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 특허 3500건의 경고 [손혁의 IP 전략 노트]
||2026.06.01
||2026.06.01
소프트뱅크 그룹이 2025년 4월 2일과 3일, 단 이틀동안 일본에서 3500건이 넘는 AI 관련 특허를 공개했다. 하루 1750건, 시간 당 73건꼴이다.
손정의 회장 본인이 개인 명의로 1000건 이상을 출원했고, 그룹 차원에서는 수개월 만에 1만 건 이상의 생성형 AI 관련 출원을 완료했다. 2025년 8월 기준 소프트뱅크의 연간 공개 건수는 1만379건으로 일본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단순하지 않다. 같은 해 12월, 일본 전체 특허 출원 건수는 전년 동월 대비 168.9% 급증해 약 8만2000건을 기록했다. 소프트뱅크 한 곳의 움직임이 한 나라의 특허 지형 자체를 뒤흔든 셈이다.
AI가 특허 ‘쓰는’ 시대가 열렸다
이런 대량 출원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AI 기술 자체에 있다. 과거 특허 명세서 한 건을 작성하려면 변리사가 발명자와 수차례 미팅하고 선행기술을 조사하고 청구항을 설계해야 했다. 여기에 소요되는는 시간만 수 주가 걸린다.
지금은 다르다. 생성형 AI 기반 명세서 작성 도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발명 아이디어를 입력하면 AI가 선행기술을 검색하고 청구항 초안을 만들어낸다. 또 명세서 전체를 수 시간 내에 생성한다.
우리나라에서도 AI 기반 특허 명세서 서비스가 등장했고 글로벌 IP 관리 소프트웨어 시장은 연평균 14%씩 성장하며 이미 100억달러를 넘어섰다.
소프트뱅크의 AI 특허 3500건이 모두 변리사가 한 건 한 건 수작업으로 작성한 결과물일 가능성은 낮다. AI가 특허 출원의 '도구'에서 '주체'에 가까운 역할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소프트뱅크의 특허 전략이 위협적인 이유
소프트뱅크의 대량 출원을 단순히 ‘숫자 놀음’이라고 치부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의 본질은 출원 건수 자체가 아니다. 그 특허 양이 만들어내는 전략적 압력에 있다.
한 기술 분야에 수천 건의 특허가 촘촘하게 깔리면 경쟁사 입장에서는 어디를 밟아도 특허에 걸릴 수 있는 지뢰밭이 된다. 개별 특허의 권리범위가 좁더라도 회피 설계에 드는 비용과 시간만으로도 후발 주자의 사업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특허 분쟁이 협상 테이블로 갈 때도 마찬가지다. 보유 특허가 100건인 회사와 1만 건인 회사의 협상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더 주목할 점은 소프트뱅크의 출원이 단순한 숫자 채우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출원 분야를 들여다보면 생성형 AI(LLM) 기반 정보 처리 기술은 물론이고 로보틱스, 통신 네트워크, 드론까지 AI 응용 발명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자사의 사업 방향인 AI 인프라, 피지컬 AI, 통신에 맞춰 특허를 전방위로 배치한 것이다. 소프트뱅크의 특허 양 뒤에는 사업 전략이 있다.
양의 전쟁인가, 질의 전쟁인가
특허 대량생산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무작정 특허의 숫자만 늘리는 것이 정답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특허의 가치는 청구항이 얼마나 넓고 견고하게 설계됐느냐에 달려있다. 아무리 수천 건을 출원해도 청구항의 권리범위가 좁거나, 진보성이 부족하거나, 사업과 연결되지 않는 특허는 방어력이 없다.
AI가 대량으로 생성한 명세서의 경우, 형식은 갖춰져 있어도 핵심 발명의 기술적 본질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등록까지는 될 수 있어도 실제 분쟁에서 경쟁사의 제품을 커버하지 못하는 특허가 나오는 것이다.
필자가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인하우스 변리사로 일하면서 체감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출원 건수를 채우는 일과 사업을 실제로 보호하는 특허를 만드는 일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100건의 허술한 특허보다 10건의 정교한 특허가 분쟁 상황에서 훨씬 강력하다. 결국 소프트뱅크의 대량 출원이 한국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AI 시대의 특허 전쟁은 양과 질을 동시에 갖춰야 하는 싸움이 됐다. 대기업은 양으로 지뢰밭을 깔고, 그 안에 질 높은 핵심 특허를 심어둔다. 이 조합에 대응하려면 중소·중견 기업도 “우리는 질로 승부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제한된 자원 안에서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어떤 기술을 어떤 시점에 어떤 권리범위로 출원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한국 기업은 어디에 서 있나
한국의 AI 특허 출원 역량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스탠퍼드대 HAI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AI 관련 특허 출원에서 세계 1위(17.27건)를 기록했다. 중국(6.08건), 미국(5.20건), 일본(4.58건)을 크게 앞선 수치다.
2025년 국내 특허 출원도 26만 건을 넘기며 전년 대비 5.9% 증가했다. 특히 하반기 들어 전자상거래, 게임, 의료 분야에서 신규 출원인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식재산처도 생성형 AI를 활용한 출원 증가에 대비해 심사 부담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적인 격차도 존재한다. 소프트뱅크처럼 그룹 차원에서 수만 건의 AI 특허를 전략적으로 밀어넣는 기업이 한국에 있는가. 국내 대기업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중견·중소 테크 기업은 연간 출원이 수십 건 수준에 머문다. 해외 출원까지 고려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정부도 이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다. 2026년 해외 IP 법무지원 예산은 823억 원으로 전년 대비 36% 증액됐다. AI 기반 해외 상표 무단선점 사전탐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NPE(특허괴물)의 특허 매입 동향을 분석해 기업에 사전 경고하는 체계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개별 기업이 자사의 기술과 사업에 맞는 IP 전략을 갖추지 않으면 이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기업이 해야 할 세 가지
이러한 변화 앞에서 기업이 해야 할 세 가지 대응책이 있다. 첫째, AI를 특허 업무에 적극 활용하되, 최종 판단은 전문가가 내려야 한다. AI 도구는 선행기술 조사, 명세서 초안 생성, 특허 맵 분석에서 이미 실무 수준의 품질을 보여준다. 하지만 청구항 설계, 진보성 판단, 권리범위 전략은 사업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AI로 속도를 올리고, 사람으로 질을 잡는 투트랙이 필요하다.
둘째 '방어형 출원'에서 '공격형 포트폴리오'로 전환해야 한다. 많은 한국 기업이 아직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출원해두자”는 방식으로 특허를 관리한다. 그러나 소프트뱅크가 보여준 것은 사업 전략과 특허 전략을 일체화시키는 접근이다. LLM, 로보틱스, 통신, 드론 등 자사 사업이 향하는 방향에 맞춰 특허 펜스를 치는 것이다. 특허가 사업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업보다 한 발 앞서 시장을 선점하는 무기가 되어야 한다.
셋째, 해외 특허 전략을 지금 당장 점검해야 한다. AI 특허 전쟁은 글로벌 전쟁이다. 한국에서만 출원한 특허는 해외에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의 특허 확보 없이는 해외 기업의 특허 공세에 속수무책이다. 특히 AI 분야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 출원 타이밍을 놓치면 선행기술에 막혀 등록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AI 시대, 특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AI가 특허를 대량으로 쏟아내는 시대가 왔다. 출원의 속도와 양은 앞으로 더 빨라지고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특허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좋은 특허는 좋은 기술에서 나오고, 좋은 전략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사업을 지키는 무기가 된다.
소프트뱅크의 3500건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AI 시대의 IP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선전포고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AI 도구를 빠르게 받아들이되, "무엇을 왜 출원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변리사로서 필자가 전하고 싶은 첫 번째 메시지다.
손혁 인텔리안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LG전자 표준특허 대리인, 카카오·카카오엔터프라이즈 인하우스 변리사를 거쳐 인텔리안특허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AI, SW, 클라우드, 의료기기 분야의 특허 전략을 전문으로 하며, 한국지식재산협회 소프트웨어분과 위원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표준특허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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