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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탄신 120주년…‘문화보국’의 현장을 다시 보다

아시아투데이|전혜원|2026.05.12

일본 거상과 경합 끝에 낙찰 받은 백자<YONHAP NO-4802>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유산이 유출되던 경매 현장은 한 수장가에게 '전장'이었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일본인 수장가들과 맞서 유물을 지켜낸 치열한 기록이 전시로 되살아났다.

간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봄 특별전 '문화보국(文化保國):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은 간송 탄신 120주년을 맞아 그의 수집 활동과 문화유산 수호의 궤적을 집중 조명한다.

전시의 출발점은 1922년 설립된 '경성미술구락부'다. 일본인 중심으로 운영된 이 경매장은 조선 문화재가 국외로 빠져나가던 주요 통로였다. 해방 전까지 260여 차례 경매가 열리며 유출 규모도 급격히 늘었다. 간송은 이곳에서 1930년부터 1944년까지 약 14년간 경합을 벌이며 350여 건의 유물을 확보했다. '약탈의 통로'를 '수호의 현장'으로 바꾼 셈이다.

이번 전시는 당시 경매 도록을 바탕으로 간송의 낙찰 이력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전시장에는 그가 직접 연필로 가격을 기록한 도록도 공개돼, 숫자 뒤에 숨은 판단과 결단의 순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2. 심사정-계산행려 ⓒ 간송미술문화재단
출품작은 국보와 보물을 포함해 36건 46점. 중심에는 국보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 있다. 청화·철화·동화 세 가지 안료를 한 작품에 구현한 보기 드문 사례로, 조선 도자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간송은 1936년 일본 상인과의 경쟁 끝에 당시 최고가인 1만4580원, 기와집 15채 값에 이 작품을 낙찰받았다.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값비싼 선택'이었다.

회화 부문에서는 조선 전 시기를 아우르는 간송의 수집 안목이 드러난다. 김명국의 '비급전관', 장승업의 '팔준도' 일부, 심사정과 강세황의 합벽첩 '표현연화첩' 등이 소개된다. 특정 작가가 아닌 시대 전체를 포괄하려 했던 통사적 수집 의지가 읽힌다.

추사 김정희와 추사학파 작품도 주요 축이다. 보물 '침계'를 비롯해 이하응의 '석파묵란첩', 전기의 '고람유묵' 등이 함께 전시돼 19세기 동아시아 문인 네트워크와 서화 흐름을 보여준다. 특히 '침계'는 예서와 해서가 결합된 추사체의 정수를 담은 작품으로, 간송이 경매를 통해 확보한 대표적 명품이다.

8. 김정희-침계 ⓒ 간송미술문화재단
전시는 한국전쟁 이후의 '재입수' 기록으로 이어진다. 전쟁 중 흩어진 유물을 다시 찾기 위한 간송의 노력은 이용림의 '서당아집도', '미사묵연' 화첩 등으로 확인된다. 문화유산을 개인 소유가 아닌 '민족의 자산'으로 보았던 그의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전시장 밖에서도 변화가 있다. 보화각 앞에 놓였던 17세기 중국 석사자상이 6월 고향으로 돌아가고, 그 자리를 경성미술구락부에서 들여온 석호상 한 쌍이 대신한다. 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려보내려는 간송의 뜻을 계승한 조치다.

전영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문화유산은 누군가 귀하게 여기고 지키려는 의지가 있을 때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은 "작품 뒤에 담긴 치열한 수집의 역사와 문화유산 수호의 의미를 관람객과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14일까지.

15. 석호상 ⓒ 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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