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 GPU 사업은 4파전, 2조 AI센터는 유찰…무엇이 달랐나
||2025.06.25
||2025.06.25
정부가 추진하는 두 개의 대형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사업이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1조4590억원 규모의 'GPU 확보·구축·운용지원 사업'에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주요 기업이 경쟁하는 4파전 양상을 보인 반면, 2조원 규모의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은 두 차례 연속 유찰됐다.
같은 AI 인프라 구축 사업임에도 두 사업의 명암을 가른 핵심은 민간 기업의 자율성 보장 수준으로 분석된다. 향후 정부 주도 대형 사업 추진 방식에도 시사점을 던지는 결과다.
1.5조원 GPU 사업에 쏠린 관심, 4개 주요 기업 입찰 경쟁
2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3일 마감한 GPU 확보 사업에는 네이버클라우드, 카카오엔터프라이즈, NHN클라우드, 쿠팡 등 국내 주요 클라우드서비스제공사(CSP)를 비롯한 기업 4곳이 각각 컨소시엄을 구축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사업은 정부가 추경으로 확보한 1조4590억원을 투입해 GPU 1만장을 구매한 후 2030년까지 5년간 민간 기업이 위탁 운영하는 구조다. 참여 기업은 공공 프로젝트 제공분을 제외한 나머지 GPU를 직접 활용할 수 있어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정부는 신청서를 제출한 기업을 대상으로 사전 평가를 거쳐 발표 대상 사업자를 선정, 발표 평가 후 최종 우선협상대상자(한 개 또는 복수)를 선정할 계획이다. 현장 실사 등을 거쳐 이르면 내달 사업자가 결정될 전망이다. 당초 이 사업은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 참여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려 했으나 사업 유찰로 해당 사업과 무관하게 사업자를 선정하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GPU 구매 예산이 대부분이라 수익성은 떨어지지만, GPU 1만장 가량을 구축·운영하는 사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 관심이 높다”며 “누가 최신 GPU를 최적 가격에 빠른 시일내 구축·서비스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말했다.
국가AI컴퓨팅센터는 연속 유찰... "정부 지분 51% 조건이 발목"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은 정반대 상황이다. 이 사업은 민간이 정부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는 구조다. 민관 합작으로 총 4000억원을 출자해 2조원 규모로 컴퓨팅센터를 구축한다.
5월 30일 1차 공모에 이어 6월 13일 2차 공모가 나왔지만 응찰 기업 단 한 곳도 없이 연속 유찰됐다. 당초 8월 말 최종 사업자 선정, 11월 사업 착수, 2027년 센터 완공 일정까지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3월 사업 참여 의향서 접수에서는 국내외 기업 및 기관 100여 곳이 관심을 보였지만, 본 공모에 진입하자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가장 큰 걸림돌은 정부가 SPC 지분 51%를 보유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삼성SDS·삼성전자·네이버·엘리스그룹 컨소시엄을 비롯해 KT·마이크로소프트(MS), SK텔레콤·아마존웹서비스(AWS) 등 쟁쟁한 컨소시엄들이 참여를 검토했지만 결국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기업들이 참여를 망설이는 이유는 과도한 민간 부담과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보인다. 민간 기업은 2030년까지 약 2000억원을 출자해야 하지만, SPC 청산 시 공공투자 지분을 이자와 함께 매수해야 한다. 또 사업 존속이 어려워질 경우 정부에 이행 보증금을 반납해야 한다. 이때 투입 비용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건이 포함됐다. 그럼에도 민간 기업에 주어지는 실질적 혜택은 저리 대출 정도에 그쳤다. 참여를 고려한 업계 관계자는 "이 사업에는 기업 입장에서 가혹할 수 있는 조항이 많다"고 토로했다.
성공과 실패를 가른 핵심은 '민간 자율성'
업계에서는 두 사업의 명암을 가른 핵심은 민간 기업의 자율성 보장 수준에 있다고 해석한다. GPU 확보 사업은 정부가 GPU 소유권을 갖되 민간이 실질적인 운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반면, 국가AI컴퓨팅센터의 경영권은 지분 51%를 가진 정부에게 넘어간다.
CSP업계 관계자는 "민간 기업이 2000억원을 출자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인데 최대주주인 정부의 최종 승인을 받는 의사결정 구조에선 한계가 클 수밖에 없다"며 "지분 51%를 공공이 가져가면서 기업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라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는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의 재공모를 위해 7월 새로운 공모 조건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 지분 51% 조건을 완화하는 방안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연내 AI컴퓨팅 서비스 개시를 위해서는 적어도 8월까지 참여 기업 모집이 완료돼야 한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24일 국가 AI컴퓨팅 센터 공모에 민간 참여가 저조한 것과 관련해서는 "민간 기업의 목소리를 잘 듣고 최적의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며 "업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고민해가겠다"고 말했다.
홍주연 기자
jyhon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