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덕 본ʼ 기아, ‘PBV×로봇ʼ으로 또 질주 [Z-스코어 기업가치 바로보기]
[한국금융신문 김재훈 기자]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다.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한국금융신문은 ‘알트만 Z-스코어’를 통해 기업이 현재 처한 상황과 대응, 재무건전성 등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그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심층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기아는 그룹 큰형인 현대자동차 그늘에 가려진 동생으로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더위를 막아주는 게 그늘이다. 그늘 뒤에 있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현대차가 그룹 대표 계열사로, 인프라부터 미래 투자까지 주도한 덕분에 기아는 상대적으로 적은 재무 부담으로 성장을 이어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아는 올해 ‘형님’ 덕분에 구축한 재무 건전성을 기반으로 ‘로보틱스’라는 엔진을 달고 퀀텀 점프를 시도한다. 특히 PBV(목적기반 모빌리티)와 로보틱스를 결합한 사업 모델로 현대차그룹 미래 모빌리티 비전 속에서 가장 기민하고 수익성 높은 실전 부대 역할을 수행한다.
큰형 그늘 아래 기아
한국금융신문은 기업 데이터 플랫폼 딥서치를 활용해 기아의 최근 7년간 알트만 Z-스코어를 산출·분석했다. 재무제표 항목(X1(운전자본/총자산)+X2(이익잉여금/총자산)+X3(영업이익/총자산)+X4(시가총액/총부채)+X5(매출액/총자산))을 기반으로 기업 재무 건전성을 분석했다. 제조업 기준 3점 이상이면 안정권, 1.8점 미만이면 위험 구간으로 평가한다.
그 결과 기아 Z-스코어는 2019년 2.33, 2020년 2.31, 2021년 2.72, 2022년 2.75, 2023년 3.35, 2024년 3.21, 2025년 3.18 등으로 나타났다. 등락은 있었지만 7년 동안 2점대 ‘회색지대’에서 3점대 ‘안정권’으로 진입했다.
기아 Z-스코어는 현대차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난다. 현대차 Z-스코어는 2019년 1.37, 2020년 1.32, 2021년 1.34, 2022년 1.34, 2023년 1.46, 2024년 1.30, 2025년 1.27 등으로 매년 위험 수준인 1점대를 기록 중이다.
현대차그룹 내 자동차 제조사인 두 회사 Z-스코어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그룹 내 서로 다른 역할 때문이다.
완성차 산업은 대표적 자본집약 산업이다. 대규모 생산 공장, 설비 투자, 글로벌 판매망 구축, 연구·개발(R&D) 투자 등이 동시에 필요하다. 최근에는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로 산업 구조가 빠르게 전환되면서 투자 규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전기차 플랫폼 개발, 배터리 기술 확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등 미래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가 급증하면서 자동차 기업들은 자산 규모와 투자 지출이 동시에 증가하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에서 이러한 투자를 주도하는 회사가 현대차다. 현대차는 올해 미래 투자 규모만 약 17조 원 수준을 계획하고 있다. 기아는 지난 9일 열린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약 10조 원을 미래 투자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0년 총 2조5000억 원을 투자한 자율주행사 앱티브 설립에는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가 2.6대 1.4대 1 비율로 참여했다. 여기에 지난해 8월 보스턴다이내믹스 1조3000억 원 규모 유상증자에서도 현대차가 3626억 원으로 가장 많은 투자금을 분담했으며 그 뒤를 이어 기아(2234억 원), 현대모비스(1465억 원) 등이 뒤를 이었다.
기아는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 부담으로 수익성을 높여왔다. 로보틱스 등 투자 성과도 자연스럽게 주가에 반영되는 등 현대차 그늘에서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 기아가 2023년 이후 Z-스코어 3.0을 돌파한 핵심 원인 역시 영업이익(X3: 영업이익/총자산)의 가파른 상승과 꾸준히 누적된 이익잉여금(X2: 이익잉여금/총자산), 그리고 기업가치 재평가에 따른 시가총액(X4) 상승이 부채 증가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기아는 2023년 EV 라인업 확장과 스포티지, 쏘렌토 등 SUV 라인업 선전으로 영업이익이 11조6079억 원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10조 원을 돌파했다. 2024년에는 12조6671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5년에는 미국 관세 영향으로 9조781억 원을 기록했다.
이익잉여금은 2023년 약 43조 원에서 지난해 말 기준 약 55조 원으로 약 12조 원 증가했으며 시가총액도 같은 기간 약 40조 원에서 47조 원으로 성장했다. 반면 부채비율은 2023년 73.18%, 2024년 66.11%, 2025년 61.76%로 매년 감소했다.
현대차와 PBR 역전, 돌파구는?
기아가 Z-스코어 안정권을 유지 중이지만 전통 완성차 제조 기업으로서 성장은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현대차가 올해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공개 이후 로보틱스 전환이라는 ‘밸류 리레이팅(Re-rating)’으로 두 회사 밸류에이션도 역전됐다.
두 회사 주가 밸류에이션 지표 PBR 추이를 살펴보자. PBR는 기업 주가가 자산 대비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PBR이 1보다 낮으면 주가가 장부상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말까지 기아 PBR은 0.7~0.9배 대를 유지한 반면 현대차는 0.5배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다 올해 1월 현대차가 CES에서 아틀라스를 공개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15일 기준 기아 PBR는 1.04배, 현대차는 1.16배를 기록 중이다.
기아가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로보틱스 중심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이유다.
기아는 현재 현대차그룹 내에서 PBV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차그룹 로보틱스 기술을 결합해 단순 ‘차량 제조사’에서 ‘물류 솔루션 제공자’로 진화하고 있다.
PBV는 소비자가 원하는 용도로 설계·구성할 수 있는 차량이다. 일반 승용은 물론 물류, 라스트마일 배송, 호출 서비스, 오피스 등 활용도가 높다.
기아는 지난해 7월 첫 PBV ‘PV5’를 출시하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 PV5를 일본 시장에 출시해 시장 확대에 나선다. 또 2027년에는 대형 모델인 PV7을 출시하며, 2029년에는 초대형 모델 PV9과 소형 모델을 중심으로 점차 라인업을 확장한다.
기아는 향후 PBV와 현대차그룹 로봇 생태계를 결합한 신시장 개척에도 나선다.
기아는 이달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PBV(PV7, PV9)에 보스턴다이나믹스 스트레치·스팟을 결합한 풀스택 솔루션으로 연간 288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Last Mile Delivery) 신시장 개척에 도전한다고 발표했다.
기아는 현재 PV5나 대형 PV7 내부에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과 스트레치를 탑재해, 차량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로봇이 최종 배송지까지 물건을 전달하는 시스템을 실험 중이다.
또한 현대차그룹이 올해부터 상용화한 로보틱스 플랫폼 ‘모베드’를 PBV 생태계에 편입시켜 도심 내 험로나 계단 등 기존 차량이 접근하기 힘든 곳까지 물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생산 현장 투입으로 생산력까지 제고한다. 아틀라스는 2028년 HMGMA 본격 투입에 이어 2029년 하반기 기아 조지아 공장(KaGA)에 투입되며, 글로벌 공장으로의 단계적 확대를 추진한다. 제조 현장 16개 핵심 공정을 선별해 안전·생산성·품질 향상을 도모한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기아는 안정적 재무 건전성을 기반으로 PBV 사업 확장을 가속하고 있다”며 “최근 현대차그룹 로보틱스와 겹합을 시도하면서 해당 사업 성과에 따라 로봇과 AI가 결합된 플랫폼 기업으로의 재평가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