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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수의 특이점(Singularity) 시대]〈9〉호르무즈 해협 그리고 경제무기화

전자신문|전자신문|2026.05.05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중동 전쟁 이후 전 세계인의 눈이 호르무즈 해협에 고정돼 있다. 매일 약 2100만배럴, 즉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5분의 1이 이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계 LNG 소비량의 약 20% 이상, 질소 비료의 20~30%, 헬륨 생산량의 약 30~35% 역시 호르무즈를 통과한다. 비료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헬륨 역시 반도체 및 의료기기 제조의 핵심 물질이다. 이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을 세계 경제 목줄의 왕(Mother of All Chokepoints)이라고 부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일본, 중국이 이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에 대한 의존도는 70~80%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더 위협적인 점은 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이나 파나마 운하와 달리 호르무즈는 폐쇄될 경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육상 파이프라인이나 우회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지정학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를 놓고 이란과 미국 간의 공방이 치열하다.

이란은 자국이 가진 거의 유일한 우월적 전력인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활용해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하고 있다. 이란의 의도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통해 글로벌 유가 상승, 구체적으로는 미국 내 석유 가격의 급등을 야기해 트럼프 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을 높이는 데 있다. 반대로 미국은 이란으로 들어가는 물자의 봉쇄를 통해 이란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려고 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쟁의 양상이 세계 경제의 목줄을 쥐었다 놓았다 하고 있는 형국이다. 전쟁 발발 이후 거의 실시간으로 호르무즈 관련 뉴스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고 이제는 해협 초입에 있는 아부마사, 대툰브, 소툰브라는 작은 섬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이처럼 전쟁 과정에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우위가 무기로 동원된 역사는 기원전 430년경 그리스와 스파르타 패권 경쟁으로 유명한 펠로폰네소스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의 편이었던 메가라가 배신하자 아테네는 모든 아테네와 아테네 동맹 도시 내에서 메가라인의 상업 행위를 금지하는 이른바 메가라 법령을 통해 경제 봉쇄를 단행했다.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의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포괄적인 상호 관세 부과처럼 자국 시장 접근권을 무기로 활용한 것이다. 이 조치로 경제가 크게 위축된 메가라는 스파르타에 도움을 요청했고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이 조치를 풀 것을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이 사태는 다른 이유와 함께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불러오는 하나의 이유로 비화하게 된다.

경제무기화는 역사상 등장했던 제국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한 수단이었다. 제국들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자국 시장 접근권을 무기로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망을 통제하고 금융 네트워크를 지배하면서 경제 통제를 통해 적국을 제압해 왔다. 과거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마지막 남은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영국과의 교역을 금지하는 대륙봉쇄령을 단행한 바 있다. 또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독일을 굴복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해상 봉쇄를 단행한 바 있다. 이 봉쇄 조치로 인해 독일 국민들은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한 '순무의 겨울'(Steckrubenwinter)을 보내야 했다. 최근 글로벌 달러 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에서 북한, 이란 등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미국의 달러 무기화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경제무기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베를린 시민들. 1918년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베를린 시민들. 1918년

하지만 제국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무기화는 상대방은 물론 자신까지 위협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라는 점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먼저 경제무기화의 경우 경제의 상호 의존성을 파괴하는 전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서 보더라도 심지어 글로벌 제재하에 있던 이란과의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촘촘히 연결된 현대 경제에서 특정 고리를 끊는 것은 돌고 돌아 결국 자국 경제에도 해가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전쟁 중 카타르 천연가스 시설의 파괴는 질소 비료 및 헬륨가스 생산과 공급 차질을 일으켜 미국 농민들이나 데이터센터를 필요로 하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상대국 못지않게 미국인들이라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현재 미국 경제가 높은 물가 수준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가 가져온 부메랑인 측면이 적지 않다.

또 경제무기화의 경우 단기적으로 상대의 항복을 받아 내는 강력한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상대가 제재를 우회하는 수단을 모색하게 만들어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를 영원히 상실할 위험마저 존재한다.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에 대응해서 영국은 남미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무역로를 다변화했고 오히려 봉쇄령에 불만을 품은 유럽 국가들이 나폴레옹에게 등을 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우월적 경제적 지위를 자주 무기화할 경우 상대국으로 하여금 이를 무력화할 영원한 우회로를 모색할 계기를 만들어 주어 결국 그 우위를 상실할 위험도 있다.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막강한 경제력을 잦은 전쟁으로 소진하고 금융을 전쟁의 도구로 활용하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섰고 결국 글로벌 기축통화였던 파운드화는 그 지위를 달러에 내주었다. 역사적 경험을 감안할 때 현재 미국의 달러 무기화에 반발해서 중국 등이 추진하고 있는 대체 결제 시스템의 개발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이 유로클리어라는 지급 결제망을 통해 유럽 내에 있는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자금을 동결하자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향후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유로화 채권, 미국 국채, 유로화, 달러 대신 금으로 외환보유액을 대체하면서 만일에 대비하고 있다. 최근 금값 급등 현상의 이면에는 중앙은행들의 매집이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설사 자신의 경제적인 우위를 무기화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대응 전략을 사전에 충분히 파악해야만 성공 가능성이 높다. 특히 무기화의 남발로 장기적으로 경제적 우위를 상실할 위험을 피하고 무엇보다 자신에게도 피해가 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출구 전략(Exit Strategy) 역시 사전에 마련돼 있어야 한다. 한번 시작된 경제 전쟁은 쉽게 멈추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가 어떤 조건을 충족했을 때 제재를 풀 것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영구적인 적대 관계만 남을 가능성이 높고 자신들에게 피해가 누적되는 것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차 대전 당시 식량의 25% 정도를 수입에 의존했다가 영국의 봉쇄로 가축 사료였던 순무로 끼니를 이었던 독일인들은 이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나치의 레벤스라움(생활권) 주장을 지지하게 된다. 결국 봉쇄가 영국에 대한 적개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바이마르공화국하의 독일 경제의 극도의 혼란과 나치의 부상을 가져와 또 다른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이처럼 국가 간의 경제 전쟁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경제무기화를 동원한 국가나 상대방이 되는 국가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가 누적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경제를 무기로 동원할 경우 그 부작용이 장기간에 걸쳐 깊게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전쟁 전처럼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항행이 원활하게 복구된다고 하더라도 전쟁으로 인해 공급에 차질이 있었던 질소 비료의 부족으로 농작물 생산에 악영향을 준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연말로 갈수록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이른바 애그플레이션의 고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양날의 칼인 경제무기화가 글로벌 정치경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과거 비용 절감과 효율성이 중시되는 세계화 흐름이 퇴조하고 이제는 안보와 회복력이 경제 정책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특정 국가, 특히 지정학적 라이벌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국가 생존의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가장 싼 물건을 수입하는 시대가 아니라, 가장 안전한 우방국으로부터 물건을 가져오는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나아가 글로벌 리더 국가를 중심으로 경제무기화와 더불어 국가가 핵심 전략 산업, 즉 반도체와 에너지 등에 직접 개입하고 보호하는 산업 정책을 우선하면서 지구온난화 방지 등 글로벌 규범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자국 우선주의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성공에 일조했던 글로벌 질서가 퇴조한 지금,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무기화의 주요 역사 사례
경제무기화의 주요 역사 사례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yoojs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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