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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퍼 한 장 수천만 원’ 반도체 공정 특수성... 파업권 어디까지 제한하나

조선비즈|김우영 기자|2026.05.14

이 기사는 2026년 5월 14일 오후 3시 19분 조선비즈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삼성전자 노조가 오는 21일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법원이 파업 전 삼성전자가 낸 위법 쟁의 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반도체 공장의 안전·보전 작업을 이유로 노조의 파업권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다.

삼성전자는 노조의 파업이 반도체 공장의 안전 보호 시설과 원료·장비 보전 작업을 방해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조는 안전과 보전에 필요한 최소 인력은 남기겠다며, 사측이 이를 이유로 파업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려 한다고 맞서고 있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삼성 “공장 멈추면 회복 불가”... 노조 “필요 인력 남기겠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은 전날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낸 위법 쟁의 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의 2차 심문 기일을 열었다. 이날 심문에서는 노조 측이 가처분 신청을 반박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제시했고, 삼성전자 측이 이에 재반박했다. 법원은 파업 예정일인 21일 전에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노동조합법은 쟁의 행위가 있더라도 안전 보호 시설의 유지·운영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작업 시설의 손상이나 원료·제품의 변질·부패를 막기 위한 작업도 방해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 조항을 반도체 공장에 어떻게 적용할지가 이번 사건의 쟁점이라고 본다.

노사는 크게 네 가지 부분에서 맞서고 있다.

①안전 보호 시설의 범위.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의 방재, 배기, 배수, 전력 공급 시설 등이 정상적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화재나 폭발,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전 시설을 관리할 필수 인력이 파업 중에도 현장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도 안전 보호 시설의 유지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측이 안전 보호 시설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잡고 있다고 반박한다. 방재·전력 등 진짜 안전 시설이 아니라 사실상 생산 유지를 위한 인력까지 파업 제한 대상으로 묶으려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메모리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웨이퍼(원판)를 검사하고 있다.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메모리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웨이퍼(원판)를 검사하고 있다.

②웨이퍼 등 원료와 장비의 손상을 막기 위한 범위. 삼성전자는 파업으로 공정이 중단될 경우 장당 수천만 원에 이르는 웨이퍼가 변질되거나 폐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도체 공정은 중간에 멈출 경우 원료와 제품에 손상이 생길 수 있어 사전·사후 보전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 삼성전자는 2021년 2월 미국 텍사스주의 폭설로 약 3일간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서 최대 4000억원 수준의 피해를 봤다. 약 7만1000장 정도의 웨이퍼 생산에 차질을 빚었으며, 멈춘 공장을 재가동하기까지 한 달가량이 소요됐다.

노조 측은 손상을 막을 방법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노조 측 변호인은 “납품받은 웨이퍼의 포장을 뜯지 않고, 이미 공정에 들어간 웨이퍼는 안정화 작업을 통해 손상을 막는 방안을 재판부에 제시했다”고 했다. 필요한 보전 작업까지 거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측이 이를 이유로 파업 자체를 사실상 막으려 한다는 주장이다.

③반도체 설비 유지.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비가 일반 제조 설비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한 번 전원을 끄거나 공정이 멈추면 재가동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정 설비 안의 약액이 굳으면 내부 배관을 전면 교체해야 하고, 이는 신규 설비 설치에 준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노조 측은 설비 손상을 막는 데 필요한 최소 작업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파업을 하더라도 법이 금지한 안전·보전 작업까지 중단하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④점거 금지 시설의 범위. 삼성전자는 반도체 제조 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일부 생산 라인만 멈춰도 전체 공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주요 생산 시설과 관련 공간에 대한 점거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 측은 사측 주장이 과도하다고 반박한다. 일반 사무 공간이나 창고까지 쟁의 행위 금지 대상으로 삼는 것은 파업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5월 1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조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2차 심문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5월 1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조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2차 심문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전부 인용 가능성은 낮아… 삼성바이오 때도 일부만 인정

법원은 노사 주장을 토대로 파업 중에도 반드시 유지해야 할 안전 보호 시설이 어디까지인지, 웨이퍼와 장비 손상을 막기 위해 어떤 작업이 필요한지, 노조의 점거를 어느 범위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원이 삼성전자 신청을 전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비슷한 사건에서 법원이 사측 신청을 일부만 받아들인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노조를 상대로 낸 위법 쟁의 행위 금지 가처분 사건에서 법원은 일부 공정에 대해서만 파업을 제한했다. 원료와 제품의 변질·부패를 막기 위한 3개 공정에 대해서는 파업을 금지했지만, 배양·정제 관련 6개 공정에 대한 신청은 기각했다. 원료와 제품 보전을 위한 작업은 보호 대상이지만, 공정 전반을 이유로 쟁의 행위 자체를 넓게 제한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법원이 전면적인 파업 금지보다는 일부 시설과 작업에 한정해 제한을 둘 가능성이 거론된다. 법원이 삼성전자 신청을 폭넓게 받아들이면 노조는 총파업을 하더라도 실제 파업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일부만 인용하거나 기각할 경우 노조는 필수 인력을 남긴 채 예정대로 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부로서는 반도체 공정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파업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결정도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파업으로 가기 전 정부 긴급 조정권 발동을 통해 노사가 다시 조정에 들어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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