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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수첩] 수표 버렸다던 수거책…검찰 설득에 입 열다

아시아투데이|정민훈|2026.05.17

인천지검 김녹원, 나정조 수사관
"강남역 화장실에 수표를 버렸다고?"

사건 기록을 검토하던 김녹원 인천지검 검사(사법연수원 43기)는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최모씨(57)의 경찰 진술에서 석연치 않은 대목을 발견했다. 액면가 1억340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를 손에 넣은 최모씨가 이를 그대로 버렸다는 진술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검사와 함께 사건을 들여다보던 나정조 수사관 역시 기록에서 최씨의 진술과 범행 전후 행동 사이에 여러 모순점을 포착했다. 최씨는 전형적인 현금 수거책과 달리 범행 과정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에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속이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씨는 지난해 11월 4일 인천시 남동구 한 거리에서 60대 피해자 A씨로부터 1억3400만원짜리 수표가 든 종이가방을 건네받아 가로챘다. 이후 그는 조직원 지시에 따라 접선 장소인 서울 강남역 인근으로 이동했고, 조직원에게 종이가방을 건넸다. 하지만 종이가방 안에 있어야 할 수표는 사라진 상태였다. 최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게도 사기를 치는 이른바 '배달 사고'를 낸 것이다.

최씨의 범행은 조직원 접선 이후 '완전 범죄'로 마무리되는 듯 했다. 특히 최씨는 보이스피싱 조직과 범행을 공모하는 과정에서 개명 전 이름이 적힌 신분증 사진을 전달하며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치밀함을 보였다. 자신이 사용하던 휴대전화 역시 타인 명의로 개통된 것이었고, 주소지 정보도 실제 거주지와 달랐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수표가 사라진 것을 두고 최씨를 의심했다. 이 조직은 피해자가 은행에서 거액의 자기앞수표를 인출해 종이가방에 넣는 장면까지 사진으로 확인한 상태였다. 결국 최씨가 수표를 빼돌렸다고 보고, 최씨를 상대로 가족 위해 등 협박을 이어갔다.

최씨는 경찰에게도 쫓겼다. 피해자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CCTV 영상 분석을 통해 최씨의 동선을 추적했으며, 최씨의 아내가 살고 있던 경기도 한 주택에서 최씨를 검거했다.

김 검사와 나 수사관은 사건 기록을 면밀히 분석한 끝에 최씨가 수표를 은닉했다고 판단, 보완수사에 착수했다. 수표의 행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사실상 최씨뿐이었기에 최씨를 상대로 한 조사에 완벽을 기해야 했다. 더욱이 해당 수표는 피해자가 직접 은행에서 발급받은 자기앞수표로, 분실 수표에 대한 제권판결(수표를 무효로 만드는 판결) 절차를 거쳐도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실물을 찾지 못하면 피해 회복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김 검사와 나 수사관은 최씨의 입을 열기 위해 무엇보다 '라포(rapport·신뢰 관계)' 형성에 공을 들였다. 이들은 최씨 조사에 앞서 최씨의 직업, 가족 상황, 병력 등을 수일에 걸쳐 살폈다. 준비를 마친 이들은 검사실로 구속된 최씨를 불렀다.

김 검사는 최대한 최씨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사라진 수표에 담긴 피해자의 사정을 차분히 설명했다. 27년간 세 남매를 키우며 공장에서 악착같이 일해 모은 전 재산이 보이스피싱으로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최씨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다.

김 검사는 최씨에게 "당신의 말을 믿는다. 차분히 기억을 더듬으면 기억이 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설득을 이어갔고, 이 과정에서 최씨를 의심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말을 들은 최씨는 20초 가까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최씨는 침묵을 깨고 "제가 약을 먹고 있어 기억이 잘나지 않는데, 더듬어 보니 이제야 기억이 난다"며 숨겨둔 수표 위치를 털어놨다. 첫 조사에서 최씨의 수표 은닉 진술을 이끌어낸 것이다. 최씨가 숨긴 곳은 뜻밖에도 아내 집 앞에 주차된 차량 내부였다. 김 검사는 곧바로 경찰에 수사 협조를 요청해 수표를 확보한 뒤, 검사실에서 피해자에게 직접 돌려줬다.

이번 사건은 보완수사가 단순히 부족한 기록을 메우는 절차가 아니라, 실체적 진실 발견과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안전장치임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김 검사와 함께 사건의 실체를 규명한 나 수사관의 꼼꼼한 사전 조사와 오랜 현장 경험이 최씨 진술의 허점을 짚어내는 밑바탕이 됐다.

김 검사는 "이번 사건은 실물 수표 확보 여부가 피해회복의 핵심이었고, 수표의 행방은 피의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피의자와 신뢰를 형성하며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의 역할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범인을 처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범죄 피해를 회복시켜 주는 데에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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