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로...기업 미술관의 변신
||2026.05.10
||2026.05.10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기업 미술관이 사회공헌 비용에서 수익 플랫폼으로 달라지고 있다. 한화가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손잡고 입장료와 멤버십 수익모델을 전면에 내세웠다. 앞서 삼성, 롯데, 포스코에 이어 한화까지 기업 미술관이 ESG 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재정의되면서 새로운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화가 오는 6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퐁피두센터 한화를 개관한다. 성인 입장료 2만8000원에 연회비 10만~30만원의 멤버십 모델을 함께 공개했다. 이같은 변화에 그동안 사회공헌 비용으로 분류되던 기업 미술관이 ESG 경영 자산이자 수익 모델로 재정의되는 시작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환하는 퐁피두센터 한화를 통해 관람 이상의 복합 공간을 지향한다. 개관전은 퐁피두센터 소장품을 중심으로 큐비즘을 조망하는 기획전으로 열린다. 아울러 63빌딩 지하 식음료·쇼핑 공간 리모델링, 전망대 재개장도 함께 예정됐다. 한화문화재단 관계자는 "전시 관람을 넘어 휴식과 체험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미술관 모델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미술관을 사회공헌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삼성문화재단은 2021년 기준 사업수행비용 361억원 중 95%에 달하는 343억원을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운영에 투입했다. 자산 규모 약 2조1971억원의 국내 최대 문화재단이 컬렉션과 공간으로 문화 인프라를 사회에 내놓는 방식을 선택했다. 기부나 장학사업과 달리 시설이 남고, 컬렉션이 쌓이며, 지역 문화 거점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도 지속 가능한 사회공헌 모델이었다. 이 같은 접근은 이후 다른 기업들의 미술관 전략에도 기준점이 됐다.
이 기조는 2010년대 들어 브랜드 전략과 맞물리기 시작했다. 롯데뮤지엄은 2018년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문을 열며 백화점·식당가와 동선을 엮었다. 팝아트 거장 케니 샤프 전시를 아시아 최대 규모로 유치하고 QR코드, 체험형 작품 등 전시 기법을 바꾸며 대중성을 앞세웠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창업주부터 이어온 도자기·병풍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내세웠고 이를 브랜드 정체성과 연결하는 전시 전략을 구사했다. 미술관이 기업 이미지를 구성하는 콘텐츠 자산으로 활용했다.
포스코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지난 2018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사시에 '문화보국'을 추가하고 포스코센터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단장했다. 철강 B2B 기업의 이미지를 미술관을 활용해 외부 이미지를 바꾸는 경영 수단으로 진화한 셈이다. 한국메세나협회에 따르면 기업들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동기로 지역 사회공헌이 33.8%로 1위였고, 기업 이미지 제고가 19.5%로 뒤를 이었다. 사회공헌에서 브랜드 전략으로, 이제는 ESG의 S 항목을 채우는 수단으로 기업 미술관의 역할이 변화했다.
◆컬렉션 쌓는 대신 퐁피두 빌렸다…한화의 새 ESG 계산법
기업 미술관 투자의 파급효과를 수치로 보여준 사례는 이건희 컬렉션이다. 삼성가 유족들은 2021년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한 2만3000여점의 미술품을 사회에 환원했다. 미술계 추산 최대 10조원 규모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순회전을 35회 개최했고, 누적 관람객은 350만명을 기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5년 연간 관람객 650만7483명으로 루브르, 바티칸 박물관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해외 순회전은 최근 5년간 특별전 중 최다 관람객을 모았고, 현재는 미국 시카고미술관에서 전시가 진행 중이며 올해 10월 영국박물관으로 이어진다. 상속세 12조원 완납, 감염병전문병원 건립을 위한 7000억원 출연과 맞물려 기업의 사회 환원이 문화·외교·관광 전반의 파급으로 연결됐다는 평가다. 미술품 기증 하나가 국립중앙박물관을 세계 3위 관람지로 끌어올린 구조가 기업 미술관 투자의 비재무적 효과를 숫자로 보여줬다.
삼성문화재단은 2022년 ESG 보고서를 처음 발간하며 미술관 운영을 ESG 핵심 지표로 공식화했다. ESG 위원회와 미술관 운영위원회를 통해 의사결정 구조를 제도화하면서, 미술관이 거버넌스 항목에서도 측정 가능한 자산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은 단순한 문화 지출이 ESG 성과 지표로 전환되는 이 과정에서 분기점이 됐다.
이같은 흐름에서 한화는 새로운 방식을 꺼내들었다. 직접 컬렉션을 구축하는 대신 세계적 문화 IP를 유치해 브랜드 가치를 흡수하는 전략이다. ESG의 S 항목 비중이 높아지면서 미술관이 비용이 아닌 전략 자산으로 재분류되면서 컬렉션 규모 경쟁에서 글로벌 브랜드 제휴로 전환하는 식이다. 퐁피두센터 한화가 입장료와 멤버십 수익으로 운영 비용을 충당하면서 공공성도 함께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IP를 끌어오는 방식이 기업의 새로운 ESG 문법이 될 수 있을지 봐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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