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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닫은 문, 시진핑은 열었다… 中, 아프리카 53개국 관세 전면 철폐 ‘통큰 선물’

조선비즈|유진우 기자|2026.05.27

중국이 아프리카 53개국 수입품에 부과하던 관세를 모두 없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프리카에 잇따라 고율 관세를 매기고 원조 기구마저 닫는 사이, 중국은 미국과 정반대 카드로 아프리카를 끌어당기고 있다.

26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은 이달 1일부터 아프리카 53개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상품에 무관세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달부터 남아프리카산 고급 와인, 수단산 참깨, 레소토산 양모 등 9000개 가까운 주요 수출 품목들은 관세 없이 중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국제연합(UN) 기준 총 54개국인 아프리카 가운데 대만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에스와티니 한 곳만 빠졌다.

2018년 9월 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에서 앙골라의 주앙 로렌소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9월 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에서 앙골라의 주앙 로렌소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조치가 2024년 12월 시행한 아프리카 최빈국 33개국 무관세 정책을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장한 결과라고 했다. 이 시기는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2기 부임을 확정하고 중국에 무역 전쟁 재개를 예고한 때와 맞물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 대통령 재선이 가시화하기 두 달 전인 2024년 9월 베이징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최빈국 무관세 방침을 처음 꺼냈다. 이후 2024년 12월 1일부터 아프리카 최빈국 33개국에 시행됐고 올해 5월 53개국 전체로 확대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폐쇄했고 아프리카 주재 미국 대사 자리도 다수 공석으로 남겨뒀다. 지난해 4월 새 상호 관세 정책을 발표할 당시 미국은 아프리카 최대 경제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30%, 자원 부국 콩고민주공화국에 15% 관세를 새로 부과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2000년 만든 아프리카성장기회법(AGOA)도 지난해 9월 25년 만에 효력을 잃었다가, 올해 2월 한 해 연장 형태로 가까스로 부활했다. 이 법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가 미국에 1800여 개 품목을 무관세로 수출하도록 허용한 특혜 제도다. 남아공 통상장관 팍스 타우는 AGOA 한시적 연장 방침이 “불확실성을 지속시켜 장기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이지리아 정부에 이슬람 무장 세력으로부터 기독교인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아공 정부에는 백인 소수민족을 상대로 “집단학살(genocide)”을 자행한다는 주장을 폈다. 아프리카 정치 리스크 분석 기관 시그널리스크의 로낙 고팔다스 디렉터는 WSJ과 인터뷰에서 “정치적으로 영민한(politically astute) 결정”이라며 “이번 관세 철폐는 미국의 변덕스럽고 탐욕스러운 태도와 대비된다. 중국이 안정적이고 믿을 만한 아프리카 파트너라는 이미지를 강화한다”고 했다.

무관세 조치는 코발트·구리·콜탄 등 전기차·반도체용 핵심 광물 공급망에서 중국 입지를 한층 굳히는 카드로 작용하고 있다. 케냐 부통령 키투레 킨디키는 3월 나이로비 비즈니스 포럼에서 중국 무관세 협정 덕분에 약 40억 달러(약 6조 원)에 이르는 대중국 무역적자를 줄일 기회를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커피·차·마카다미아·아보카도를 대표적인 수혜 품목으로 꼽았다. 미국도 아프리카에서 주로 사가는 품목들이다. 케냐 일간 데일리네이션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수출 비중 절반 이상이 마카다미아·커피·티타늄광·홍차로, 이 중 4분의 3이 AGOA 무관세 혜택을 받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부터 케냐산 수입품에 10% 상호관세를 매기고, AGOA 미래도 한해씩 연장할 만큼 불투명해지면서 케냐로서는 같은 품목을 중국 시장에 무관세로 파는 쪽이 실익이 더 커졌다.

특히 원자재 공급선 측면에서 아프리카는 이미 미국보다 중국 쪽으로 기울었다. 아프리카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멀어도 사실상 자원 앞마당 노릇을 하고 있다. 2025년 기준 아프리카가 중국으로 수출한 광물성 제품은 730억 달러(약 109조7000억 원), 금속은 260억 달러(약 39조 원), 귀금속은 140억 달러(약 21조 원)에 달했다. 같은 해 대미 수출은 광물 110억 달러(약 16조5000억 원), 귀금속 120억 달러(약 18조 원) 안팎에 그쳤다. 중국 정부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중국-아프리카 교역액은 2956억 달러(약 444조 원)로 사상 최대였다. 같은 해 미국-아프리카 교역액 1000억 달러(약 150조 원)와 비교하면 약 세 배 정도 많았다.

레소토 전 통상장관 모케티 셸릴레는 “레소토가 생산 능력에 투자하고 현지 가공을 늘리며 물류를 개선해 경쟁력 있는 산업을 키운다면 중국 시장이 핵심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며 “그렇지 못하면 혜택은 1차 산품 수출에 갇힐 수 있다”고 했다. 레소토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50%에 달하는 고율 관세 탓에 섬유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나라다. 남아공 싱크탱크 안보연구소(ISS)는 이달 보고서에서 “중국 무관세 결정은 지정학적 신호에 가깝다”며 “앙골라·콩고민주공화국·잠비아·남아공처럼 이미 중국 공급망에 깊숙이 들어간 아프리카 국가들이 혜택을 누리는 기존 구도를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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