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만…” 대한민국 회장님들이 가장 사랑했던 현대 자동차 모델
||2025.06.07
||2025.06.07
대한민국의 최고급 세단은 어떤 차가 있을까? 제네시스 G90? 제네시스 G80?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대한민국 최고급 세단은 ‘에쿠스’ 라고 생각한다. 에쿠스는 1999년 미쓰비시와 협업한 프로젝트의 하나로, 그 뿌리는 무려 그랜저다. 1세대 그랜저와 2세대 뉴그랜저 역시 미쓰비시와 함께 개발(이라고 하지만 현대차는 당시 입김이 적었다고 전해진다.)했지만, 정작 본국 격인 일본에선 개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실적이 저조했다고 전해진다.
미쓰비시는 이에 절치부심하여, 데보네어(1,2세대 그랜저)의 후속이자 상위 세그먼트 모델의 개발을 도모했다. 그래서 탄생한 게 미쓰비시 프라우디아(세단), 디그니티(리무진)이었다. 한국에선 ‘8기통 4,500cc 초대형 세단’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탄생한 1세대 에쿠스다. 다만 개발 당시만 해도 에쿠스는 다이너스티의 이름을 부여받고 개발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에쿠스라는 이름의 어감 자체가 더 대형 세단에 걸맞다고 느껴진다.
1세대 에쿠스는 당시 대한민국 내수 시장 최대 배기량, 최대 기통을 자랑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적수라고 할 수 있는 KGM(당시 쌍용)의 체어맨이 있었지만, 체어맨은 최대 배기량 측면에서 에쿠스에 밀렸던 게 사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한국 자동차 도로는 그야말로 무채색 천지였다. 자동차 제조사가 볼륨 모델과 최고급 모델은 보수적인 방향을 잡는 게 통상적인데, 무려 진주색(현대차 표현에 의하면 목련색)투톤을 앞세운 에쿠스는 여러모로 내수 시장의 반향이었다.
경쟁 모델과의 비교는 빠질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다만 초대형 세단을 표방하고 나온 차가 체어맨과 다르게 전륜구동을 채택한 것과, 기동성을 아예 고려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낭창거리는 하체 세팅은 일부 비판적인 의견이 이어졌다. 게다가 미쓰비시가 설계한 8기통 4,500cc 오메가 엔진이 고급유+직분사 조합으로 출시되어, 야심 차게 등장한 것과 다르게 잡음을 일으켰다. 아울러 당시로서 보기 어려웠던 첨단 장비가 탑재된 것까진 좋았으나, 전자 장비가 심심하면 고장을 일으키는 것도 회장님 차에 걸맞지 않은 대목이었다.
물론 1세대 에쿠스가 이상한 차라는 말은 아니다. 요철은 가볍게 눌러버릴 정도의 푹신한 승차감은 정속 주행 시 2열에 편안함을 제공했다. 그뿐이랴, 큰 차체와 실내만큼 시트 역시 크고 푹신하게 만들 수 있었던 이 차는 고급 소파 뺨치는 수준의 시트를 갖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직물 시트가 흔했던 시대라, 천연가죽이 아낌없이 적용된 에쿠스의 시트는 부드러움 그 자체였다. 당시 국산차 모두가 공유하던 문제인 차체 부식 문제도 이 차만큼은 빗겨나갔다. 그만큼 현대차가 꽤 신경 쓰고 만든 차라는 방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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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1세대 에쿠스의 성공을 등에 업고, 본격 고급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그 때가 2000년대 중반 즈음이었다. 최초로 후륜구동 플랫폼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에 나섰고, 그렇게 세상에 나왔던 차가 1세대 제네시스다. 그리고 2009년, 1세대 제네시스의 보디를 늘리고 실내/외 디자인을 바꿔 출시한 것이 2세대 에쿠스다. 2세대 에쿠스가 세상에 나왔을 때 카운터 펀치를 맞은 것은 KGM만이 아니었다. 소비자 역시 충격이었다는 반응이었다.
1세대의 각진 모습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듯이 곡선이 곳곳에 적용되었고, 1세대에서도 길었던 스트레치드 리무진 사양은 B필러를 늘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듯이 2열 도어까지 늘려 전장이 무려 5,460mm에 달했다. 현대차는 2세대 에쿠스부터 경쟁력을 충분히 갖췄다 판단했는지, 무려 북미 시장에 이 차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2세대 에쿠스는 북미 시장에서 꽤 고무적인 성과를 냈다고 전해진다. 이런 성과는 3세대 에쿠스이자 1세대 G90(EQ900)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8기통 4,500cc를 캐치프레이즈에 걸만큼 최대 배기량에 욕심이 있던 현대차는, 8기통 엔진을 독자 개발하여 2세대 에쿠스에 얹었다. 무려 배기량 5,000cc(정확히는 5,038cc)의 타우 엔진을 장착한 VS500 / VL500 사양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 엔진은 훗날 세계 10대 엔진에 이름을 올리는 등의 쾌거를 이룩해, 현대차그룹의 엔진 개발 실력을 세계에 입증하는 역할도 해냈다.
3세대 에쿠스로 개발되던 차는, 현대차그룹의 전략 변경으로 인해 다른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바로 제네시스 EQ900이 그 주인공이다. 실제 EQ900은 위장막 테스트를 진행하던 당시만 해도 에쿠스 특유의 독수리 엠블렘을 장착했던 사실이 있다. 본래 G90으로 출시될 예정(북미에선 처음부터 G90이었다)이었지만, 1999년부터 2015년이 되도록 최고급 세단의 명예를 지켜온 에쿠스 를 예우하기 위해 ‘EQ’를 붙인 것이었다. 이 차는 훗날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G90이라는 제 이름을 찾아갔다.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 최고급 세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제네시스 G90이라는 것엔 모두가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현행 제네시스 G90의 개발 코드명은 RS4다. 여기서 말하는 4는 4세대라는 뜻이므로, 1999년에 데뷔한 에쿠스를 1세대로 친다는 말과 같다. 한국 전용 럭셔리 세단이 글로벌 럭셔리 세단으로 위상이 크게 바뀌었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1999년 혜성처럼 등장한 세단으로 보는 것이다. 비록 높은 유지비와 차령으로 인해 중고차 시장에서 몇백만 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지만, 에쿠스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에쿠스’ 는 여전히 가슴 벅찬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