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는 ‘이 車’ 아니면 없었죠.. 비운의 명차 아닌 명차의 시작이었다
||2025.05.05
||2025.05.05
대한민국 내수 자동차 시장을 쥐락펴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차그룹도 모든 모델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준중형 MPV 격인 라비타 등은 한국에서만 실패했을 뿐 유럽 시장에는 제대로 먹힌 경우였듯, 전략형에 가까운 모델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심지어 세단 중에도 이런 실패한 모델은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현대차의 아슬란과 마르샤였다. 두 차종 모두 완전 신차가 아닌 가지치기 형 모델이었는데, 오늘 다뤄볼 차종은 마르샤다.
마르샤는 1995년 시장에 등장했는데, 이 차종이 표적으로 삼은 대상은 명확했다. 지금보다 더 수직적인 구조였던 당시 대한민국 사회에 능력은 있지만 상사보다 더 좋은 차를 탈 수 없었던 이들을 위한 차종이었다. Y3로도 분류되는 쏘나타 2의 차대를 이용해 편의 장비를 강화하고 더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적용했었다. 당시 상위 차종인 뉴그랜저도 하위트림엔 수동 에어컨이 적용되었지만, 마르샤는 모두 풀 오토 에어컨을 탑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1994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력 범죄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지존파 사건이다.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기에 이들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들의 범행 대상은 다름 아닌 ‘그랜저를 타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그랜저가 현재의 제네시스 G90과 같은 포지션이었기에 부유층을 범행 대상 삼았던 지존파가 검거되자 위와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은 현대차가 네이밍에 관해 고민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고소득 및 사회지도층을 표적 삼았던 그랜저가, 강력 범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바람에 그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차는 뉴그랜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준비하던 차종을 다른 이름으로 내놓고 뉴그랜저를 반 체급 격하시켰는데, 그 차종이 바로 다이너스티였다. 후문이지만 이 다이너스티는 후속 모델이 2번이나 기획되었는데, 첫 번째 후속은 1세대 에쿠스로 출시되고 두 번째 후속은 기아 오피러스로 출시되었다.
한편, 현대차가 틈새시장을 공략하고자 내놓은 마르샤는 시장에서 고전 중이었다. 원판인 쏘나타 2의 범퍼 소재가 1세대 엘란트라처럼 매우 약한 플라스틱 소재로 이뤄져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깨져버리는 현상이 있었는데, 마르샤는 이와 다르게 최신 차종과 같은 소재를 사용해 외관 내구성이 조금 더 좋다는 것 이외에 더 비싼 값을 주고 마르샤를 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현대차는 한창 개발되던 마르샤의 후속 모델의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마음먹는다. 현대차로선 분명히 이 준대형급 세그먼트가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에 포기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차의 이름이 문제였는데, 당시 마르샤의 후속 모델의 프로젝트는 XG였다. 그래서 마르샤 XG로 출시할지, 아니라면 전혀 다른 이름으로 출시할지 고심 끝에 그들은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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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로선 그랜저의 권위적인 이미지 탓에 범죄의 대상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또 그랜저라는 이름을 버릴 수 없었기에 마르샤 후속 모델로 기획된 차종에 그랜저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심지어 차별화가 덜 되어 쏘나타에 밀리는 바람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마르샤를 반면교사 삼아, 당시 개발중이던 LZ (1세대 에쿠스)의 디자인 요소를 차용했기에 차별성도 뚜렷했다. 이윽고 1998년 10월, 그들의 전략은 한국 시장에 대반향을 일으켰다.
게다가 준대형급 고급 세단에 무려 프레임리스 도어를 채택해 스포티한 감성까지 살린 탓에, 오너드리븐 끝판왕 세단에 이어 튜너 및 젊은 층에도 사랑받은 첫 번째 그랜저였다. 정통 그랜저는 1세대 에쿠스로 이어져 현재 제네시스 G90으로 불리고, 마르샤가 그랜저의 이름을 이어받아 현재의 GN7까지 이어진 것이다. 현대차는 비록 마르샤를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큰 의미를 갖는 하나의 헤리티지를 만들어 낸 셈이다.
마르샤는 그랜저의 탈을 쓰고 TG, HG, IG, GN7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그 이름을 지키고 있다. 역사를 통해 우린 그들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랜저는 XG부터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그 기세가 쭉 이어지고 있다. TG는 정숙함과 부드러움, HG는 날렵함과 젊은 감각, IG는 세련됨과 단단한 내실, GN7은 고급스러움을 한껏 끌어올려 그랜저의 체급을 다시금 격상시키는 역할을 맡아왔다.
지금 그랜저의 기반에는 물론 뉴그랜저도 있었지만, 마르샤의 역할이 더 컸다고 본다. 물론 뉴그랜저와 초대 그랜저 시절에도 쏘나타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당시로서는 더 권위적이고 위압감 있는 차종이었기 때문에 포지션이 달랐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단 시장의 선두 주자인 그랜저가 있기 전에 마르샤가 있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잊지 말아야 하기에 오늘은 마르샤의 일대기를 적어봤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마르샤라는 세단이 아직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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