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비에 밀린 ‘역대급 현대차’.. 팰리세이드 조상님, 바로 이 차였습니다
||2025.06.10
||2025.06.10
팰리세이드는 현대차 라인업 중 가장 잘 팔리는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다. 꼭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SUV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며 좀처럼 떨어질 기미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비운의 SUV가 한대 나온다. 바로 현대차 ‘테라칸’ 이다. 테라칸은 최초 현대정공에서 기획된 프로젝트인데, 프로젝트명 HP의 뜻이 회장님 프로젝트라고 할 만큼 회사 내부에서 매우 신경 썼던 차종이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왜 팰리세이드에 비유하냐고?
바로 지금 팰리세이드의 자리에 있던 차가 테라칸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차종의 지향점은 크게 다르다. 팰리세이드는 북미 시장을 표적으로 개발된 도시의 넉넉한 준대형 SUV지만, 테라칸은 갤로퍼의 프레임을 토대로 캐빈을 바꾼 준대형 오프로더 SUV였다. 이렇듯 두 차종이 지향했던 바는 완전히 다르지만, 이 차가 명차로 꼽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대 특유의 투박한 맛과, 특유의 내구성 덕이다. 그래서인지 한창 판매되던 당시보다 지금 관심이 모이기도 한다.
큰 이변이 있는 게 아니라면 한 차종을 두고 콘셉트카가 만들어지거나 기획될 때는 여러 번 다른 장소에 출품되더라도 콘셉트카 자체는 같은 개체다. 예를 들면 A 차종의 콘셉트카 B가 있다면, 이 B가 2025 서울모빌리티쇼와 또 다른 자동차 관련 쇼에 공개되는 식이다. 그런데 테라칸은 조금 특이하게도 콘셉트카가 짧은 사이 두 번 공개됐다. 그것도 전혀 다른 얼굴로. 처음엔 1997년 서울모터쇼에 등장한 LUV였다. 이후 1999년 서울모터쇼에서 공개된 하이랜드라는 콘셉트카로 또 한 번 세상에 공개됐다.
이는 테라칸이 개발과 기획되던 시대가 IMF에 직면한 때였기에 생긴 일이라고 한다. 최초에 1998년 출시를 목표로 잡았으나, 상술한 문제 탓에 출시가 지연된 것이다. 그 와중에 현대차가 기아를 인수·합병하고 테라칸이 기획되던 현대정공 (현대모비스) 자동차 개발 부서가 현대차로 통합되면서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이다. 테라칸이 제 이름과 디자인으로 세상의 빛을 본 것은 최초 목표에서 무려 3년이나 지난 2001년이었다.
문제는 캐빈을 전부 바꾸고 고급 사양을 보강하는 등의 개선을 거친 테라칸은 필연적으로 갤로퍼보다 무게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갤로퍼의 D4BH 유닛을 그대로 얹어 소음과 진동, 출력과 연비를 모두 놓쳐버린 희대의 패키징 실수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인지 D4BH가 얹힌 테라칸 EX250/JX250 라인업을 두고 ‘저출력, 저연비, 고무게’라고 조롱하는 커뮤니티 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준대형 SUV 체면은 시그마 3,500cc 유닛을 탑재한 VX350 트림으로 간신히 지킨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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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경쟁 차종이었던 KGM(당시 쌍용) 렉스턴은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었다. 현대차로서 이걸 가만히 지켜볼 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기아 J 엔진에 커먼레일을 얹은 150마력 사양의 테라칸이 등장했다. 이때부터는 동력 성능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는 평이 많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1%를 표방하며 승승장구하는 렉스턴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를 타개하고자 소소한 디자인 변경과 함께 출력을 소폭 상승시킨 마이너체인지 모델이 나왔지만, 역시 렉스턴을 추월하기엔 무리였다.
이에 현대차는 테라칸에 ‘파워플러스’ 라는 서브네임까지 붙여, 출력을 더 끌어올린 페이스리프트를 발매한다. 전반적으로 더 두툼해진 보디 클래딩과 세련된 이미지를 주고자 노력했지만, 태생 자체가 오프로더를 표방하고 개발된 한계를 넘긴 역부족이었다. 이때 현대차는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174마력으로 J 엔진을 세팅했지만 이내 렉스턴이 190마력을 기록하며 준대형 SUV 출력 전쟁에서 완패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테라칸이 무조건 실패한 SUV라는 것은 아니다. 벤츠의 기술력을 등에 업은 렉스턴을 자체 기술력으로 나름 방어했고, 해외 한 매체에서 진행한 극한 테스트 결과를 통해 ‘내구성 최강 SUV’라는 타이틀도 얻을 수 있었다. 실제 이 테스트에서 테라칸은 크레인에서 떨어트렸음에도 멀쩡히 시동이 걸리고 전자장비가 작동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래서인지 단종된 지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 되려 오프로더와 캠핑족에게 사랑받는 현상이 생겼다.
만약 테라칸이 더 일찍 출시했다면 당시 렉스턴을 누를 수 있었을것 같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필자는 아니라고 하겠다. 애초에 렉스턴과 테라칸은 개발 초기 방향부터 달랐고, 지향점 자체도 달랐던 차다. 그냥 테라칸은 테라칸이고 렉스턴은 렉스턴이었을 뿐이다. 물론 테라칸의 후손 격인 팰리세이드가 세그먼트를 제패한 지금, 역사 속에 잠든 테라칸의 복수가 완성되었다는 것엔 이견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 중고로 내구성이 좋은 SUV를 고민할 때, 테라칸을 떠올린다면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