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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도 HPV 무료 접종 시대… “자궁경부암 백신 아닌 암 예방 백신”

IT조선|김동명 기자|2026.05.20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국가예방접종이 여성 청소년 중심에서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한 예방 체계로 전환점을 맞았다. 그동안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인식돼 온 HPV 백신이 남성에게도 생식기 사마귀, 항문암, 구인두암 등 관련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라는 점에서, 이번 남아 접종 도입은 국내 HPV 예방 전략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김동현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20일 서울 성암아트홀에서 열리 HPV 국가필수예방접종(NIP) 미디어 세션에서 남자 청소년 예방 접종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동명 기자
김동현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20일 서울 성암아트홀에서 열리 HPV 국가필수예방접종(NIP) 미디어 세션에서 남자 청소년 예방 접종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동명 기자

한국MSD는 20일 서울 성암아트홀에서 ‘HPV 국가필수예방접종(NIP)의 새 기준, 남녀 모두 접종’을 주제로 미디어 세션을 열고, 지난 6일부터 시행된 만 12세 남성 청소년 HPV NIP 확대의 의미와 과제를 설명했다.

이번 확대에 따라 2026년 기준 2014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 사이 출생한 남성 청소년은 출생 월과 관계없이 무료 접종을 받을 수 있다. HPV 백신이 국내 NIP에 도입된 이후 약 10년간 무료 접종 대상이 여성 청소년에 한정돼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성 청소년으로 접종 대상이 넓어진 것은 국내 HPV 예방 정책의 중요한 변화로 평가된다.

HPV는 남녀 모두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다. 대부분 자연 소멸하지만 일부는 체내에 지속 감염돼 자궁경부암, 질암, 외음부암, 항문암, 생식기 사마귀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국제인유두종협회(IPVS)에 따르면 전 세계 발생 암의 약 5%는 HPV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HPV 관련 신고는 늘고 있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HPV 신고자 수는 2020년 1만945명에서 2024년 1만4534명으로 약 32.8% 증가했다. 특히 남성 신고 건수는 같은 기간 117건에서 214건으로 82.9% 늘었다.

HPV 감염자가 여성은 연령이 높아질 수록 낮아지는 반면 남성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MSD
HPV 감염자가 여성은 연령이 높아질 수록 낮아지는 반면 남성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MSD

남성의 HPV 질환 부담은 이미 수치로도 확인된다. HPV 감염이 주원인으로 꼽히는 생식기 사마귀의 경우 2024년 국내 남성 환자는 4만8017명으로, 여성 환자 9600명의 약 5배에 달했다.

2014년 3월부터 2022년 2월까지 국내 남성 4만4065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전체의 59%가 HPV DNA 양성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연령이 증가하면서 HPV 감염률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남성은 20~40대까지 감염률이 40~50% 수준으로 유지돼 지속적인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김동현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HPV를 “침묵의 조각가”에 비유했다. 감염 직후 바로 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10~20년 이상 잠복했다가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다. 김 교수는 “이 백신은 자궁경부암만 예방하는 백신이 아니다”라며 “남성에게는 구인두암 등을 예방할 수 있고, 여성 질환으로만 여겨졌던 HPV 관련 질환이 이제는 남녀 모두를 위협하는 문제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남녀 모두 접종을 통해 HPV 감염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남녀 모두 접종을 강조하는 이유는 HPV가 성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감염병이기 때문이다. 접종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전 면역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HPV 백신의 권고 접종 연령이 11~12세로 제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NIP를 통해 접종 가능한 4가 HPV 백신은 9~13세 사이에는 2회 접종이 필요하며, 첫 접종 후 6~12개월 간격으로 두 번째 접종을 받으면 된다. 연구에 따르면 9~13세에 2회 접종한 경우 16~26세 3회 접종군과 비교해 HPV 16·18형에 대해 비열등한 면역원성을 보였다.

다만 남성 청소년 접종 정착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국내 남성 청소년의 HPV 백신 접종률은 아직 매우 낮다. 2024년 기준 2011년생 남성 청소년의 접종률은 0.2%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HPV 백신이 오랫동안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불리면서 남성 접종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남성도 HPV 감염과 관련 암·질환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조재용 한국MSD 백신사업부 전무가 남아 HPV 국가예방접종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김동명 기자
조재용 한국MSD 백신사업부 전무가 남아 HPV 국가예방접종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김동명 기자

해외에서는 이미 남녀 모두 접종이 보편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 교수는 “호주는 2013년부터 남성 접종이 이뤄졌고, 미국도 2011년부터 남성 접종을 시작했다”며 “여성에서 높은 접종률을 확보하고 남성 접종까지 병행한 국가는 HPV 관련 질환 부담을 크게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12세 남자 청소년에 한해 접종 지원이 시작된 것은 국가 보건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는 뜻깊은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조재용 한국MSD 백신사업부 전무는 이날 “HPV는 남녀 모두 감염되고 관련 질환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임에도 그동안 남성 접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경향이 있었다”며 “올해 남아 HPV 국가예방접종 도입을 기점으로 남녀 모두 접종의 중요성을 알리고, 남성 청소년 접종이 원활히 정착될 수 있도록 다각도의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정책 변화를 계기로 HPV 백신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HPV 백신을 특정 성별이나 특정 암 예방 백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의 미래 암과 감염성 질환을 줄이기 위한 공중보건 수단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12세는 남자 아이들의 2차 성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이자, 초등학교 졸업 전 필수 예방접종을 점검해야 하는 시기”라며 “국내 남아 대상 HPV NIP가 시작된 만큼 그동안의 남녀 예방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의료 현장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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