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해상자위대에서 퇴역하는 호위함과 잠수함을 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해양국가에 무상 또는 싼값으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한다. 창고에 묵히거나 해체할 자위대 장비를 중국 견제 최전선 국가들의 해군력 보강에 쓰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해양 진출을 강화하는 가운데, 일본이 퇴역 함정까지 활용해 동남아 안보 네트워크를 넓히려는 움직임이다.
요미우리신문은 26일 일본 정부가 불용 방위장비 해외 이전과 관련해 살상·파괴 능력이 있는 무기도 특례적으로 무상 또는 저가 공여할 수 있도록 자위대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검토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연내 개정할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안보 3문서에 이 필요성을 명기하고, 내년 정기국회에서 법 개정을 목표로 한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5월 대형 연휴 기간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중고 장비 수출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일본의 현행 제도에서는 이런 불용방위장비 해외 이전에 걸림돌이 크다. 일본 재정법상 방위장비는 중고라도 국가 재산으로 취급돼 무상이나 헐값으로 넘기기 어렵다. 자위대법 116조의3은 개발도상 지역 정부에 불용품을 시가보다 싸게 양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대상은 헬멧 등 비살상 장비에 한정된다. 호위함, 잠수함, 무기, 탄약은 빠져 있다.
◇무기수출 완화 이어 '공여'까지 확대 이번 검토는 일본 정부가 지난 21일 방위장비 이전 3원칙과 운용지침을 개정한 흐름과 맞물려 있다. 경제산업성은 국가안전보장회의와 각의에서 방위장비 이전 3원칙 및 운용지침 일부 개정이 결정됐다고 발표하면서, 이번 재검토가 방위장비 이전을 추진하기 위한 발판이라고 설명했다. 방위장비청 자료도 이번 개정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국산 완성품 이전을 기존의 구조·수송·경계·감시·소해 등 5개 유형에 사실상 묶어두던 제약을 풀고, 동맹국·동지국의 억지력과 대처력 강화를 방위장비 이전의 중요한 목적이라고 규정했다. 방위성도 21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운용지침 재검토가 동맹국·동지국의 억지력 강화와 일본의 방위생산·기술 기반 유지에 기여한다는 인식을 밝혔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필리핀은 취역 30년 이상이 지난 해상자위대 '아부쿠마형' 호위함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실현되면 일본의 중고 호위함 수출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중고 '오야시오형' 잠수함 도입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동남아 국가 중에는 고가의 중고 장비를 살 재정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곳이 많아, 무상·저가 공여를 가능하게 하는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한국입장선 일본과 동남아 방산수출 본격경쟁 한국 입장에서도 이 흐름은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일본은 단순히 무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퇴역 장비를 활용해 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해양국가와 안보 네트워크를 촘촘히 만들고 있다. 한국 역시 동남아 방산 수출과 해양안보 협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일본은 공여·정비·훈련·상호운용성까지 묶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넓히려 한다. 이는 한일 양국이 중국 견제라는 큰 방향에서는 협력하면서도, 동남아 방위 협력 시장에서는 경쟁할 수 있음을 뜻한다.
결국 이번 자위대법 개정 검토는 일본 안보정책의 또 다른 전환점이다. 일본은 방위장비 이전 3원칙 완화로 '팔 수 있는 나라'가 된 데 이어, 중고 무기 공여를 통해 '동지국 방위력을 직접 보강하는 나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은 이를 일본의 군사대국화 논란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도태평양에서 동남아 국가들이 어떤 장비와 훈련, 정비 체계를 선택하게 될지에 영향을 미치는 전략 경쟁으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