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더 이상 시장이 아니다, 공급망의 판이 바뀌고 있다 [박지민의 중국과 미래]

IT조선|박지민 36Kr KOREA 대표|2026.04.30

다이캐스팅·프레스·사출·압출·조립, 공정 전쟁이 시작됐다.

한국은 처음으로 중국과의 무역에서 졌다. 2023년, 통관 기준 사상 처음으로 대중국 무역적자가 발생했고 2024년에도 이 구조는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변화다. 더 이상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를 공급하고, 중국은 이를 가공해 수출하는 구조가 아니다. 양국 제조업은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같은 공정을 놓고 충돌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정리한 한중 무역 흐름을 보면 이 변화는 더욱 분명해진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1년 전후까지 한국의 대중 수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한국은 반도체, 화학, 기계 등 핵심 중간재 공급국으로 자리 잡았고, 대중 수출은 약 1600억 달러 수준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2012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수출은 정체되거나 감소했고, 수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중국이 기술을 내재화하고 국산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2019년 이후에는 구조적 전환이 본격화됐다. 대중 수출 비중은 2022년 22.8%에서 2023년 19.7%, 2024년 19.5%, 2025년 9월 기준 18.1%까지 하락했다. 반면 수입 비중은 20% 초반대를 유지하며 오히려 높아졌다. 수출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중국이 더 이상 한국의 중간재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중국의 전정특신(专精特新)과 전정특신 소거인(专精特新小巨人) 기업이 있다. 전정특신은 전문화·정밀화·특색화·신기술 중심의 중소기업을 의미한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이노비즈 기업과 유사하다. 전정특신 소거인은 특정 산업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형 강소기업으로, 월드클래스 기업 또는 기술 중심 코스닥 기업과 비교할 수 있다. 다만 차이는 명확하다. 중국은 이들을 단순 인증이 아니라 산업 전략의 핵심 실행 단위로 활용하고 있다.

이 기업들이 집중된 영역이 바로 다이캐스팅, 프레스, 사출성형, 압출, 조립이다. 이 다섯 공정은 전기차, 배터리, 전장, 로봇, 디스플레이 산업의 기반이다. 과거에는 하위 공정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완성품의 원가, 무게, 생산 속도,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 경쟁력이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다이캐스팅에서 나타난다. 과거 자동차는 수십 개의 금속 부품을 프레스, 용접, 체결 방식으로 조립했다. 그러나 전기차 시대에는 대형 알루미늄 다이캐스팅을 통해 차체 구조물, 배터리 트레이, 모터 하우징을 한 번에 생산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공정 수를 줄이고, 비용을 낮추며, 차량을 경량화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이즈미(伊之密), 리진커지(力劲科技), 원찬구펀(文灿股份), 광둥훙투(广东鸿图), 쉬성구펀(旭升股份), 아이커디(爱柯迪)와 같은 기업들이 부상하고 있다. 이즈미와 리진커지는 초대형 다이캐스팅 장비와 성형 장비를 중심으로 제조공정 자체를 바꾸는 장비형 기업이다. 원찬구펀과 광둥훙투는 자동차용 알루미늄 구조물과 배터리 트레이 분야에서 성장한 부품형 기업이다. 쉬성구펀과 아이커디는 전기차용 정밀 알루미늄 부품, 모터·전장 하우징, 경량화 부품에서 강점을 가진 기업군이다. 이들은 단순 부품업체가 아니라 장비, 금형, 자동화, 조립까지 통합한 공정 중심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프레스, 사출, 압출, 조립도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양저우금속성형기계(扬州金属成形机床), 허페이허단지능장비(合肥合锻智能)는 고속 프레스와 로봇 자동화를 결합한 생산라인을 제공한다. 하이톈인터내셔널(海天国际), 천송그룹(震雄集团), 타이루이기계(泰瑞机器)는 사출성형을 전자·자동차·의료 부품으로 확장하고 있다. 중국알루미늄공사(中国铝业)는 알루미늄 소재와 압출 가공의 수직계열화를 보여준다. 조립과 자동화 분야에서는 전장 부품, 카메라 모듈, 디스플레이, 배터리 모듈, 로봇 부품을 대상으로 한 정밀 조립과 검사 자동화 역량이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단일 기술이 아니라 공정 통합 능력에서 나온다. 다이캐스팅으로 구조를 만들고, 프레스로 보완하며, 사출로 기능 부품을 붙이고, 압출로 경량 소재를 공급하고, 자동화 조립으로 완제품 품질을 균일하게 만드는 구조다. 이것이 중국 제조업의 새로운 힘이다.

이 변화는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SK온, 현대자동차그룹의 공급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삼성전자 계열 전장·디스플레이 공급망은 정밀 사출, 알루미늄 하우징, 카메라 모듈 조립, 검사 자동화와 연결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배터리 공급망은 배터리 트레이, 모듈 하우징, 열관리 구조물, 알루미늄 압출재와 직결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플랫폼은 대형 다이캐스팅, 프레스 차체 구조물, 섀시 부품, 전장 하우징과 맞닿아 있다. 결국 한국 대기업의 미래 공급망은 이 다섯 공정의 경쟁력과 분리될 수 없다.

문제는 이 공정의 핵심 기업들이 점점 중국 내부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의 기본 전략은 협력이었다. 중국 기업을 벤더로 두고, 생산을 맡기고,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중국 기업은 더 이상 단순 생산업체가 아니라 기술과 공정을 보유한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략은 바뀌어야 한다. 협력에서 투자로, 투자에서 편입으로 가야 한다.

중국의 전정특신 기업을 단순 협력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 자산으로 봐야 한다. 지분투자, 공동법인, 단계적 인수를 통해 공급망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업을 사는 것이 아니라 공정 기술, 생산 데이터, 고객망, 인증 체계를 동시에 확보하는 행위다.

이 전략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공정 기술은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다. 둘째, 중국은 세계 최대의 실증 시장이다. 셋째, 공급망은 점점 지역화되고 있다. 넷째, 글로벌 고객은 더 빠르고 안정적인 생산을 요구한다.

만약 이 흐름을 놓친다면 한국 기업은 어떻게 될까. 핵심 공정을 확보하지 못하면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납기 경쟁에서도 밀린다. 결국 글로벌 공급망에서 주도권을 가진 공급자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 맞춰 생산만 수행하는 하위 공급자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부 산업에서는 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산업을 업종이 아니라 공정 기준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자동차, 배터리, 전자라는 구분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이캐스팅, 프레스, 사출, 압출, 조립이라는 공정 단위로 산업을 다시 봐야 한다.

둘째, 전정특신 및 소거인 기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기술, 장비, 고객사, 인증, 상장 여부, 특허, 재무구조, 수출 경험까지 포함한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

셋째, 이노비즈, 월드클래스, 코스닥·코스피 기업과 중국 전정특신 기업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 교류가 아니라 기술·투자·공급망 매칭이어야 한다.

넷째, 대기업 공급망과 중견·중소기업 전략을 연결해야 한다. 삼성, LG, SK, 현대차그룹이 요구하는 품질과 중국의 공정 역량을 결합해야 한다.

다섯째, 협력·지분투자·공동법인·인수로 이어지는 단계적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처음부터 인수를 추진하기보다 관계를 구축하고 점진적으로 공급망 안으로 편입하는 구조가 현실적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더 이상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중국은 한국 기업이 반드시 읽어야 할 기술 지도다.

이 지도 위에는 전정특신 기업, 소거인 기업, 기술 상장기업, 지역별 제조 클러스터, 공정별 강소기업이 촘촘하게 배치돼 있다. 이 지도를 읽지 못하면 중국은 위협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이 지도를 읽는 순간 중국은 전략적 선택지가 된다.

다이캐스팅·프레스·사출·압출·조립 산업은 그 변화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전장이다. 이 전장에서 뒤처지면 전체 제조업 경쟁력도 흔들린다.

이제 선택은 명확하다. 중국과 경쟁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을 활용해 더 큰 공급망을 만들 것인가. 한국 제조업의 다음 10년은 이 선택에 달려 있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지민 대표는 한·중 산업·기술, 자본시장, 투자·M&A, 정책·기업 협력, 대학 산학협력 생태계를 연결하는 크로스보더 전략 전문가다. 한국의 외국인 투자유치와 국내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협력 강화를 위해 한·중 기업 간 기술 협력, 투자 연계, 산업 파트너십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36Kr, BEYOND EXPO, HIRED CHINA, DRAPER DRAGON, Zhejiang Saichuang Weilai Venture Capital Investment Management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식회사 피더블유에스그룹(PWS GROUP)을 창업했다. 한국경영학회 산업계 상임이사, 아시아 최대 로펌 잉커로펌(YINGKE LAW FIRM) 한국 파트너로 활동하며 한·중 기업 자문, 중국 기업의 한국 진출 지원, 양국 간 크로스보더 M&A 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과거 중국 국유 철강 기업 시노스틸(中国中钢集团, Sinosteel Corporation)과 중관촌 창업 생태계 핵심 기관인 중국 베이징 중관촌 창업거리(中关村创业大街) 창업 플랫폼 이노웨이(INNOWAY)에서 근무하며 중국 산업 및 혁신 생태계 현장 경험을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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