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석유화학 산업 핵심 원료인 나프타 대란이 발생하면서 산업계에 도미노 충격이 현실화하고 있다. 플라스틱 비닐과 포장재 생산이 어려움을 겪자 종량제봉투 사재기가 발생했고, 페인트 도매가격은 20~50%나 껑충 뛰었다. 정부가 27일부터 나프타에 대한 긴급 수출통제를 실시하기로 했지만, 자동차·조선 등 산업계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나프타 국제가격은 중동전쟁 발발 전인 지난달 27일 톤당 633달러에서 이달 24일 1089달러로 72%나 껑충 뛰었다. 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나프타는 석유화학 산업의 필수 기초 원료여서 '산업의 쌀'로 불린다. 국내 나프타 수입물량의 절반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정도로 중동 의존도가 높다. 중동전쟁으로 나프타 공급이 끊기면서 국내에서 재고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약 2주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나프타 원료 부족 탓에 벌써 생산 중단이나 축소에 나서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국내 최대 나프타분해시설(NCC)인 여천NCC는 이달 초 고객사에 '공급 불가항력'을 통보했고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솔루션 등도 일부 제품에 대한 공급 불가항력 가능성을 고지했다. 일부 화학업체들은 나프타 공급이 원활해질 때까지 에틸렌 생산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에틸렌 생산이 줄어들면 플라스틱, 합성수지, 합성섬유, 고무 등 후방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플라스틱 봉투 제조업체들이 생산 차질을 빚자, 종량제봉투 사재기 움직임까지 나타나면서 유통업체들은 구매제한 조치에 나섰다.
정부가 나프타를 원료로 쓰는 식·의약품 포장재 수급난을 고려해 식품정보가 인쇄된 포장지 외 대체 포장지 사용 허가를 검토중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종량제봉투 등 10여 개를 공급망 충격이 우려되는 품목으로 지정해 수급관리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민간의 자율적인 사재기 자제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에너지 절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원유 등 에너지의 94%를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일본에 비해 에너지 소비량은 70%나 많다. 정부는 중동전쟁에 따른 비상경제 대응방안으로 유류세 인하 폭을 휘발유는 15%, 경유는 25%로 각각 확대하기로 했다. 대신 원유 국제가격 상승을 반영해 27일 0시부터 2주간 적용되는 2차 석유류 최고가격을 휘발유는 리터당 1934원, 경유는 1923원으로 1차 때보다 평균 12% 인상하기로 했다. 자동차 5부제와 달리 유류세 인하와 석유류 최고가격제는 오히려 에너지 사용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정책목표가 상충하는 만큼 비상시국 기간은 몰라도 오래 사용하기는 어려운 카드다. 오일쇼크나 나프타 대란 극복도 국민들의 동참 없이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와 국민 모두 중동발 위기 해소 때까지 한데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