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만스피’라는 유령이 증시를 떠돌고 있다
||2026.06.01
||2026.06.01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는 수사도 무색한 요즘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5천피를 달성했다는 환호도 잠시, 코스피는 6천피와 7천피를 단숨에 뛰어넘은 뒤 8천피, 내친김에 9천피 등정까지 바라보고 있다. 시장에선 '만스피' 도달 전망도 심심찮게 나온다.
시장의 주인공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관련주다. 인공지능(AI)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면서 고성능 메모리, 데이터센터, 서버, 전력 인프라 등 관련 산업 전반에 대한 기대가 주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AI는 단순한 기술 유행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챗봇과 검색 서비스를 넘어 제조, 금융, 의료, 국방, 물류, 로봇 등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피지컬 AI,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 양자컴퓨터 등으로 기대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AI가 더 많은 데이터를 필요로 하고 더 빠른 연산 능력을 요구하며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할수록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 증시가 그 수혜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시장 중 하나라는 분석도 무리는 아니다.
간혹 비관적인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렇다할 영향은 없어 보인다. 과거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듯 AI 역시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많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투자를 이어가고 있고 각국 정부도 AI 산업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눈앞의 상승세를 외면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이 힘을 얻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시장의 기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주가는 미래의 기대를 먹고 오른다. 기대가 현실로 확인되면 더 오를 수도 있지만 현실이 기대에 못미친다 싶으면 어김없이 조정이 찾아온다. 기대했던 성과가 나올 것이란 믿음이 깨지는 순간, 벌려 놓았던 레버리지가 독이 돼 돌아온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2000년 전후 IT 버블 때도 인터넷은 세상을 바꿀 기술이었다. 실제로 인터넷은 이후 세계 경제의 중심 인프라가 됐다. 그러나 당시 주식시장은 기술의 가능성을 너무 앞서 반영했고, 결국 많은 기업과 투자자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2008년 금융위기 전에도 시장에는 낙관이 넘쳤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처럼 보였고 온갖 파생상품으로 무장한 금융공학은 위험을 분산시킨다는 믿음을 키웠다. 하지만 시장은 어느 순간 방향을 바꿨고 위기는 대규모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라는 전례 없는 처방 뒤에야 가까스로 수습됐다.
물론 지금의 상황을 과거 위기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AI 산업의 성장성은 실체가 있고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력도 분명하다. 버블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꺼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투자자의 태도다. 아무리 유망한 산업이라도 주가는 오르고 내린다. 아무리 강한 상승장이라도 조정 없이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는다. 시장의 끝이 언제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끝이 있다는 사실만은 누구나 알고 있다.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손실이 났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잊었을 때다. 상승장이 길어질수록 투자자는 위험을 작게 보고 수익 가능성은 크게 본다. 빚을 내 투자하거나, 단기간 급등한 종목을 뒤늦게 따라 사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로 포트폴리오를 한쪽에 몰아넣는 행동은 결국 시장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험하게 만든다.
지금의 코스피 상승세는 한국 증시에 반가운 변화다. 오랜 기간 저평가 논란에 갇혀 있던 시장이 AI와 반도체라는 글로벌 성장 축 위에서 재평가받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좋은 시장일수록 냉정한 투자 원칙이 필요하다.
주식투자의 기본은 결국 단순하다. 잘 모르는 것에 무리하게 투자하지 않는 것,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투자하는 것, 한 방향으로만 시장을 보지 않는 것, 그리고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AI가 산업의 미래를 바꿀 수는 있다. 그러나 투자자의 손실까지 대신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뜨거운 시장일수록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
손희동 금융부장
sonn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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