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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성과급 갈등’ 너머 '신뢰의 위기'로…길 잃은 삼성 노사

전자신문|김시소|2026.05.05

노조 영업이익 15%·상한제 폐지 요구
SK하이닉스發 보상 격차가 갈등 불씨

영업이익 단순 배분땐 미래 재원 부족
인재 유출 우려…선제적 대화 나서야

사측, 성과급 원칙 더불어 청사진 공개
첫 과반 노조와 새로운 관계 성립 필요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예고일(21일)이 코 앞에 다가왔다. 노조는 성과급 상한제 폐지과 영업이익 15% 배분을 요구하고, 사측은 자본·R&D 중심의 투자 우선 원칙을 고수한다. 표면적으로는 성과급을 둘러싼 분쟁이지만, 전문가들은 갈등의 본질을 '신뢰의 위기'로 진단했다.

한국 수출 약 35%를 차지하는 전략 자산인 반도체를 둘러싼 노사 충돌은 이제 단순한 기업 내부 갈등을 넘어 국가 경제 전체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 전자신문은 경제·산업 분야 전문가 5인에게 삼성전자 노사 갈등의 구조적 원인과 해법을 질문했다.

(왼쪽부터)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 권오경 한양대 석좌교수(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이종호 서울대 교수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 김기승 부산대 교수
(왼쪽부터)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 권오경 한양대 석좌교수(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이종호 서울대 교수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 김기승 부산대 교수

◆30조원 손실 공포에 흔들리는 반도체 생태계

노조가 경고한 최대 30조원 손실. 전문가들은 이 수치를 현실적 추정으로 받아들였다. 단순 매출 손실이 아니라, 반도체 공정 특수성을 따지면 파업이 한국 산업에 구조적으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다.

반도체 생산 핵심 특성이 손실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린다. 반도체 공정은 24시간 연속 가동을 전제로 설계된다. 반도체 공급망은 수백 개 협력사로 이어진 복잡한 생태계다.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 가동이 중단되면 웨이퍼 공급사부터 특수가스 공급업체, 장비 유지보수 업체까지 모두 멈출 수 밖에 없다.

권오경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좌교수는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을 할 경우 협력사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전체 경제적 손실은 30조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부교수도 “단기적 영업 손실은 노조가 경고한 (약 30조원)이 합리적 추정”이라고 평했다.

이희범 전 산업부 장관은 “반도체는 24시간 공정으로, 중간에 기계 설비를 세우고 다시 가동하면 엄청난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라인을 멈추는 순간 진행 중인 웨이퍼는 폐기될 수밖에 없고, 재가동 이후 수율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산 손실에 불량 처리 비용, 납기 지연에 따른 위약금과 신뢰도 하락까지 더해지면 손실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기여도 무시한 균등 배분, '깜깜이 성과급'이 불신 키워

삼성전자 노사 갈등 도화선은 성과급이지만, 뿌리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전문가들은 성과급을 결정하는 기준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구조적 문제를 갈등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다. '깜깜이 성과급' 논란이 불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 15% 배분과 사측의 자본·R&D 중심 성과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분배율 싸움처럼 보이지만,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를 다층적으로 해석했다.

김 교수는 “노조의 15% 요구는 SK하이닉스 영업이익 10% 연동 계약을 넘어서기 위한 협상 전략으로 봐야 한다”며 “올해 상한 캡을 털어내고 내년부터 10년 보장을 문서화하겠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SK하이닉스 노사 합의는 HBM이 이렇게 급성장할 것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진 결정이었다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호기에 투자 재원 확충이 필요하다”는 삼성전자 사측 논리는 일리가 있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 의견이었다. 반도체는 기술 발전 속도상 자본과 장비에 대한 대규모 선행 투자가 불가피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노광장비 같은 초고가 장비 도입 비용은 이미 예측·집행된 상태”라며 “경제적 부가가치(EVA) 기준없이 영업이익을 단순 배분하면 연구개발·배당·성과급 등 세 가지를 동시에 충당할 재원이 부족해진다”고 설명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EUV 장비 투자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영업이익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기업의 장기적·지속적 투자 역량을 훼손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장관)는 “1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1000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할 드문 일”이라며 “임직원 노력이 분명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특수에 따른 블랙홀 수준 수요가 일등공신이라는 분석이다. 산업 수요와 더불어 퇴직자, 협력업체, 주주의 기여도가 모두 작용한 결과를 어떻게 분배할지 진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전문가들은 갈등의 근본 원인을 한국 기업 문화 구조 문제에서 찾았다. 권 교수는 “국내 산업계 성과급에 대한 설정이 처음부터 잘못돼 있다”고 진단했다. 성과급은 각 직원 성과에 따라 다르게 지급돼야 하고, 개인마다 최고 성과급의 상한선이 설정돼야 했는데, 이에 대한 준비 없이 성과급 제도가 운용됐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대부분 기업들은 어느 부서에 소속돼 있느냐에 따라 모든 직원에게 같은 요율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지적했다. “노조 요구에 대한 비판 포인트는 노조원에게 성과급이 균등 배분된다는 가정에 있다”며 “근로자마다 기여도가 다를 텐데 모두 같은 금액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정당한 이익 공유가 되려면 노조원 간에도 기여에 따른 차등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개별 기업 문제가 아니라 국민경제 문제”라고 강조했다. 과도한 임금 인상 기대가 전 분야로 번지면 지불 능력을 초과한 기대 심리가 모든 산업의 임금 인상 압력으로 확산되고, 결국 피해는 서민에게 돌아간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실무적 해법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성과급 기준 원칙 공개다. 송 교수는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성과급 배분 기준 원칙을 공개하고 노조와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다만, 성과급 상한 캡은 유지하는 것이 맞으며, 캡을 없애려면 기업이 어려울 때 성과급을 환수할 수 있는 장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둘째, 개인 성과 평가 체계 구축이다. 권 교수는 “직원의 성과 평가에 의거해 성과급을 지급하되 연봉의 5~10배 이하로 지급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개인별 최대 성과급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며, 개인별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돼야 한다는 원칙이 핵심이라는 강조다.

셋째, 글로벌 스탠다드에 기반한 비교 기준 설정이다. 김 교수는 “메모리 산업군으로 비교집단을 설정하고 주주총회에서 결정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제안했다. TSMC의 경우 노조가 없어 이사회가 결정하지만 실제로 주주총회에서 13%를 결정한 선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삼성전자가 수출 20~25%를 차지하는 국민기업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먼저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주최한 제27회 반도체대전이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사흘 일정으로 열렸다. 삼성전자 부스에서 관람객이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HBM4'를 살펴보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2026.10.22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주최한 제27회 반도체대전이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사흘 일정으로 열렸다. 삼성전자 부스에서 관람객이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HBM4'를 살펴보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2026.10.22

◆과반 노조 탄생…협의·선제적 대화만이 살 길

과반 노조 탄생은 삼성전자 노사 관계사에 전례없는 분기점이다. 수십 년간 무노조 원칙을 고수해온 삼성전자에서 과반 노조가 결성됐다는 자체가 이미 역사적 전환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무노조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권 교수는 “노사가 많은 사안에 대해서 협의를 해야 하는 시절이 됐다”고 단언했다. 인공지능(AI)과 인간과 유사한 로봇의 출현으로 급변하는 사회가 도래하면서 보다 많은 첨예한 갈등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회사가 더욱 적극적으로 노조와 선제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노사간 이해충돌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삼성전자 경영진도 노조에게 향후 기업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함께 발전하고 과실을 나누자는 구체적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노조가 결성된 만큼 무노조 경영과는 다른 환경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관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노조 책임도 분명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 교수는 현재 노사관계를 “감정 논리에 치우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노총·민노총 시절에는 그나마 상생과 연대, 이중구조 해소라는 담론이 존재했지만, 지금의 노사관계에는 그런 큰 그림이 없다는 것이다. 사측이 연봉 600%, 1인당 평균 5억4000만원이라는 파격적 제안을 내놓았음에도 노조가 이를 거부하고 파업을 강행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노조는 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일시적 성과급보다 안정적이고 장기 이득을 찾을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 노사 선택이 한국 노사관계 전체에 미칠 파급력을 경계했다. “삼성전자가 노조에 밀려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계열사를 거쳐 전 산업으로 확산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란봉투법 논의까지 가세하면 비정규직 문제로도 번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삼성전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한국 노사관계 전체 향방을 가른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최근 박용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총리급)이 삼성전자 노조 파업 예고에 대해 “노동절을 지내며 노동조합에 '노동자연대 정신'을 생각해보시길 요구한다”고 말했다. 박 부위원장은 소셜미디어에 “삼성전자의 천문학적 영업이익에 여러 관계 회사와 노동자들의 기여가 있지 않느냐”며 “왜 여러분의 협상 테이블에는 삼성전자가 엄청난 성과를 만드는 과정에 함께한 협력업체, 하청업체, 사내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는 없느냐”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발 보상 격차가 불씨, 핵심 인재 이탈 우려는 '온도차'

삼성전자 노사 갈등 기폭제 중 하나는 SK하이닉스와 보상 격차다. HBM 초호황으로 대규모 성과급을 수령한 SK하이닉스 직원들과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의 보상 차이는 삼성전자 내부에 깊은 상대적 박탈감을 심었다.

권 교수는 “파업의 불씨는 SK하이닉스가 최대 성과급에 대한 제한없이 너무나 많은 성과급을 주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라고 지목했다.

SK하이닉스 노사가 지난해 '영업이익 10%', '상한 없는 성과급'을 골자로 10년 합의에 서명했을 당시 HBM이 이렇게 급성장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업계 전체에 보상 경쟁의 불씨를 지핀 셈이라는 것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성과급 상한 캡을 설정하지 않은 결정이 개별 기업 문제를 넘어 업계 전체 갈등 구조를 심화시켰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성과급 요구 핵심으로 내세우는 '인재 유출 리스크'에 대해서는 전문가 간 온도차가 있다. 하지만, 파업의 이유는 될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권 교수는 “파업이 장기화되면 일부 핵심 인력들이 이탈할 가능성은 있으나, 삼성전자 대책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반면, 송 교수는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파업이 장기화하면 핵심 인재들이 당연히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으로 이직 러시가 이어질 것”이라며 “해외 기업으로 이직하면 국가적 기술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도체 설계와 공정 핵심 인력 해외 유출은 단순히 특정 기업 손실이 아니라 국가 기술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이다.

송 교수는 SK하이닉스와 보상 격차를 파업의 정당한 이유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SK하이닉스 보상이 좋으면 그곳으로 이직하면 된다”며 “파업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처우가 불만이라면 노동시장 기능을 활용하면 될 뿐, 집단적 파업은 다른 차원 행위라는 논리다.

삼성전자 노사 양측 주장 개요
삼성전자 노사 양측 주장 개요

김시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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