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 왜 소니는 18개월인데 우리는 영원히 묶이는가?
||2026.02.09
||2026.02.09

넷플릭스의 돌진이 과할 정도다. 2025년 12월 WBD 인수를 선언하더니, 2026년 1월에는 벌써 소니와의 독점 방영권을 미국에서 글로벌 지역을 대상으로 갱신했고, 유니버설과는 1년 앞당겨 독점 방영권을 체결했다. 북미의 5대 영화사 중 디즈니와 파라마운트를 제외한 3대 영화사의 콘텐츠에 대한 독점 스트리밍권을 확보한 셈이다.
근데 그 조건이 흥미롭다. 소니와는 18개월 독점권을 체결했고, 유니버설과는 10개월 독점권이다. 심지어 유니버설은 피콕 4개월 선 공개 후 10개월 넷플릭스 방영 그리고 다시 4개월 피콕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넷플릭스가 매절 계약을 선호해서 IP를 송두리째 가져간다고만 하는데, 이들은 통상적인 방영권 기한을 지키면서도 압도적인 수익을 챙겨가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애니에이션도 마찬가지다. 제작위원회 방식을 통해 IP를 공동 소유하거나, 프리 파이낸싱(Pre Financing)을 통해 권리를 방어하며 넷플릭스를 하나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 어디에도 IP를 송투리째 강탈당했다는 등의 비경제적 용어가 들어있지 않다. 너무도 당연한, 우리식의 매절 계약이 없다는 이야기다. 라이선스 콘텐츠일지라도 10년 이상 글로벌 유통권을 주는 계약도 아니라는 말이다.
왜 우리만 그러냐고 물어보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시장의 모든 이도 알고 있는 그 명확한 대답. 바로 IP 홀더로서 우리의 힘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내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가진 자에게 넷플릭스는 감히 10년 장기 방영권을 고집하지 못한다. 소니와 유니버설이 가진 그 힘, 그것이 우리에게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세상을 만난 한국의 드라마고 영화다. 지난 30여년 동안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던 K팝의 분투기가 아직 영상시장에는 없다. 넷플릭스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한국 콘텐츠도 볼만한데'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게 겨우 4~5년이다. 넷플릭스가 자랑스럽게 한국 콘텐츠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다. 하지만 소니를 대상으로, 유니버설을 대상으로,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상으로 우리가 너희를 세상으로 인도했다는 식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 역시 너무도 뻔하다. 소니와, 유니버설은,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은 넷플릭스 아니더라도 세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우리 콘텐츠의 가성비는 떨어졌다. 넷플릭스 톱10(Views 기준)에 한국 작품이 겨우 한두 편, 톱100으로 넓혀도 10편 남짓인 것이 냉정한 현실이지만 제작비 수준은 2위 영국에 버금간다. 게다가 2위인 영국은 넷플릭스 의존도가 낮지만, 우리는 생태계 전체가 넷플릭스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일본 영상물도 넷플릭스 의존도가 30% 남짓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잡힌 물고기는 주는 먹이를 먹을 뿐이다.
그럼 이를 극복하려면 우리도 힘을 가져야 하고, 넷플릭스를 통하지 않고서도 유통이 가능해야 한다는 단순한 명제로 수렴한다. 우리도 고개 좀 세우고 넷플릭스와 균형잡힌 협상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이 '힘'이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미국 문화 시장의 주류를 형성한 세대가 어린 시절 일본의 망가(Manga)를 보고 자란 '망가 세대'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일본 콘텐츠에 지갑을 열고 문화적 권위를 부여하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 지금 우리의 웹툰과 드라마를 보고 자라는 글로벌 키즈들이 문화 시장의 결정권자가 되어 우리 콘텐츠에 무게감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일본 애니메이션이 40~50년 걸려 닦은 위상을 우리는 10년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앞으로의 10년, 이 기간은 우리에게 생존을 위한 '버티기'의 시간이다. 붕괴 직전의 시장이지만 우리 콘텐츠를 보고 자란 세대가 어른이 되는 그 시점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앞으로 10년은 넷플릭스 대비 협상력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민간 사업자들도 사활을 걸고 글로벌 유통을 모색하겠지만, 정부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역할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호황기에나 먹힐 만한 유통 인력 양성 같은 건 기억에서 지우고, 위기상황에서는 직접적인 '돈의 흐름'을 만들어줘야 한다.
유통의 핵심은 결국 '가성비'와 '리쿱율(Recoup Rate)'이다. 제작사가 불리한 매절 계약을 맺는 이유는 당장의 제작비 회수가 급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직접 투자하고 지분만큼 IP를 가져가라. 그러면 제작비 회수율(리쿱율)이 높아지고, 로컬 OTT의 위상이 높아진다. “이 조건으로는 못 팝니다”라고 배짱을 튕길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그래야 넷플릭스 외에 다른 해외 바이어들을 찾아다니며 제값을 받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점진적으로 우리 콘텐츠의 가치가 높아지면 가격 조건도 자연히 개선될 것이다.
딱 10년이다. 정부가 과감한 직접 투자를 통해 민간의 리쿱율을 보전해 주는 기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넷플릭스가 '유일한 동아줄'이 아닌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글로벌 시장에 나가서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자생력, 그 힘을 기를 때까지 정부가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민간은 이미 달리고 있다. 이제 정부가 나설 차례다.
조영신 동국대 대우교수·미디어엔터연구소 C&X 대표 trica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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