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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대적’ 선언에도 李대통령 '저자세'…서해수호의 날이 들춘 민낯

데일리안|kimej@dailian.co.kr (김은지 기자)|2026.03.29

서해 영웅 기리는 날에 터진 안보관 논란

"평화가 밥" 강조했지만 북한 도발 침묵

국민의힘 "유족 면박, 국가 존재 의미 부정"

北, '420㎞ 사정권' 앞세운 대남 위협 가속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11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11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북한이 남한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하고 군사적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체제 존중을 앞세운 대북 유화 기조를 오히려 더 분명히 하고 있다. 제2연평해전·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 희생자를 기리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의 책임 대신 평화 메시지에 무게를 두면서, 정부 대북정책의 방향성과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양상이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에서는 '북한의 책임'보다 '평화로운 한반도'가 앞섰다. 북한이 연일 대남 적대 기조를 노골화하고 실전적 무력 시위를 지속하는 사이, 우리 정부는 서해수호 영웅들을 기리는 자리에서 '평화의 터전' 등을 강조하며 저자세 일변도의 유화 기조를 거듭 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평화가 밥이고, 평화가 곧 민생이고, 평화가 최고의 안보"라고 밝히며, 서해를 '분쟁과 갈등의 경계'가 아니라 '평화와 번영의 터전'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을 직접 언급하거나 지난 도발을 지적한 대목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전쟁과 적대의 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서해 수호 영웅들이 우리에게 남긴 시대적 사명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최근 우리 정부는 북한의 공식 국호 호명 등 파격적인 유화책을 내놓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25일 통일부·통일연구원 주최 학술토론회에서 북한을 자칭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지칭하며 "평화는 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닌 평화적 공존 그 자체가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정 장관은 대북 무인기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복원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등 대화 국면 복원을 위한 행보를 이어왔다.

이 같은 기조는 이 대통령이 기존에 밝혀온 대북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우리 정부가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일체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으며,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대북 3원칙'을 강조했다. 최근 대통령 연설과 통일부 메시지에서 상대를 '북측' 또는 '북'으로 지칭하는 사례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고 "우리 공화국을 건드리는 한국의 행위에 대해서는 추호의 고려나 사소한 주춤도 없이 무자비하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위협한 직후에도, 청와대는 맞대응보다 평화공존 기조를 재확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지난 24일 "정부는 적대적 언사가 지속되는 것은 평화공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며 "긴 시야를 갖고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평화공존 기조는 남북 간 인식의 괴리를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정치권의 반발로도 이어지는 양상이다.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야권은 이를 '안보관' 문제로 연결하며 비판 수위를 높였고 정동영 장관에 대한 '경질론' 역시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대북 행보를 '저자세 외교'를 넘어선 '국격 훼손'으로 규정했다.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둘러싼 파장은 천안함 유족과 대통령 사이 오간 대화가 알려지며 더 증폭됐다. 전사자 가족의 절박한 호소를 공감 없이 일축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뒤따랐다. 이와 관련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어제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천안함 영웅 민평기 상사의 모친과 형님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북한한테 사과 받도록 노력해달라'고 요청하자 이 대통령이 '사과를 하란다고 해서 사과를 하겠습니까?'라고 면박 주듯이 답했다고 한다"며 "16년 전 가족을 잃고 피눈물 흘리며 살아온 유족들에게 대통령이 할 말이었을까"라고 물었다.

이어 "국가가 우리 젊은 군인의 목숨을 앗아간 무도한 집단을 상대로 끝까지 반성과 책임을 요구해, 그 명예를 지켜달라는 간곡한 호소였을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유족들에게 면박을 준 것은 국가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라고 했다. 또 "일전에 정 장관은 우리 민간인의 무인기 침투에 대해 북측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사실상 사과한 바 있다. 우리는 일개 민간인의 행동에도 정부가 나서서 대신 사과하는데, 북한군이 직접 도발한 제2연평해전·천안함·연평도 포격에 대해 김정은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냐"라고 반문했다.

나경원 의원 역시 "서해 수호 55영웅을 기리는 엄숙한 추모의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천안함 유가족의 가슴에 또다시 잔인한 비수를 꽂았다"며 "귀를 의심케 하는 망언이다. 국가의 최고 책임자 스스로 북한의 도발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대북 항복 선언'이자,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호국 영령들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청춘들을 차디찬 바다에 수장시킨 진짜 가해자 앞에서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비굴함이 경악스럽다"며 "이 대통령은 천안함 유가족과 국민 앞에 당장 엎드려 사죄하라. 그리고 즉각 북한에 천안함 폭침에 대한 공식 사과를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북한은 남한을 적대국으로 규정한 이후, 이를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는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달 초 5000톤급 신형 구축함 최현호를 시찰하고 함대지 전략순항미사일 발사를 참관하며 해상 정밀 타격 능력을 과시했다.

또한 지난 14일에는 서부지구 장거리 포병 구분대의 600㎜초정밀다연장방사포 화력타격훈련을 참관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훈련 목적에 대해 "우리에 대한 적대심을 가지고 있는 세력 즉 420㎞ 사정권 안에 있는 적들에게는 불안을 줄 것이며 전술핵무기의 파괴적인 위력상에 대한 깊은 파악을 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420㎞ 사정권'을 직접 거론한 것은 이 무기가 대남 타격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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