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에이전트 시대의 새로운 AI 국부론 [이승현의 AI 네이티브]
||2026.05.19
||2026.05.19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기묘한 동시성 위에 서 있다. 한쪽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본격화되며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GPT 5.5와 클로드 미토스, 그리고 곧 등장할 제미나이 3.5로 대표되는 초거대 AI 그리고 멀티에이전트 시대로 인한 가속이 토큰 사용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새로운 형태의 외화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경상수지는 1230억 달러로 사상 최대 흑자다. 그러나 AI서비스, OTT 구독 등이 포함된 지식서비스 무역수지는 102.5억 달러 적자, 2010년 이후 네 번째 대형 적자였다. 게다가 이 적자는 멀티에이전트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의 숫자다. 이처럼 두 개의 슈퍼사이클이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 두 물결의 폭이 어느 쪽이 더 넓어지느냐가 향후 10년 한국 경제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본다.
들어오는 물결 - 메모리의 왕좌자리는 언제까지?
먼저 들어오는 물결을 보자. 2025년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1734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2026년에는 이마저도 넘어설 전망이다. SK하이닉스의 2026년 영업이익은 100조원을 훌쩍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올해 D램 매출 51% 증가, 낸드 45% 증가, ASP는 D램 33%·낸드 26% 상승을 전망하며 "1990년대 호황기와 유사한 슈퍼사이클"이라고 전망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2026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97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으며, 메모리 부문은 전체 성장률을 상회하는 30%대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변화는 메모리의 위상 자체가 바뀌었다는 데 있다. 7년 만에 처음으로 메모리 사업 수익성이 파운드리를 추월하고 있다. AI는 GPU의 시대를 열었지만, GPU의 한계를 푸는 열쇠가 결국 메모리라는 사실이 여전히 드러났다. 폰 노이만 구조의 메모리 장벽을 뚫는 HBM이 AI 가속기의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HBF가 장기 메모리 차원에서 보완적 역할을 하면서, 메모리는 보조 부품에서 슈퍼사이클의 중심으로 그리고 AI의 미래로 확실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다.
여기까지가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슈퍼사이클은 영원하지 않다. 마이크론이 2028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차세대 HBM을 양산하기 시작하면, 중국이 기술격차를 좁히면, AI 서버 투자 증가세가 둔화되면, 지금의 압도적 우위는 흔들릴 수도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호황이 우리나라 안의 AI 부가가치 사슬을 모두 메우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메모리로 달러는 들어오지만, 그 메모리가 장착된 GPU 위에서 돌아가는 모델과 서비스, 토큰 단위로 달러가 나가고 있다.
나가는 물결 - GPT 5.5, 미토스, 제미나이 3.5의 가속 그리고 멀티 에이전트
나가는 물결은 더 거세다. 2026년 상반기만 봐도 오픈AI의 GPT 5.5, 앤트로픽의 클로드 미토스, 그리고 곧 발표될 구글의 제미나이 3.5 등 이들 세 빅테크는 분기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로 프론티어를 재정의하고 있다.
특히 미토스는 상징적이다. 앤트로픽은 미토스가 27년 묵은 OpenBSD 보안 버그와 자동화 테스트 500만 회를 통과해 16년간 잠재해 있던 영상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너무 위험해서 일반에게는 공개조차 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애플 등 소수 정예 기업에만 '프로젝트 글래스윙'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한다는 모델이다. 프론티어 모델의 능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능력에 대한 접근권 자체가 국가 경쟁력의 변수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모델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 모델에 접근할 수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하나 더해지는데, 바로 멀티에이전트다. 지난 1년 사이 토큰 소비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서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으로, 다시 하네스 엔지니어링으로다. 클로드 코드와 코덱스의 등장 이후 1인 개발자가 하루에 수천만 토큰을 태우는 시대가 되었다. 앤트로픽이 공식 발표한 멀티에이전트의 토큰 소비량은 단일 에이전트의 15배, 24/7 풀타임 자율 가동은 인간 8시간 노동의 3배다. 사용자 저변이 개발자에서 일반 직장인으로 확산되는 N배를 곱하면, 한 사람당 토큰 소비량은 100배 수준으로 폭증할 수 있다.
단순 추정치라고 보기도 어렵다. 보수적인 골드만삭스도 2030년 AI 에이전트 토큰 소비를 24배로 전망하고 있으며, 오픈라우터의 실측 데이터는 코딩 에이전트 토큰 소비가 2024년 3월에서 2025년 5월까지 단 14개월 만에 75배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세 방향의 숫자가 모두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토큰 슈퍼사이클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청구서는 달러로 발행된다.
문제는 들어오는 달러는 반도체라는 물질적 상품의 대가이고, 나가는 달러는 토큰이라는 비물질 서비스의 대가다. 반도체의 경우는 환율과 경기 사이클에 따라 출렁이지만, AI 서비스는 사실 가격 탄력성이 거의 0이다. 환율이 올랐다고 GPT 구독을 끊을 수 없고, 제미나이를 안 쓸 수 없으며, 미토스급 보안 분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과 한국 시민이 AI를 더 많이 쓸수록, 그 사용료는 미국 빅테크로 흘러가고, 경상수지가 악화되거나 적자가 되면, 환율이 오르게 되고, 환율이 오르면 그 부담은 커지게 되어 적자는 심화되는 악순환의 루프에 빠질수 있다. 부담이 커진다고 사용을 줄이지도 못한다. 시장의 자기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가격 탄력성 0의 외화 유출이 점점더 커져가게 될 수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열심히 반도체를 팔아 번 달러를, 그 반도체로 돌아가는 미국 AI에 100배로 다시 지불하게 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가 과장이 절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하는가
세 가지 방향이 동시에 필요하다.
첫째, 소버린 AI를 옵션이 아니라 필수로 다뤄야 한다. 기술주권 같은 그런 모호한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 즉 국가대표 AI 프로젝트는 5300억 원 규모로 2027년까지 정예팀들이 경쟁한다. 글로벌 모델의 95% 성능 확보가 공식 목표지만, 진짜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미토스처럼 너무 위험해서 일반 공개되지 않는 프론티어 모델이 등장하는 시대에, 국산 모델의 존재 자체가 협상력이고 안보다. 95%의 성능은 부족함이 아니라, 95%만큼의 외화 유출을 차단하고 95%만큼의 국가경쟁력을 지킬 수 있는 방패다.
둘째,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수익을 다음 사이클로 환원시켜야 한다, SK하이닉스의 100조 원 영업이익이 주주 환원과 시설 투자에만 머문다면, 그 돈은 다시 미국 빅테크가 발주하는 GPU를 위한 HBM 생산능력으로 환원될 뿐이다. 같은 회로를 더 빠르게 돌리는 것이다. 메모리로 번 달러의 일정 비율은 반드시 한국의 AI 풀스택, 모델, 인프라, 전력망, 데이터센터, 그리고 가장 핵심인 데이터로 흘러야 한다. 미국이 자국 슈퍼사이클의 수익을 오픈AI, 앤트로픽, xAI에 환류시키듯 우리나라도 자국 슈퍼사이클의 수익을 자국 AI 생태계로 흘려보내는 회로를 설계해야 한다.
셋째, AI 국부의 회계 자체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 현재의 국민계정은 0.00001 달러 단위 마이크로 결제를 포착하지 못하고, 멀티에이전트의 24/7 가동을 노동통계에 반영하지 못하며, 데이터 자산의 가치를 GDP에 잡지 못한다. 그래서 1230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와 102.5억 달러 지식서비스 적자가 같은 회계 안에서 모순 없이 공존한다. 이 모순을 가시화하기 위해, GDP를 대체할 GIP(Gross Intelligent Product), 데이터 배당, 기본자산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경제는 정책의 사각지대가 되고, 정책의 사각지대는 결국 국부의 사각지대가 된다.
댐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
이처럼 2026년의 우리나라에게는 기회와 위험이 상존한다. 메모리로 가져올 기회와 토큰으로 인한 위험이다. 소버린 AI도, 풀스택 전략도, AI 국부의 새 회계도 결국은 반도체로 번 시간 안에서 새로운 시간을 버는 일이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흑자로 벌어준 2년 안에, 슈퍼사이클이 끝난 뒤에도 흑자로 남아 있을 구조를 짓기 위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가트너는 2028년 90%의 B2B거래가 AI에이전트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가트너의 시계는 2028년을 가리킨다. 하지만 적자가 본격화되는 시점일 뿐, 우리가 슈퍼사이클 이후를 대비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호황은 길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가 준비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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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라이너 AI 에반젤리스트는 스타트업 창업가 출신의 AI 전문가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공지능플랫폼혁신국장으로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공공 AI의 초석을 닦았으며, 현재는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겸임교수, 포티투마루 고문, 법무법인 린의 공공AX 고문을 겸하며 기술과 정책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론에 머물지 않는 현장형 전략가로서 국가 전반의 AI 네이티브 전환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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