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만 웃는다…‘파업 가시화’에 삼성 반도체 발목
||2026.05.14
||2026.05.14
삼성전자가 성과급 갈등에 따른 파업 리스크에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 주도권을 상실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의 이번 파업은 수십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넘어 고객사 신뢰 하락이라는 치명적인 무형 피해를 예고한다. 삼성전자가 내부 진통에 발목 잡힌 사이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TSMC, 중국 기업 등 경쟁사는 반사이익을 얻으며 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12일 오전부터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2026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2차 사후조정 회의를 17시간 넘도록 진행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최승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중노위 조정안은 성과급 투명화가 아닌 기존 제도를 유지하는 퇴보한 안건이다”라며 21일 총파업 강행을 선언했다.
이번 파업은 5000여명이 참가한 2년 전과 달리 4만~5만명의 인력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돼 실질적인 생산 차질과 피해 규모가 막대할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파업 현실화 시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40조원 넘게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에 가장 큰 우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주도권이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으로 급격히 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엔비디아, AMD 등 빅테크 고객사들이 중시하는 ‘적시 공급’ 신뢰도가 파업 리스크로 인해 훼손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특히 차세대 D램 양산을 위한 선단 공정 전환과 수율 확보에 총력을 다해야 할 시기에 덮친 파업은 삼성전자에 치명타다. 안정적인 공급망이 흔들리고 가격 경쟁력과 품질에서 뒤처질 경우 고객 수요는 즉각 경쟁사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공급망을 주도하는 삼성전자에는 단순 수익 악화를 넘어 브랜드와 신뢰도 추락이 더 큰 문제다”라며 “한 번 빼앗긴 점유율과 고객사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수십조원의 비용과 수년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범용(Legacy) 메모리 시장에서는 낮은 가격을 앞세운 중국 창신메모리(CXMT) 등이 파업으로 인해 나타날 삼성전자의 공백을 시장 잠식의 기회로 보고 있다. 중국 주요 매체는 “선두 주자가 안주하는 사이 후발 주자들이 바로 뒤까지 따라왔다”며 삼성전자의 내부 분열을 반기는 분위기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대만 TSMC는 무노조 경영과 이사회 중심의 성과 배분으로 공급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재도약을 노리는 삼성 파운드리가 노사 리스크에 발목 잡힌 사이 대만 업체들은 자사 제품의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중이다.
TSMC뿐 아니라 엔비디아,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노조 조직률이 낮고 보상 체계를 주식 중심으로 운영해 노사 리스크에서 자유롭다. 근속 조건부 주식 보상(RSU) 등을 통해 임직원과 주주의 이익을 일치시켜 장기 성장의 동기를 부여한다.
마이크론이나 퀄컴 등은 성과급에 명확한 상한을 두거나 개인별 성과를 주가와 연동해 다른 주주와 이익을 공유한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현금 유출을 줄이면서도 임직원이 회사의 성장에 집중하게 만드는 글로벌 표준적 보상 체계다.
산업계에서는 AI 서버 투자 확대와 HBM 수요 폭증으로 메모리 시장이 공급자 우위에 진입한 시점에 삼성전자의 생산 차질은 더욱 치명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공멸의 길로 들어선다면 이번 사태의 진정한 승자는 한국 반도체를 추격하는 경쟁사들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는 11일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우려의 뜻을 표명했다. 국내 최대 외국 상의가 특정 기업 노사 문제를 놓고 입장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암참은 약 800개 회원사를 둔 국내 최대 외국 상공회의소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애플, 아마존, 오라클, 퀄컴 등 빅테크 기업이 포함돼 있다.
암참은 “삼성전자의 생산 차질은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 현상과 가격 변동성을 확대할 것”이라며 “불확실성이 확대될 경우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이 더욱 빨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경고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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