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탈모 지원 언급… 재정·형평성 문턱 높아
||2025.12.20
||2025.12.20
이재명 대통령이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오랫동안 ‘비급여 영역’에 머물러 있던 탈모 치료가 공적 보험의 테이블 위로 다시 올라왔다.
이 대통령은 탈모를 ‘생존 문제’로 받아들여야한다는 표현까지 사용한 이후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정책 검토가 시작됐지만, 일각에서는 실제 제도화까지는 넘어야 할 문턱이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최근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보고에서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검토하라고 주문하는 동시에, 재정 부담이 크다면 횟수나 총액을 제한하는 방식을 함께 검토해 보라고 요청했다.
현재 탈모 치료는 건강보험 체계에서 대표적인 비급여 영역이다. 원형 탈모처럼 자가면역 질환 등 의학적 원인이 명확한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유전적 요인이 큰 안드로겐성 탈모 치료는 개인 부담에 맡겨져 있다.
하지만 탈모 치료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탈모 치료에 사용되는 전문의약품 공급액은 2020년 1896억원에서 2024년 2394억원으로 5년간 약 26% 늘었다. 공급량 증가 폭은 더 크다. 같은 기간 공급량은 약 67% 증가해 탈모 치료 시장이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진료 현장에서도 탈모 환자 증가세는 뚜렷하다. 2024년 원형 탈모증, 안드로겐성 탈모증, 흉터·비흉터성 모발 손실 등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는 24만여 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20~40대가 전체의 60%를 넘었으며, 여성 환자 비중도 40%를 웃돌았다. 탈모가 중장년층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탈모증 관련 진료비는 2024년 3895억원을 기록했고 여기에 약값을 더하면 연간 탈모 치료에 쓰이는 비용은 6000억원을 넘어선다.
특히 이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받은 이유는 취업과 사회생활이 한창인 연령대에서 탈모 치료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현행 제도가 이를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다뤄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탈모 치료제 급여 지급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유전적 탈모까지 급여를 확대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재정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고 설명했다.
탈모 치료제 급여화는 단순히 약값 일부를 지원하는 문제를 넘어 잠재적 환자 수요가 대거 공적 보험 체계로 유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재정 추산만 놓고 봐도 부담은 적지 않다. 탈모 치료 전문의약품 시장 규모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본인부담률을 50%로 설정하더라도 건강보험이 연간 1100억~1200억원가량을 부담해야 한다.
본인부담률을 30%로 낮출 경우 보험 부담액은 1600억원을 웃돈다. 여기에 진료비 증가와 수요 확대 효과까지 감안하면 재정 소요는 더 커질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재정 문제와 함께 형평성 논란을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는다. 탈모는 국제질병분류(ICD-11)상 질병 코드가 부여된 상태지만, 건강보험 급여 기준은 단순한 질병 분류를 넘어 ‘생명 유지와 필수 기능 회복’이라는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암이나 희귀난치질환처럼 치료하지 않으면 생존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질환과 삶의 질·외형 변화가 중심이 되는 탈모 치료를 같은 선상에 놓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는 도덕적 위험(모럴 해저드)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다. 약값이 급격히 낮아질 경우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미뤘던 잠재 환자들이 대거 유입돼 처방량이 폭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수요 확대까지 반영하면 유전성 탈모 치료제 급여화로 인한 연간 재정 지출이 1조원에서 최대 3조원대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단일 질환을 대상으로 한 급여 확대 규모로는 이례적인 수준이다.
법적 정당성 문제도 간과하기 어렵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은 외형 개선 목적의 의료 행위와 약제를 원칙적으로 비급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전성 탈모 치료는 이 조항과 충돌할 소지가 있어, 급여 전환을 위해서는 기준 재해석이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료계에서는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급여화가 추진될 경우, 향후 다른 비급여 영역에서도 유사한 요구가 잇따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대통령 발언의 논의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탈모를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취업, 결혼, 대인관계 등에서 탈모가 개인의 정신 건강과 사회적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미용’과 ‘치료’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은 정책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탈모 커뮤니티 가입자 수는 40만명을 넘어섰고, 탈모 시작 연령이 낮아지는 현상도 뚜렷하다.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제한적 급여 모델이 거론된다. 중증 탈모 환자나 정신적 고통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환자군에 한해 급여를 적용하고, 연간 처방 횟수나 총액에 상한을 두는 방식이다. 환자군에 따라 본인부담률을 차등화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대통령이 언급한 ‘횟수·총액 제한’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결국 탈모 치료 급여화 논의가 단순히 한 질환의 보험 적용 여부를 넘어 건강보험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필수 의료 보장이라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변화한 사회적 인식을 제도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관건이다”며 “대통령의 한마디로 촉발된 이번 논의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한 번의 정책적 해프닝으로 남을지는 앞으로의 검토 과정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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