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배지는 지난 201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블랙 배지 레이스와 블랙 배지 고스트로 세상에 처음 존재를 알렸다. 이후 2017년 던, 2019년 컬리넌이 합류하며 제품군을 확장했다. 출범 10년 만에 블랙 배지는 브랜드 정체성 한 축으로 자리 잡아갔다.
블랙 배지는 롤스로이스가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자기 표현과 창조적 도전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기존 절제된 품격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성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을 반영했다는 평가다.
크리스 브라운리지 롤스로이스모터카 CEO는 “블랙 배지는 자신의 성공을 주저 없이 표현하는 새로운 세대 고객을 위해 탄생했다”며 “미학과 경험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며 럭셔리 산업 전반에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블랙 배지 미학적 선례는 1928년 공개된 롤스로이스 20 H.P. 브루스터 브로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모델은 환희의 여신상과 라디에이터 그릴을 검은색으로 마감했다. 당시 크롬이 현대성과 위신의 상징이었음을 감안하면 파격적 시도였다. 2023년 블랙 배지 컬리넌 블루 섀도우 프라이빗 컬렉션.2023년 블랙 배지 컬리넌 블루 섀도우 프라이빗 컬렉션. 정신적 기원으로는 1964년 12월 존 레논이 주문한 롤스로이스 팬텀 V가 거론된다. 그는 차체와 실내, 장식 요소 대부분을 블랙으로 마감해 달라고 요청했다. 범퍼와 휠 디스크까지 깊은 블랙으로 처리된 이 차량은 타협 없는 개성을 상징하며 오늘날 블랙 배지 철학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2010년대 초, 기술 기반 산업 재편과 함께 등장한 젊은 기업가 세대는 슈퍼 럭셔리 시장의 수요 구조를 바꿨다. 이들은 전통적 화려함보다 더 어둡고 단호하며 대담한 디자인을 선호했다. 롤스로이스에 보다 과감한 연출과 역동적 주행 성능을 요구한 배경이다.
이에 따라 블랙 배지 모델은 선명한 색채, 첨단 소재, 강화된 출력과 민첩한 핸들링, 풍부한 배기음을 갖추며 ‘운전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환희의 여신상과 판테온 그릴, 더블 R 배지를 블랙으로 마감해 상징 체계에도 변화를 줬다. 고유 문양으로는 수학 기호 ‘∞(무한대)’를 채택했다. 2020년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네온 나이츠 트릴로지.2020년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네온 나이츠 트릴로지. 디자이너와 장인들은 ‘가장 깊은 블랙’을 구현하기 위해 약 45kg의 페인트를 정전 도장 방식으로 미세 분사하고 오븐 건조를 거쳤다. 이후 두 겹의 클리어 코트를 입히고, 네 명의 장인이 수작업 연마해 피아노 같은 고광택을 완성했다.
실내에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영감을 받은 탄소섬유 직조 패턴이 적용됐다. 직경 0.014mm 알루미늄 실을 교차 배치하고 여섯 겹의 래커를 도포한 뒤 72시간 경화 과정을 거쳐 깊이 있는 광택을 구현했다.
롤스로이스모터카는 “블랙 배지의 영향력은 슈퍼 럭셔리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강화된 포트폴리오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럭셔리를 정의하는 고객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