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넘어 식단·운동까지…‘클린걸’의 진짜 확장 [D:이슈]
||2026.05.05
||2026.05.05
BB·CC크림부터 프로틴음료·레깅스까지 동반 성장…자연스러움처럼 보이지만 고비용 자기관리 전략?
‘클린걸’(Cleangirl)은 이제 투명한 화장법만을 뜻하지 않는다. 맑은 피부와 단정한 헤어, 뉴트럴 톤 스타일에서 출발한 이 트렌드는 식단 관리와 운동 루틴, 건강한 생활습관까지 포함한 자기관리형 이미지로 확장되고 있다. 예쁘게 보이는 것을 넘어 건강하게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몸을 꾸준히 관리하는 태도 자체가 하나의 미감으로 소비되는 분위기다.

클린걸은 2021년 말 틱톡을 중심으로 등장해 2022년 패션·뷰티 영역에서 본격 확산한 트렌드다. 초기에는 인위적인 색조를 덜어낸 투명한 피부 표현, 뒤로 깔끔하게 넘겨 묶은 ‘슬릭 번’ 헤어, 정돈된 눈썹, 립글로스, 골드 액세서리, 뉴트럴 톤 의상 등이 대표 요소로 꼽혔다. 겉으로는 힘을 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피부와 헤어, 몸 상태까지 꾸준히 관리된 상태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관리된 자연스러움으로 볼 수 있다.
5일 CJ올리브영에 따르면 올해 1분기 BB·CC크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7% 성장했고, ‘파데프리’ 관련 키워드 검색량도 33% 늘었다. 두꺼운 파운데이션이나 높은 커버력보다 피부 결을 살리면서 붉은기와 잡티를 자연스럽게 보정하는 제품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BB크림과 CC크림은 본래 피부 진정과 보정 기능을 동시에 내세운 제품군이다. 최근에는 클린걸 트렌드와 맞물려 ‘가볍지만 정돈된 피부 표현’을 원하는 소비자 수요를 다시 흡수하고 있다. 완벽하게 덮어 가리는 베이스보다, 본래 피부 컨디션이 좋아 보이도록 최소한의 보정만 더하는 방식이 선호되는 흐름이다.
눈에 띄는 건 이 소비가 뷰티 제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올리브영의 스포츠·프로틴음료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4% 증가했다. 웰니스 트렌드와 맞물려 올리브오일 매출도 전년 하반기 대비 20배 이상 뛰었다. 맑은 피부와 단정한 헤어에서 출발한 클린걸 이미지가 단백질 섭취, 건강한 식단, 몸 관리까지 포함한 생활습관의 문제로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을 선호하는 클린걸 트렌드와 함께 단백질 셰이크 등 건강한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함께 찾는 흐름이 뚜렷하다”며 “이제 소비자들은 뷰티와 웰니스를 별개의 영역이 아닌, 하나의 통합된 큐레이션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감지된다.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지그재그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와이드 팬츠 판매량은 2021년 대비 313% 증가했다. 편안하지만 정돈된 실루엣이 일상복의 기본값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동시에 부츠컷과 카프리 팬츠도 상위권을 재편했고, 허리선을 낮춰 복근과 허리 라인을 드러내는 로우라이즈 판매량은 2년 새 576% 증가했다.
이는 단순히 편한 옷을 찾는 흐름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몸을 조이지 않는 와이드 팬츠, 부츠컷 트레이닝, 스커트 레깅스, 크롭 집업 등은 편안함을 앞세우면서도 운동으로 관리된 몸의 실루엣을 은근히 드러낸다. 클린걸이 ‘자연스럽게 예쁜 얼굴’에서 ‘꾸준히 관리하는 사람’의 이미지로 확장되면서, 패션 역시 편안함과 자기관리의 이미지를 동시에 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신사 데이터에서도 이 흐름은 확인된다. 올해 1~3월 무신사 내 레깅스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90%, 요가·필라테스 용품 거래액은 50% 증가했다. 무신사 관계자는 “본연의 피부 결을 살린 뷰티 트렌드가 패션으로 확산되면서 일상에서도 즐길 수 있는 애슬레저 웨어를 찾는 고객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브랜드 로고보다 자신의 체형에 맞는 ‘인생 핏’과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단 역시 클린걸 이미지의 일부가 됐다. 해시태그 클린걸로 검색하면 약 150만건 정도가 나오는 틱톡 등 SNS에서는 말차, 프로틴음료, 샐러드, 저당 간식, 올리브오일, 단백질 식품 등이 ‘클린한 루틴’으로 함께 소비된다. 이전의 클린걸이 맑은 피부와 단정한 헤어로 설명됐다면, 지금은 아침 운동과 단백질 식단, 수면 루틴, 붓기 관리까지 포함한 생활 전반의 미감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런 자기관리형 트렌드를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건강한 식단과 운동, 규칙적인 생활이 권장되는 수준을 넘어 늘 관리된 몸과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린걸은 겉으로는 무해한 자연스러움을 내세우지만, 그 자연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 자기 통제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강박이 될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클린걸은 무해한 자연스러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고비용의 마케팅이자 고도의 차별화 전략”이라며 “과거의 화려한 패션이 소품이나 기술로 어느 정도 보완 가능했다면, 클린걸의 핵심인 건강한 피부와 탄탄한 몸매는 타고난 요인에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투입돼야 완성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나는 꾸미지 않아도 이 정도다’라는 식의 내추럴함을 강조하는 것은 타인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선을 그음으로써 자신만의 우월감을 꾀하려는 배타적 차별화 전략”이라며 “자연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옷을 사는 것 이상의 비용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는 점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자본주의 사회 특유의 치열한 경쟁 논리가 ‘건강한 모습’이라는 가면을 쓰고 새로운 형태의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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