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의 중국 정치·산업 四季] 트럼프 2기의 실용주의 방중, 진영 논리를 넘어선 ‘딥테크(Deep Tech) 딜’의 서막
||2026.05.20
||2026.05.20

이러한 기류 변화는 수행 사절단의 면면에서 한층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2017년 1기 사절단이 주로 에너지, 농업, 항공 등 전통적인 제조업과 원자재 기업 중심으로 구성되어 미국의 무역 적자 해소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이번 사절단에는 애플(Apple)의 팀 쿡, 테슬라(Tesla)의 일론 머스크 등 글로벌 테크 및 자본 생태계를 주도하는 최고경영자들이 대거 동행했다. 이는 2기 행정부의 미·중 관계가 범용 상품의 무역 균형을 맞추는 차원을 넘어, 특정 첨단 산업을 둘러싼 '정밀한 이익 교환' 단계로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1기 행정부가 관세를 앞세워 공급망의 물리적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시도했다면, 2기 행정부는 중국의 제조 인프라와 시장을 단기간에 배제하는 것의 현실적 한계를 인지하고 있다. 그 대신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핵심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관세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며 실질적인 타협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중국 정부 역시 1기 때와는 달라진 접근법으로 이번 방중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 미국의 통상 압박에 방어적이고 이념적인 대응을 앞세웠던 것과 달리, 현재 중국은 자국이 구축한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 고도화된 하드웨어 생태계를 협상의 무기로 삼고 있다. 특히 내수 회복 지연과 부동산 부문의 조정이라는 내부적 경제 과제를 안고 있는 중국 지도부로서는, 첨단 제조업의 글로벌 밸류 체인을 유지하고 대외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미국 자본 및 테크 기업들과의 실용적 타협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양국은 정치적 명분이나 체제 대립의 수사보다는 자국 주요 산업의 실익과 생태계 장악이라는 철저한 비즈니스적 우선순위를 두고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형국이다.
이번 트럼프 2기의 실용주의적 방중 행보가 한국 산업계에 던지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그동안 국내 산업계 일각에서는 미·중 패권 경쟁 격화에 따른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의 반도체 및 배터리 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 방중에서 나타나듯, 미국과 중국은 자국의 산업적 이해관계가 일치할 경우, 언제든 기술 및 자본의 타협을 도출할 수 있는 구조로 움직이고 있다.
예를 들어 테슬라가 중국 자율주행 데이터(Data)의 통제권을 양보받는 대가로 핵심 인프라 투자를 약속하거나, 애플이 중국 부품 생태계 활용을 지속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미중 양국에 중간재 수출을 의존하는 한국 산업의 입지는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강대국 간의 갈등이 한국 기업의 시장 지위를 자동으로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제 한국은 미중 패권 경쟁에 기댄 반사이익이나 단선적인 진영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포시즌스 호텔에서 목격되듯, 미국과 중국의 주요 기업들이 직접적인 '디지털·테크 딜(Tech Deal)'을 성사시키는 국면에서는 범용 중간재에 의존해 온 한국의 기존 수출 방식 역시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핵심은 '어느 진영에 설 것인가'라는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새롭게 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가 내밀 수 있는 독점적 기술이 있는가'에 달렸다. 미·중 양국이 타협을 통해 첨단 산업의 새로운 룰(Rule)을 만들어갈 때, 그 밸류 체인의 길목에서 어느 쪽도 자체 조달할 수 없는 고부가가치 소재나 '대체 불가능한 병목(Choke Point) 기술'을 확보하는 것, 예컨대 전장 부품의 최상위 제어 모듈이나 고정밀 패키징 공정 기술처럼 대체 불가능한 지분을 쥐는 것만이 실용주의적 거래가 상시화된 현재의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한국 산업계가 증명해 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김동영 (중국경영연구소 부소장 /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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