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 정세 불안과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해운 물류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 주요 해운사들은 새 주인 찾기에 난항을 겪는 가운데, 업계에선 매각 속도를 높이기보다 산업 구조와 역할에 맞는 적합한 주인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슈의 중심에는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이 있다. 2023년 매각이 본격화됐지만 3년째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그룹, 동원그룹 등 대기업들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지만, 사업 역량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경우 해운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철강을 수출하는 대형 화주인 포스코가 HMM을 인수할 경우 '화주와 선사의 결합'이라는 구조가 형성된다. 포스코가 자사 수출 물량을 HMM에 몰아준다면, 결국 공정 경쟁 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량 화주가 자가운송에 나서 성공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동원그룹은 다른 의미에서 부담이 크다. 문제는 '의지'보다 '체력'이다. HMM 인수에는 최소 6조원, 많게는 10조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지주사 동원산업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약 46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차입을 통해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이후 재무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뒤따른다.
해운업은 대표적인 경기 순환 산업으로 분류된다. 호황의 정점을 지나 하락 국면에 진입하는 시점에서 무리한 인수는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SK해운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 현재 최대주주는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로, 매각을 추진 중이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SK해운이 LNG 등 에너지 운송을 담당하는 만큼, 해외 매각 시 '물류 안보'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해운업계를 중심으로 외국계 자본에 대한 매각을 제한하는 입법 논의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해운사들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배경에는 지정학적 불확실성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해운사에 부여된 역할은 단순한 민간 기업 수준을 넘어선 국가 물류망 지탱이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해운 경쟁이 격화되는 만큼 매각을 서둘러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선대 확장이나 사업 다각화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안정적인 경영환경이 필수라는 의견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내심을 갖고 해운사 새 주인의 역량을 다각도로 따져봐야 하는 시점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측으로는 육로가 단절된 우리나라는 사실상 '섬'에 가까운 구조다. 에너지와 원자재, 수출입 물류 대부분을 해운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누가 해운사를 인수하느냐에 따라 국가 경제 안보의 방향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초대형 선박은 가속도를 낼 때보다 길을 잘못 들어 후진 할 때 몇 배의 힘이 필요하다. 국제 정세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지금, 속도보다는 제대로 된 방향성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