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 열었더니 ‘괴물’이 나왔다 [박영국의 디스]
||2026.04.20
||2026.04.20
"성과급 45조 내놓을래, 파업으로 30조 날릴래" 협박
화물연대는 편의점 가맹점주 볼모로 본사와 교섭 요구
힘업는 근로자 보호하겠다던 노란봉투법, 결과는 '노조 폭주'

노동조합.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해주는 단체입니다. 사측의 탄압이나 불합리한 처우에 개별 근로자가 대항하긴 힘들지만, 노조의 우산 아래 있다면 애초에 그런 일을 당할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 노조가 근로자를 잘 보호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란 게 존재합니다. 근로계약서상 ‘갑’의 위치에 있는 사측에 노조가 대항할 수 있는 각종 무기가 이 안에 담겼습니다.
이 법을 근거로 노조는 근로를 제공하지 않고도 임금을 받으며 체계적으로 조합 업무를 보는 노조 전임자를 둘 수 있고, 사측과의 교섭에서 파업을 지렛대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낼 힘도 갖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나봅니다. 노동계는 노조의 힘을 더 강화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의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 통과를 정부와 국회에 오랜 기간 요구해 왔고, 이재명 대통령 대에 이르러 드디어 관철시켰습니다.
노란봉투법은 본래 파업 중 불법 행위로 사측으로부터 거액의 소송을 당해 어려움에 처한 근로자에게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전달한 캠페인에서 유래된 명칭입니다. 한마디로 노조가 힘없는 근로자들 더 잘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힘을 실어주자는 취지였죠.
하지만 정치권은 이 봉투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버렸습니다. 사용자성을 지나치게 확장했고, 노동쟁의(파업)를 벌일 수 있는 조건은 지나치게 완화했으며, 파업시 불법 행위에 대한 면책은 지나치게 강화했습니다.
이렇게 강화된 노조의 힘은 과연 힘없는 근로자를 더 잘 보호해주는 데 쓰이게 될까요.
안타깝게도 요즘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기존 노조법도 힘없는 근로자보다는 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 노조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진짜 힘없는 근로자들이 다니는 소규모 사업장엔 노조가 없는 반면, 대기업 노조는 정치세력화돼서 힘이 막강하거든요.
노조는 임금·단체협약(임단협) 교섭에서 요구조건을 내걸고 사측이 수용하지 않으면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보통 1~2주 정도의 쟁의조정 과정을 거쳐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노동위원회는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고, 이때부터 노조는 쟁의권을 갖습니다. 파업 찬반투표
이 자체가 노조에게는 막강한 권력입니다. 파업에 따른 손실을 무기로 사측을 협박하며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세우는 사례를 우리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전에도 종종 봐왔습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로는 노조가 좀 더 쉽게 파업을 벌일 수 있습니다. 기존의 노동법은 노동쟁의를 ‘노동쟁의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라고 정의했지만, 개정안은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로 정의를 바꿨습니다. ‘결정’이라는 문구가 빠짐으로 인해, 노조가 파업을 벌일 수 있는 조건은 좀 더 유연해졌습니다.

최근 과반노조 및 근로자대표 지위를 확보한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삼성전자 노조)는 노동계 선배들의 ‘투쟁 전략’을 그대로 따라 파업을 무기로 앞세우고 있습니다.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내놓으라’는 요구사항을 내놓고는, 올해 노사 협상이 결렬되면 18일 동안 파업에 나서겠다고 합니다. 파업기간 동안 최대 30조원의 손실이 회사측에 있을 것이라고 경고도 덧붙였습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7조원이었고, 올해는 1분기에만 57조원의 흑자를 냈습니다. 최근 메모리반도체 업황 호조를 감안하면 연간 영업이익은 300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노조측의 ‘영업이익 15% 성과급 지급’ 요구는 올해 임금협상에 국한된 게 아닙니다. 앞으로도 매년 그만큼을 성과급 지급 재원으로 떼놓을 것을 명문화하라는 것이죠. 이게 받아들여지면, 올해 300조원의 영업이익을 낼 경우 내년 초 45조원을 성과급으로 나눠줘야 합니다. 인당 6억원 내외가 될 것으로 추산됩니다.
사측은 영업이익 10% 가량을 성과급 재원으로 사용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업이익 300억원을 기준으로 노조측 요구안과의 격차는 15조원 가량입니다. ‘파업 피해 30조원’이라는 경고는 ‘15조원 아끼려다 30조 날리는 수 있다’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투쟁의 역사’가 장대한 현대자동차 노조는 통이 더 큽니다. 성과급 요구액으로 순이익의 30%를 질렀습니다. 이건 올해가 처음이 아니라 매년 임협 때마다 던지는 단골 메뉴입니다. 형제 회사이자 같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단체인 기아 노조 역시 매년 그래왔듯 영업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내놓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큽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조가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을 볼모로 잡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화물연대 산하 편의점지부 CU지회는 지난 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이후 주요 물류센터는 물론 생산공장까지 봉쇄하며 가맹점주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CU에 가맹된 1만8000여개의 편의점들이 고스란히 입고 있습니다. 가맹점주들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화물연대 CU지회에 파업 중단을 호소하며 무릎까지 꿇었습니다.
CU 운영사인 BGF로지스와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물류센터와 계약한 운송사에 소속된 특수고용 근로자인 화물운송 기사들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란봉투법이 있습니다. 사용자성을 확대해 하청·특수고용 근로자들까지 교섭권을 부여한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편의점 물류중단을 무기로 BGF로지스를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맹점주나 BGF로지스 측은 화물연대 CU지회의 물류봉쇄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을 길도 없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도 폭력이나 파괴 행위를 제외하고는 노조나 개별 근로자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노조가 공장 입구를 틀어막아 가맹점주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지만, 그 행위 자체로 배상을 물을 수 없는 기막힌 상황입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파업에 따른 손실을 언급하며 요구안 관철을 압박하거나, 가맹점주들을 볼모 삼아 본사에 교섭을 요구하는 노조의 투쟁 전략과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조폭 영화에서 조폭들은 ‘멀쩡히 장사하고 싶으면 보호세를 내라’고 상인들을 협박합니다. 상인들은 조폭들이 가게를 둘러엎고 장사를 방해해서 입는 손실보다 보호세를 뜯기는 게 싸게 먹히니 울며 겨자 먹기로 그걸 받아들입니다. 협박이 먹히면 조폭들은 보호세를 올릴 것을 요구하고, 상인들은 더 많은 돈을 뜯기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상인들이 버는 돈의 상당부분을 보호세로 뜯긴다면 어떻게 가게를 넓히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기업이 버는 돈의 상당부분을 성과급으로 내놓을 것을 강제당한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비해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지속가능성을 보장받겠습니까.
힘없는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노란봉투법. 하지만 막상 노란봉투가 열리자 더 많은 이들이 더 자주 파업을 일으키고, 더 심한 불법행위도 마음껏 저지르는 세상이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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