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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고위험 AI 규제 2027년 말로 연기…디지털 자립 전략 차질

디지털투데이|홍진주 기자|2026.05.08

EU는 규제를 늦추고 예외를 넓히는 한편, 딥페이크와 AI 표시 의무는 강화했다 [사진: 셔터스톡]
EU는 규제를 늦추고 예외를 넓히는 한편, 딥페이크와 AI 표시 의무는 강화했다 [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홍진주 기자] 유럽연합(EU)이 고위험 인공지능(AI) 규제 시행을 2027년 말로 늦추기로 하면서 유럽의 디지털 자립 전략이 한발 물러섰다. 

7일(현지시간) 크립토폴리탄에 따르면, 이번 조정은 유럽 내 AI 기업의 경쟁 부담을 낮추려는 취지로 추진됐지만 미국 빅테크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함께 나오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생체 식별, 핵심 인프라, 법 집행에 쓰이는 고위험 AI 시스템 규제 일정이다. 당초 올해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시행 시점이 2027년 말로 밀렸다. 기계 제조업체 등 일부 산업은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예외 적용을 받는다. 기존 산업 규제로 이미 관리되는 장비는 AI법 적용 범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EU 집행위원회는 기업들이 중복 규제와 추가 행정 부담을 문제 삼자 이런 조정을 반영했다.

유럽 기업들은 그동안 새 규제가 혁신 속도를 떨어뜨린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이번 합의는 유럽 기업이 미국 경쟁사와 맞설 시간을 벌어주는 방향으로 짜였다. 다만 정책 결정 과정이 빅테크 기업 입장에 지나치게 기울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번 합의는 아직 최종 확정 단계는 아니며, 국가 대표와 유럽의회 의원들 간 협상이 길어지면서 도출된 잠정 합의로 공식 승인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규제가 모두 완화된 것은 아니다. EU는 동의 없이 특정인의 성적으로 노골적인 이미지를 생성하는 AI 도구를 금지하기로 했다. 또 올해 12월부터 AI가 만든 콘텐츠에는 눈에 띄는 워터마크나 라벨을 붙여야 한다. 네덜란드 출신 유럽의회 의원 킴 판 스파렌탁은 음란 딥페이크 금지 조치가 생성형 AI의 유해한 활용으로부터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규제 조정은 유럽 AI 업계에 민감한 시점과 맞물렸다. 독일 쾰른에 본사를 둔 번역 AI 기업 딥엘(DeepL)은 최근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협력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유럽이 기계번역 분야 경쟁력을 미국 클라우드 기업에 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딥엘은 정확도 평가에서 구글 번역을 꾸준히 앞선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와 법원, 미국 포천 500대 기업의 절반이 이 회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억8520만달러였다. 지난달에는 실시간 음성 대 음성 번역 기능도 내놨다. 하지만 유료 고객들에게는 앞으로 자사 서버에서만 데이터를 처리하지 않겠다고 공지했다. 딥엘은 국제 확장을 위해 AWS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데이터 통제 문제를 다시 끌어올렸다. 포르투갈 마데이라의 소프트웨어 기업 말로지카 그룹을 운영하는 외르크 바이스하우프트는 AWS 발표 이후 딥엘 사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는 "계약서나 내부 전략 문서를 더는 안심하고 올릴 수 없다"며 "이건 기밀 문서이고, 결국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딥엘은 아마존이 고객 데이터를 보거나 활용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회사 측은 고객 정보가 암호화되며 AI 모델 학습에도 사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이스하우프트는 2001년 제정된 미국 애국법과 2018년 클라우드법을 거론하며, 미국 정부가 클라우드 사업자에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7월 마이크로소프트(MS)의 한 법무 책임자는 프랑스 청문회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MS 서버 내 정보 접근을 요구할 경우 EU 고객 데이터 보호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딥엘은 데이터가 유럽 내에 머무른다고 약속하는 데이터 레지던시 옵션을 제공하고 있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이런 약속만으로 충분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이번 EU의 규제 조정과 딥엘의 인프라 선택은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유럽이 자국 AI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규제를 늦추고 유연성을 높이고 있지만, 핵심 인프라와 데이터 통제에서는 여전히 미국 기술 기업 의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식 승인 절차와 기업들의 실제 대응이 앞으로 유럽 AI 정책의 방향을 가를 변수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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